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순사가 막으면 더 뭉쳤다, 저항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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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2월 15일 저녁.
부산 초량정 신도로에서 줄다리기 대결이 열렸다.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큰 줄다리기를 하는 풍속에 따라 관할 주재소에 허가를 요청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기유정의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에서 흥미롭게 읽은 줄다리기 시합 이야기 여러 편 중, 부산과 김해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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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시절 전국 각지 민족행사
- 3·1운동 이후 일제는 해산 명령
- 분노에 찬 민중들은 멈추지 않아
- 뭉치고 흩어지게 한 수많은 소란
- 6개 테마로 대중정치 동학 살펴
1931년 2월 15일 저녁. 부산 초량정 신도로에서 줄다리기 대결이 열렸다. 3000여 명 사람이 줄에 매달렸다. 뭐가 문제였는지 부산경찰서 일본 순사 대여섯 명이 “해산”을 외치며 경기를 금지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3000여 명 조선 민중이 한꺼번에 몰려 힘쓰는 모습이 무서워서는 아니었을까?)
줄다리기 중이던 양측 대중은 한창 밀고 당기며 서로를 자극하던 쾌감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 열광의 흐름이 “해산” 명령 한 마디로 갑자기 끊어졌다.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일본 순사들이 무서워 해산했을까. 아니다. 쾌감이 분노로 바뀌어 순사를 집단으로 두들겨 팬 뒤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부산기질, 부산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1927년 2월 1일, 경상남도 김해읍.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큰 줄다리기를 하는 풍속에 따라 관할 주재소에 허가를 요청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금지당한 것이다. 김해읍 주민은 금지 명령 속에도 기어코 줄다리기를 했다. 경찰이 와서 해산을 명령했다. 남편, 북편으로 갈라 줄다리기에 참여하고 있는 김해읍 사람들은 이미 4000명 가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영차, 어영차,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날 대결에서 북편이 이겼다. (이번에는 김해기질, 김해사람인 건가?)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기유정의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에서 흥미롭게 읽은 줄다리기 시합 이야기 여러 편 중, 부산과 김해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소개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줄다리기를 금지·해산하는 경찰과 이에 맞서는 일이 일어났다.
저자는 “상대와의 싸움을 욕망하는 대중의 열기 안에 내재되어 있던 비규범적인 에너지와 그것이 주던 쾌감이 이를 저지하거나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과 강하게 부딪치게 될 때, 그 힘은 언제든지 줄 밖으로 일탈할 수 있었다. 삭전(줄다리기)의 놀이 전사, 즉 가상의 싸움꾼이 언제든지 줄 밖으로 튕겨져 나와 경찰을 두들겨 패는 현실의 싸움꾼, 즉 현실을 교란하는 전사가 될 수 있음”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1919년 3·1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수많은 소란이라는 이름의 ‘사건들’을 다룬다. 그것도 몇몇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사건에 어느 순간 수십 명에서 수백 명 대중이 되어, 그들이 마치 하나의 신체처럼 움직여 ‘적’을 향해 돌을 집어 던지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 일상의 개인들이 다수의 무리로 전환해 하나의 신체처럼 움직이는 체험을 하던 사건들이다.
책을 읽는 동안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왁자지껄하고 다이내믹하며 유혈 낭자한 사건들이 더욱 실감난다. 당시 조선인 대중이 된 것처럼 열광하다가 주먹을 움켜쥐고 분노했다가 울분에 젖게 한다. 저자는 일상의 개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라는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해 우연히 모여들었다가 ‘떼를 지어’ 움직이더니 어느 한순간 사라지고 마는, 이런 식민지 조선 대중이 과연 어떤 정치 동학에 따라 움직였는지를 파헤친다. ‘마주침’, ‘모방’, ‘적대’, ‘열광’, ‘애도’, ‘폭력’ 등 여섯 개 테마로 대중 정치의 동학을 살펴보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한국 사학계의 중심 테마인 저항적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 식민 공간을 보기 위한 시도라는 점이다. 그간 사학계가 주목하지 않던 식민지 대중 폭동의 사례를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당시 일간지에서 찾아내어 폭동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이러한 대중 행위의 동학을 설명하기 위해 대중의 근대주의적 인식 틀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사상과 철학적 이론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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