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 저격수의 등장" 인터넷 슈퍼카로 불렸던 GM의 야심작

'인터넷 슈퍼카'라는 말,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죠? 듣기만 해도 설레는 '슈퍼카'. 그런데 앞에 인터넷이 붙으면 분위기가 꽤나 달라집니다. 대개 평범한 양산형 모델 중에서 차급에 비해 좋은 성능을 품었거나 가성비가 뛰어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사랑받지만 정작 판매량은 저조한 차량을 농담조로 일컫는 용어죠.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때와 맞물려서인지 개인적으로 인터넷 슈퍼카 하면 가장 먼저 이 차가 떠오르는데요. 오늘은 크로스오버의 인기에 떠밀려 아쉽게 사라져버린 한 비운의 준중형 세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울어진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 GM 세단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차. 역대 인터넷 슈퍼카를 꼽으면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이번 시간에는 'GM대우 라세티 쉐보레 크루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프로젝트 'J200'. GM대우가 새롭게 출범한 이후 출시된 첫 번째 신차 '라세티'는 전작인 누비라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등장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때 대우차는 많은 풍파를 겪으며 신차 사이클이 망가진 상황이었죠.

결국 후속 투입이 늦어지면서 '아반떼 XD'에 밀려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한 '누비라 ll'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내기 위한 결정이었죠. 디자인은 줄곧 외주를 맡겨왔던 대우차답게 이번에도 외관은 유명 카로체라아 '피닌파리나'가 주도했고요. '대우 디자인포럼'이 디테일과 실내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전면부는 앞서 출시된 '매그너스'와 비슷한 인상이었는데요. GM이 편입된 이후에 출시되었음에도 당시 대우차 패밀리룩이었던 '3분할 그릴'을 달고 나와 한눈에 봐도 대우에서 나온 차량임을 알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미 디자인 개발이 완료된 이후 편입되어서 그대로 둔 것일 수도 있는데요. 대우 자동차에 대한 GM 나름의 예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다만, 하나의 큰 프레임 안에서 세 칸을 나누었던 다른 모델들과 달리 상당히 적극적인 형태로 디자인됐기 때문에 색상에 따라 '조잡해 보인다'는 반응도 있었죠.

휠 아치를 강조한 디자인과 쐐기형 캐릭터 라인으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측면은 멀티 스포크 휠이 있고요. 밋밋한 도어 패널에는 사이드 몰딩을 추가해 무게감을 덜어냈습니다. 후면부는 가로선이 강조된 디자인과 양 끝단에 배치된 램프로 실제 수치에 비해 넓어보였고, 세로로 긴 리어램프는 전작 누비라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죠.

전체적으로 전작인 누비라 ll보다 보수적이면서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으로 거듭났는데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차급인데다 패밀리카 수요도 꽤 많았던 만큼 무던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추구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내에서 확실하게 느껴졌는데요. 일반적인 운전자 중심 구조였던 전작과 달리 수평으로 길게 뻗은 좌우 대칭형 대시보드는 중형차에 탄 듯 널찍해 보였고요. 화려한 우드그레인을 덧대 매그너스 못지않게 고급스러웠습니다.

여기에 앞좌석 열선시트, 8개 스피커의 5.8인치 VCD 내비게이션, 풀오토 에어컨, 레인센싱 와이퍼 등 편의장비 역시 상위 모델 부럽지 않게 채워넣었어요.

빈 곳은 그냥 두는 법 없이 수납공간을 조성했고, 글로브 박스에는 냉장 기능을 넣어 더운 여름철 음료수를 차게 보관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매뉴얼과 잡동사니가 들어있었지만 넉넉한 뒷좌석은 분리형 헤드레스트와 암레스트를 갖춰 패밀리카로 이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죠.

'6:4 분할폴딩'까지 지원해 안 그래도 넉넉한 트렁크를 더 넓게 이용할 수도 있었죠. 전반적으로 라세티는 전직인 누비라ll 에서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모든 면에서 진보했고요. '중형차에 준하는 차'라는 준중형차의 본래 의미처럼 상위 모델에 버금가는 구성이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누비라의 것을 개량한 4기통 1.5L 가솔린 단일 사양으로 5단 수동 및 아이신 4단 자동 변속기가 매칭됐습니다.

촘촘한 기어비로 초반 응답성을 높인 경쟁차와 달리 간극이 넓게 세팅되어 내외관에 걸맞는 느긋한 가속감을 제공했지만 이를 '출력 부족'으로 받아들이는 운전자들이 많았는데요. 도심 주행으로 잦은 정차 및 재출발이 많은 우리나라 도로환경 특성 상 RPM을 높이다 보니 연비도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안 좋기는 매한가지였던 경쟁차들에 비해 수치 상 큰 차이는 없었지만 대우차에 따라다녔던 선입견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연비 지적을 많이 받은 것도 있어요.

주행 질감은 유럽 수출을 주력으로 했던 대우차의 성격에 맞게 북미 지항의 아반떼보다 탄탄하다는 평가가 주류였고요. 듀얼링크 리어 서스펜션 흡음제를 덧댄 엔진커버와 대용량 머플러 등 NVH도 신경 써 승차감과 정숙성을 보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4륜 디스크 브레이크와 ABS 미끄럼 방지 장치 TCS와 같이 주행 안정성을 위한 장비도 아낌없이 투입했죠.

