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격 테러...문제는 신자유주의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
세계화-양극화-정치적 부족주의 악순환
미국 동부시간으로 지난 7월 13일 저녁, 펜실베니아주 서부 소도시 버틀러에서 지구촌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현장 근처 마을 출신으로 알려진 20세 청년 토마스 매튜 크룩스가 선거 유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총으로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른쪽 귀 관통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생존했고, 범인은 현장에서 특별경호팀에 의해 사살됐다. 이번 사건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 인기가 급등하고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과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대선은 앞으로 4개월 정도 남아있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 TV 토론회 등의 일정이 남아있어서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여전히 이른 시점이다.
이번 사건은 오히려 과거 미국에서 자주 발생한 정치 테러와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의미와 파장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정치양극화는 현상일뿐 원인은 아니다
일단 이번 사건의 배경에 대해 정치 양극화를 지목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혐오 발언과 폭력 미화 발언으로 정치 양극화를 주도한 책임자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정치 양극화는 사건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거리가 있다.
정치 양극화와 다소 다른 맥락에서 '증오 정치'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증오 정치 역시 현상일 뿐이다. 인류가 출현한 이후 정치 테러는 끊이지 않았고,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은 대부분 증오심이 충만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도 정치 테러는 1835년 제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또는 1865년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또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테러가 10차례를 넘는다. 미국 외의 지역에서도 증오에 의한 정치 테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치 양극화나 증오정치가 현상이라면 원인은 무엇인가? 1991년 냉전 종식 이전과 이후의 정치 테러 양상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전 종식 이전 정치 테러 양상을 보면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한 사례도 존재하지만, 대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망상증세를 보인 사례였다. 1981년 3월 30일, 망상증 환자인 존 힝클리 주니어가 자신이 선망하는 여배우(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2001년 9월,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정치 테러에서는 미국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 양극화 특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9.11 테러의 경우 미국의 외교 정책에 분노한 이슬람 청년들이 종교적 신념을 내세우며 저지른 테러 사건으로 국내 정치와는 맥락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 청년들이 분노한 미국 외교 정책이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globalization) 전략이고, 세계화는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 양극화를 유발했다는 점에서 연결점을 공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그늘
신자유주의가 정치 양극화로 연결되는 이유는 자본과 상품, 노동력이 지구촌 차원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지구촌 차원에서, 또는 각국 별로 시장 교란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의 저가 상품이 수입되면서 미국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곤경에 빠졌고, 중미 지역에서 대거 유입된 값싼 노동력 탓에 백인 노동자 계층이 대형 유통업체 판매원 등 임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유럽의 주요국에서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포용적인 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신자유주의는 자본과 상품, 노동력의 자유로운 흐름과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 요소인 표현의 자유도 최대한으로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소수 세력을 배려하는 화법인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다른 국가나 정치 세력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는 ‘외교적 신중함’ 관행도 파괴했다.
나라별로 정치 문화가 상대 진영의 잘못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유권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시원하게 표출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게임으로 정착하면서 정치 양극화가 악화했다. 결국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한 대응과 중국 때리기를 제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2016년 11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9.11사건의 경우는 2001년 1월 취임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구상을 거론하는 등 이슬람 세력을 자극한 것에 대한 반발로 분석할 수도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인터넷과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가 확산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집단 간 협력 사례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국가 간 경쟁에 대한 부담이나 전쟁 발생에 대한 걱정이 크게 감소한 것도 오히려 정치 양극화가 증강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가 간 경쟁을 위한 내부 결속이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라면, 국익에 기반한 합리적인 국가 전략 논쟁은 중요성이 떨어진다. 국내 정치 세력 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제하거나 배려할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정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심해진다. 국가 이익보다도 정치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진영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득세하는 것도 당연하다.
국가간 경쟁 완화는 국내 정치양극화로
신자유주의는 국제 관계 양상을 크게 변경시켰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서방 선진국 중심의 공급망을 지구촌 차원으로 확대하면서 한국과 타이완, 중국도 포함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미국의 경우 최상급 기술 개발과 유통망 관리를 담당하면서 편안하게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한국과 타이완은 중간재 제조 기지, 중국은 저가품 제조 기지로 참여했다. 한국과 타이완은 2000년 전후에 출범한 새로운 공급망 체계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였지만, 2010년 전후가 되면 선진국으로 올라서면서 획기적 국가 발전을 달성했다. 중국은 더욱더 눈부신 지위 격상을 경험하면서 국가 전체 생산 규모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 과정에서 미국의 취약성을 간파했다. 2012년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을 국가적 구호로 제시하면서 미국을 추월하고 지구촌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14억 중국인에게 불어넣었다. 중국이 패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가 가시화되자 패권국인 미국에서는 중국의 성장 추세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중국의 통상 규범 위반과 첨단 기술 절취 관행을 교정하기 위한 중국 견제 정책이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경제안보’ 개념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지구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본다면 자본과 상품, 노동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지침을 수정해서 필요에 따라서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 스스로 정화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이론가 카를 카우츠키 주장을 상기하면 2020년 전후에 목도하는 신자유주의 지침 수정도 자본주의 정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총격사건, 우리가 각성할 부분들
미국, 더 넓게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정치 테러 원인으로 정치 양극화가 거론되고, 정치 양극화가 신자유주의 부작용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정확하다면, 신자유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신자유주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수정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적으로 검토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본과 상품, 노동력 이동과 관련해서는 ‘경제안보’ 개념을 적용하되, 중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가 수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찾아서 재구성하는 노력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국제적인 통상 규범을 준수하고, 첨단 기술 절취 행위도 중단한다면 중국이 다시 세계적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꾸준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 양극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인 정치적 부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외교적 신중함’을 부활하는 방식으로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국가 간 경쟁 부담이 감소하고 전쟁 발생 가능성도 줄어든 것이 현실이지만, 국내 경쟁 세력에 대한 무제한 공격은 궁극적으로 지구촌 차원의 평화적 공존도 어려워지고 평화적 공존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민이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11월 미국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현명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올바름’의 중요성이나 ‘외교적 신중함’을 준수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앞으로도 그런 발언과 태도를 지속한다면 이번과 같은 정치 테러가 재발하는 것이 명확한 만큼 태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같은 선진국 지식인들이 지구촌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왕선택은 YTN 방송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정책실무 석사를, 서울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를 취득했다. 통일, 외교, 국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통 문화, 특히 선비 정신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특성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