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드리블에 히딩크 '엄지 척', 이영표는 골을 넣고 스승 품에 뜨겁게 안겼다


[스포티비뉴스=상암, 이성필 기자] '꽁지머리'는 아니지만 비슷한 머리 길이의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볼을 앞세워 드리블해 나오자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벤치에 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엄지를 들어 올렸다. 2001년 1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와의 3-4위전에서 김병지가 중앙선까지 볼을 가지고 나오는 기행(?)에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당시와는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 평소 초등리그 경기가 자주 열리던 곳에서는 배가 나오고 걸음은 느린 중년들이 14세 이하(U-14) 대표팀 선수들과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주관의 2002 한일월드컵 레전드들이 U-14 대표팀과 8대8 축구로 실력을 겨룬 것이다.
김병지를 비롯해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와 최진철, 송종국, 이을용, 최은성 등이 2002년 당시와 비슷한 유니폼을 입었다. 뒷세대인 오범석(전 포항 스틸러스)과 조원희(전 경남FC), 김형범(전 전북 현대), 최성환(전 수원 삼성)에 최근 첼시 레이디스(잉글랜드) 생활을 마감하고 국내로 복귀해 수원FC 위민에 입단한 지소연이 한참 어린 후배들을 상대했다. 벤치에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히딩크 감독과 정해성 코치, 김현태 골키퍼 코치가 자리했다.
전광판 선수 소개부터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당시 사진이 그대로 표출됐다. 관중석에서는 "언제 찍은 건가요"라고 묻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2002년을 모르는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묻는 것이었다. 선수 소개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인물은 역시 히딩크 감독이었다. 경기장 밖에서 보던 관중들도 박수를 칠 정도로 여전한 관심 대상이었다.


경기가 시작된 뒤에는 재미난 상황이 나왔다. 현역 시절 측면 수비수였던 이영표가 이을용과 공격을 책임지는 중앙 공격수로 등장했다. 이채로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U-14 대표팀 선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시작 직후 바로 골을 넣었다. 골키퍼 장갑을 낀 김병지의 펀칭 실수가 나왔고 이를 U-14 대표팀은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했다. 그러자 벤치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옆에 있던 최은성에게 몸을 풀라고 권유했다. 최은성은 멋쩍게 웃었고 관중석에 있던 판 데르 사르(아약스 CEO)가 내려와 히딩크 감독과 대화하는 등 김병지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하지만, 김병지의 마음은 곧 풀렸다. 이을용이 7분 왼발로 골을 넣었다. 히딩크 감독은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와 함께 엄지를 들어 올렸다. 20년 전을 회상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후 김병지가 미드필드까지 드리블해 올라오자 히딩크 감독은 다시 엄지를 내밀었다. 현역 시절이었다면 불같은 호통을 받았을 장면이었다,
꿈나무들을 상대하는 레전드들은 힘들다는 반응을 숨기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결국 이을용은 "어휴"라는 한숨과 동시에 벤치로 물러났다. 그래도 골을 넣었으니 본전은 한 셈이다.
하프타임 히딩크 감독과 레전드들은 관중석으로 볼을 선사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종료 후 관중석으로 키스 세리머니 후 볼을 차줬던 그 장면과 같았다. 히딩크 감독의 볼을 받은 관중은 크게 기뻐했다.
후반에는 이영표가 공격의 중심으로 나섰다. 8분, 정확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른 뒤 송종국의 손을 잡고 히딩크 감독에게 뛰어가 안겼다. 옆에 있던 박지성까지, 네 명이 엉겨 안으며 웃었다. 모두 2002 한일월드컵 직후 히딩크 덕분에 모국 네덜란드 팀인 PSV에인트호번(이영표, 박지성)과 페예노르트(송종국)에 진출했던 공통점이 있다.
이후 지소연의 골이 더 터지면서 레전드팀이 3-1로 앞서갔지만, 이벤트 매치라 분위기는 축제에 가까웠다. U-14 팀이 두 골을 따라와 3-3이되자 김병지가 필드플레이어로 긴급 투입, 공격을 책임졌다. 무조건 이기라는 히딩크 감독의 의지였다. 물론 젊은피들은 뜨거웠고 종료 2분 전 한승희가 결승골을 넣으며 4-3으로 레전드들을 무너드렸다. 황금 세대들을 육성하기 위한 '골든에이지'의 위력, 2002 한일월드컵 유산 중 하나인 육성 세대의 실력이 빛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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