2004년에는 소소한 부분 변경과 함께 상품성을 높인 '뉴 라세티'가 출시됐습니다. 대우자동차의 유산이었던 3분할 그릴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간결하게 수정해 전면부가 한결 깔끔해졌고요. 이후 배기량을 높여 출력을 개선한 '1.6L 가솔린 모델'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2005년부터 '세제개편'으로 소형차 기준이 '1500cc 이하'에서 지금의 '1600cc'로 격상됨에 따라 1.6L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우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죠. 꼴랑 100cc 차이였지만 약간이나마 더 나은 성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갈수록 크고 무거워져 가는 차체를 떠올리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또 이 시기부터 경찰에 대량으로 납품되기 시작하면서 순찰차로도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었어요. 한편 테라스 해치백 모델인 '라세티5'가 새롭게 추가됐는데요. 뜬금없는 가지치기 모델은 아니고 전작 누비라에서 선보인 해치백 모델, '누비라 D5'의 후속이었는데요. 이런 차가 있었는지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사실상 새로운 라인업처럼 느껴졌습니다.

보통 차명을 공유하는 모델이라면 기반이 된 차량의 디자인을 살짝 변형해 한눈에 봐도 '가지치기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데 반해 '라세티 5-DOOR'는 외관에서 세단과 완전히 차별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피닌파리나'가 아닌 쥬지아로의 '이탈디자인'에서 스타일을 담당했습니다.

친정이 같은 누비라 D5처럼 테일게이트를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보편적인 헤치백 모델과 달리 세단에서 트렁크만 떼어 낸 듯한 테일게이트로 세단과 헤치백의 중간 형태인데요. 보수적인 디자인의 세단보다는 스포티하면서 젊은 감각이 돋보였어요.

이에 그치지 않고 실내에도 변화를 줬죠. 원형으로 처리한 에어벤트, 고리타분한 우드그레인은 걷어내고 금속 느낌의 패널로 마감해 한결 산뜻한 분위기로 꾸며졌습니다.

전장은 짧아졌어도 휠베이스가 그대로니 넉넉한 실내 공간 역시 그대로였고 해치백의 실용성은 덤이었어요. 때문에 라세티 세단의 보수적인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꼈던 젊은 소비자들, 특히 여성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2007년에는 뒤처진 경쟁력을 파워트레인으로 만회하고자 '5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 강력한 '2.0L 디젤' 라인업이 추가됐고요. 새로운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 '토스카'에서 재미를 본 모양인지 외관을 스포티하게 꾸밀 수 있는 '순정 바디킷', '에어로팩'을 옵션으로 제공해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특히 누비라 D5는 몰라도 이 '누비라 스패건'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었죠. 스테이션 왜건 모델인 라세티 왜건을 투입한 것이 돋보였는데요.

디젤 엔진의 시원스러운 출력과 SUV 못지않은 실용성으로 무장했습니다.

하지만 투입시기가 늦어도 너무 늦었고 가뜩이나 세단도 인기가 없는 마당에 비인기 차종인 왜건이 인기를 끌리 만무했죠. 그나마 몇 대 안 팔리던 것도 이후 등장한 'i30CW'에 밀리면서 아는 사람들만 아는 차로 남았습니다. 또 2.0L 디젤 단일 파워트레인으로 출시되어 소형차 세금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메리트를 떨어뜨렸죠.

그래도 이해관계에 계신 분들이 많이 구매하신 모양인지 GM대우, 쉐보레 전시장이나 서비스센터 앞에서 이 차량을 많이 목격했던 기억이 있어요.

참고로 해치백과 왜건은 2세대가 출시된 이후에도 라세티 EX라는 이름으로 2010년까지 국내 판매가 이루어졌습니다. 라세티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넉넉한 편의 장비를 앞세워 강력해진 경쟁차를 상대하기에 충분한 상품성으로 무장했죠.

이번에도 시장 1위 '아반떼'를 저격하는 광고를 집행하며 라이벌 구도를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반떼 XD가 시장을 휘어잡은 상황에서 닛산의 블루버드를 들여와 내놓은 르노 삼성의 SM3, XD의 플랫폼을 활용한 기아의 '쎄라토'까지 참전하면서 준중형차 시장은 과열됐고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무난한 차 라세티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어요. 결국 어려운 회사 분위기 속에서도 걸출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아반떼를 견제했던 선대 누비라와 달리 라세티는 새로운 차명과 무난한 상품성이 임팩트를 주지 못하면서 저조한 성적을 이어갔습니다.

해치백과 왜건을 추가해 신선함을 더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죠. 과거 대우 시절부터 이어져온 '망한 회사'라는 분위기와 앞서 언급했듯 차급을 막론하고 '연비가 나쁘다'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고요.

다행히 수출에서 전부 만회했습니다. 'GM이 선택한 월드카'라는 광고 문구처럼 뱃지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공룡기업 GM 산하의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판매됐고, 국내 판매량에 관계없이 군산 공장의 생산라인은 쉴 새 없이 돌아갔어요.

후속이 출시되며 내수 판매를 중단한 이후에도 중국과 개도국 시장을 위한 모델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신형과 함께 꽤 오랫동안 생산됐습니다.

과거 대우의 현지 공장을 사들여 국영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라본'에는 이런 모델을 반조립 형태로 공급하기도 했죠. 이 시기 출시된 차량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인 '차체부식'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고질병은 딱히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경쟁차의 자동변속기들이 종종 말썽을 일으킬 때 아이신 자동변속기의 높은 신뢰도가 빛을 발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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