'닥스2'가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그럴 운명이었다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의 개봉을 앞두고, 국내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한 화상 간담회가 있을 때였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 당시 메가폰을 잡은 스콧 데릭슨 감독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MCU 영화가 많이 나와서 이제는 지겹다." 이에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미디어 발전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영화를 보고 진화할 것"이라면서, 영화가 '재발명의 연속'이라고 언급했다.

스콧 데릭슨 감독도 "슈퍼 히어로 영화가 질린다면, 당연히 똑같은 영화만 만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알게 모르게 14번째 MCU 영화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MCU의 새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단순히 '아가모토의 눈'을 활용하거나 '지각이 있는 망토'를 둘러서가 아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미러 디멘션', '다크 디멘션' 같은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면서, '멀티버스'라는 MCU의 확장을 제시했고, 이 확장성은 MCU 페이즈4의 주요 테마가 됐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으로 '인피니티 사가'가 끝이 나면서, 케빈 파이기는 더 넓고, 더 복잡한 세계로 관객을 인도해야만 했다.

그래야 새로운 걸 갈구하는 이들(관객일 수도, 혹은 제작진과 출연 배우일 수도 있다)을 만족시킬 테니.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팬데믹의 여파로 1년 늦게 출발한 '페이즈4'의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두터웠다는 것이다.

기존 슈퍼 히어로에 대해 작별도 해야했고, 아시아계의 새로운 슈퍼 히어로가 탄생했으며, MCU 세계관의 탄생 신화 역시 목도해야 했다.

심지어 '디즈니+' MCU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MCU의 타임라인에 '영향'을 끼치면서, 드라마를 봐야 영화를 온전히 관람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멀티버스'까지 공부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인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 모든 복잡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MCU 페이즈4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멀티버스'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 인물이기에, 이 세계관을 대중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했으며, 영화 자체로도 스케일이 커야 했다.

작품의 개봉 일자를 가장 많은 팬을 불러 모았던 5월 초(4편의 <어벤져스>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년)와 같은 큰 이벤트 영화들이 이 시기에 개봉했다)로 설정한 것 자체가 이를 대신 설명해줄 정도.

그렇기에 제작자 케빈 파이기는 그동안 독립 영화계에서 활약했던 감독이 아닌, 샘 레이미를 적임자로 선택했다(스콧 데릭슨 감독과는 제작 단계에서 결별했다).

기존 MCU의 몇몇 작품이 감독의 특색보다는 케빈 파이기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을 줬다면, 잔뼈가 굵은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은 분명 '특이 사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번 작품은 그래서 샘 레이미의 타협안처럼 느껴졌다.

그는 분명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21세기 상업 영화의 흐름을 슈퍼 히어로물로 이끈 주역이긴 하지만, 그보다 호러 장르 팬들에게 더 알려진 감독이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그 공포가 괴수일 수도, 좀비일 수도, 혹은 운명이나 죽음, 혹은 신이나 마물일 수도 있다)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 낸 것.

<대혼돈의 멀티버스> 곳곳엔 샘 레이미의 인장이 박혀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이블 데드>(1981년)에서나 볼법한 카메라 시점, 좀비 설정 등이 녹아 있으며, 시리즈의 주인공 '애슐리'를 맡은 브루스 캠벨은 당당히 쿠키의 주인공이 되면서 원작의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되살려냈다.

<스파이더맨> 이전에 만들어진 그의 다크 히어로 영화 <다크맨>(1990년)도 언급해야 하는데, '닥터 스트레인지'와 연인 '크리스틴'(레이첼 맥아담스)의 관계는, 사고로 인해 흉측한 '다크맨'이 된 과학자가 된 '페이튼'(리암 니슨)과 연인 '줄리'(프란시스 맥도맨드)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심지어 몇몇 액션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봤던 장면으로 연출됐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초반부 '닥터 스트레인지'와 '웡'(베네딕트 웡)이 문어 같이 생긴 '가르간토스'를 상대하는 장면(정확히는 건물에 올라가는 장면)은 <스파이더맨 2>(2004년)의 '닥터 옥토퍼스'(알프리드 몰리나)를 연상케 한다.

