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시진핑 대관식' 앞두고 사라진 이 영화..누구 심기가 불편한 것일까?
중국 북서부 간쑤(甘肅)성의 한 농촌.
가족들에게조차 버림을 받은 주인공 마요우티에(马有铁)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차오꾸이잉(曹贵英)을 만나 가정을 꾸립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 부부에게 돌아오는 건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의 괄시와 조롱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함께 살 흙집을 짓던 두 사람. 부인 차오꾸이잉은 어느 날 남편을 찾아 나선 길에 물에 빠지고 결국 구조받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남편 역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부부가 함께 지었던 흙집은 무너집니다.
■실제 농부가 남자 주인공 맡아 '흥행 돌풍'
중국 농촌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잔잔하게 그리면서도 중국 사회의 부조리 등을 고발한 이 영화는 리루이쥔( 李睿珺 )감독의 '먼지로 돌아가다(隱入塵煙·Return to dust)'입니다.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하이칭( 海清)이 제법 유명하기는 하지만 남자 주인공을 맡은 우런린(武仁林)은 감독의 이모부이자 실제 농부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고요. 이 때문에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의 열연 덕분에 입소문을 타면서 이달 초부터 극장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요. 흥행 점유율은 15.1%를 차지했고, 2022년 현재까지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중국 극장 영화로 등극했습니다. 그 덕에 약 200만 위안, 우리 돈 4억 원 정도를 들여 만든 이 영화는 지금까지 1억 위안(약 2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상영관에서 돌연 사라지기 전까지 말이죠.
■영화 '흥행 역주행'하다 홀연히 하차
한 OTT(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10점 만점에 9.5점까지 평점을 받은 이 영화는 현재 전국의 상영관과 요우쿠, 아이치이 등 다수의 중국 OTT 플랫폼에서 흔적을 감췄습니다.
중국 온라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당초 9월 말까지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데다 흥행 가도를 달리던 작품이라 갑작스러운 영화 '하차' 소식으로 중국 영화 팬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 영화 어떤 내용이 문제 됐을까?
일부에서는 영화 '먼지로 사라지다'가 돌연 사라진 것은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일환이라는 겁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빈농층과 고령의 독신자 문제, 지역 개발에 따른 낡은 주택 철거 문제 등을 이야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당 대회에 앞서 중국의 신 농촌 건설 사업, 빈곤퇴치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온 중국 당·정이 중국 농촌의 그늘을 드러내는 영화가 흥행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중국 쿤룬처연구원의 정옌싀(鄭晏石) 고등연구원은 자신이 쓴 글에서 “영화 제작자는 어떤 관점이고 누구를 대변하는가. 당 대회를 앞두고 반복적으로 조작을 한 이 영화의 숨은 의도는 무엇이냐”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 일부 누리꾼들의 문제 제기 역시 영화 하차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중국 누리꾼 일부는 실제 영화 '먼지로 사라지다'가 중국 농촌 여성을 왜곡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현실보다 부정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2월 72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분 후보에 올라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을 지적하면서 "그래서 중국에 와보지 못한 외국인은 중국이 이렇게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심사하러 보낸 영화는 모두 이런 유형이다."라거나 외국 심사위원을 위해 일부러 존재하지 않는 중국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며 영화가 조명한 '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침묵' 또한 잦아지리라는 것, 이번 영화를 통해서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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