약 20년이 지났으니 그때보다 좀 더 그래픽이 좋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기에 감독의 '그나마' 최신 작품인 <드래그 미 투 헬>(2009년)의 포스터처럼 악령이 '드림워킹' 중인 '닥터 스트레인지'를 공격하는 장면도 추가되면서 확실한 도장을 찍어준다.

적게는 10년 전, 길게는 40여 년 전 자신의 영화에서 오마주를 따왔으니 당연히 2022년의 '감성'에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촌스럽고 유치해 보일 수 있다.

심지어 두 '닥터 스트레인지'가 맞붙는 대결은 <쿵푸 허슬>(2004년)의 '고쟁' 배틀 장면이나,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년)의 '피아노 배틀'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모든 토끼를 잡기 위해서 노력한 샘 레이미의 진가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영화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질리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본격적으로 '코즈믹 호러' 장르를 첨가한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알지 못하는 것에서 나오는 힘'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단적인 예가 '스칼렛 위치'로 탈바꿈한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년)에서 '울트론'의 음모를 파악하고 선한 쪽으로 자신의 노선을 바꾼 '완다'는 친오빠를 '소코비아 전투'에서 잃었고, 이후 연인 '비전'(폴 베타니)을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다른 '멀티버스'를 통해 형태를 알게 된 두 아들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냈지만, 그 아이들마저도 '대의'를 위해 잃어야 했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조절할 수 없던 와중, 흑마법서 '다크홀드'의 힘에 이끌려 결국 '완다'는 스스로 공포의 존재로 변질하고 말았다.

이런 기구한 존재가 됐으니, 자신이 최강이라고 자부한, 오만하기 그지없던 '일루미나티'는 그저 한 줌 휴지 조각에 불과했고, 이건 필연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는 '대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의와 '스칼렛 위치'의 대의는 서로 달랐다.

'대의'를 집요하게 고집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결국은 혼자가 됐다는 걸, 결혼식 시퀀스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대의'를 위해서 계속 누군가를 '희생'해야 했고, 그 희생엔 고통이 있었다.

하지만 '멀티버스'를 여행하면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희생을 고집하지 않았고, 그 대신 '구원'을 택한다.

한편, '스칼렛 위치'는 다른 멀티버스의 '완다'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다시 <스파이더맨 2>로 돌아가, 본래 선한 인물이었던 '닥터 옥토퍼스'도 결국 자기 잘못을 인지하고 자신이 발명한 '만악의 근원'과 함께 수장된다.

'스칼렛 위치'도 역시 유사한 행동을 취하며, 자신이 저질렀던 일(그래도 엄청난 살생을 저지른 건 부인할 수 없으니)에 책임을 진다.

다만, 직접 죽는 걸 보여주지 않고, 붉은빛이 파괴된 공간에서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기에, 'MCU의 지구'에서 '스칼렛 위치'가 죽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게 언급할 순 없겠다.

결국,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자신이 연출해 온 영화들을 사랑해 온 팬들에게 남기는 깊은 헌사임과 동시에 추후 MCU가 멀티버스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떡밥을 남기면서,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구원의 대의'를 앞으로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남기면서 마무리됐다.

확실한 건, 이제 디즈니+의 MCU 드라마를 봐야 MCU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과제가 팬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OTT와 극장 산업에서 MCU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 역시 흥미로움과 걱정 사이에서 떠다니게 됐다.

2022/05/03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2022/05/11 CGV 영등포 4DX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감독
샘 레이미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소치틀 고메즈, 치웨텔 에지오포, 레이첼 맥아담스, 마이클 스털버그, 셰일라 아팀, 에덴 나덴슨, 애덤 허길, 아코 미첼
평점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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