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세계 1위 등극 ‘대보경’…안타, 홈런, 타점서 WBC 선두 질주

사진 제공 = OSEN

뉴욕 본사의 발 빠른 업데이트

밤 10시가 넘었다. 미국은 (동부 기준) 오전 9시쯤이다. 그 시간에도 일을 멈추지 않는 곳이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MLB.com이다.

온통 WBC 뉴스로 가득하다. 이 무렵 메인은 예선 B조 소식이다. 미국과 멕시코전의 예고 기사다. 동부 시간으로 9일 오후 8시, 한국 시간으로는 오늘(10일) 오전 9시에 플레이볼이다.

바로 그 아래다. 그러니까 두 번째 주요 토픽으로 다룬 셈이다. 글이 아닌, 1분짜리 동영상이다.

무심한 표정의 타자 하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배트를 돌린다. 타구는 당연한 듯 담장을 넘어간다. 바로 어제(9일) 도쿄돔(한국-호주)의 광경이다.

‘대보경(25)’의 극적인 투런 순간이다.

제목은 미국식이다. 담백하기 그지없다. ‘Bo Gyeong Moon's three-hit, four-RBI day(문보경 3안타, 4타점의 날).’

하지만 그들도 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게임인지. 얼마나 엄청난 기록인지.

이미 대회 성적도 정리됐다. 예선 C조 랭킹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됐다. 2승 2패가 세 나라다. 그런데 정확히 구분한다. 2위 KOREA(대한민국), 3위 Australia(호주), 4위 Chinese Taipei(대만)로 서열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2위 대한민국과 1위 일본 옆에는 작은 표시가 붙었다. ‘*’ 마크다. 본선행이 확정됐다는 표시다. (이 시간 한국의 일부 포털 사이트는 업데이트되기 전이다.)

이어서 밤 11시 무렵이다. 드디어 MLB.com가 메인 뉴스를 교체한다. 여럿이 환호하는 장면이다. 태극마크를 단 나인들이다. 도쿄돔 마운드 위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컷이다.

어제(9일) 밤 10시 무렵 MLB.com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나온 문보경의 홈런 동영상. MLB.com 캡처
어제(9일) 밤 11시 무렵 MLB.com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한국 8강 진출 뉴스. MLB.com 캡처

대보경 아래 하찮은 이름 ‘블게주’

또 한 번 놀랄 일이 있다. MLB.com의 세부 기록 페이지다. 그중에서도 개인 타자의 숫자들이 나열됐다.

우선 홈런 숫자로 정렬시킨다. 가장 많은 기록이 2개다. 해당자가 많다. 11명이 공동 1위인 셈이다. 그중 한 명이 문보경이다. 한국 대표 셰이 위트컴 역시 이름이 올랐다.

그 외에도 여럿이다. 오타니 쇼헤이, 스즈키 세이야, 요시다 마사타카(이상 일본), 스튜어트 페어차일드(대만), 주니어 카미네로(도미니카) 등등이다.

대보경이 톱인 곳이 또 있다. (최다) 안타 부문이다. 4게임에서 7개(2루타 2개, 홈런 2개 포함)를 쳤다. 이건 단독 1위다.

그 뒤로 6개 친 타자가 2명 있다. 장위청(대만)과 해롤드 라미레스(콜럼비아)다. 5개의 이정후는 공동 4위에 랭크됐다. 한국전에서 많이 친 오타니는 5개로 그 아래다.

문보경의 타율은 0.538이다. 이건 15위 밖에 되지 않는다. 1타수 1안타(타율 1.000)인 타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항목이 있다. 타점(RBI)이다.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1위다. 4게임에서 무려 11개나 올렸다. 게임당 2.75점 꼴이다. 무엇보다 영양가 최상급이다. 결정적인 호주 전에서만 4개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혼자 멱살 잡고 끌고 간 셈이다. 덕분에 대표팀은 (1차) 염원을 이뤘다. 미국 마이애미행 전용기를 타게 됐다.

대보경의 11타점을 까마득하다. 멀찍이 몇몇이 기웃거린다. 타점 7개의 루이스 아라에스(베네수엘라), 6개의 블라디미르 게레로(도미니카) 같은 ‘하찮은' 이름들이다.

(사실 이들은 아직 게임수가 적다. 2~3경기 밖에 치르지 않은 탓이다.)

한국시간 9일 밤 현재 WBC 예선 개인 타자 랭킹 (안타). MLB.com 캡처
한국시간 9일 밤 현재 WBC 예선 개인 타자 랭킹 (홈런). MLB.com 캡처
한국시간 9일 밤 현재 WBC 예선 개인 타자 랭킹 (타점). MLB.com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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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끝 찡한 “할 수 있다”

코 끝이 찡한 장면이다. 어제 홈런 직후다. 덕아웃이 열광한다. 그러나 본인은 아니다. 오히려 기쁨보다는 더 애타는 표정이 된다. 그리고 동료들 앞에서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겨우 2-0이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아니, 득점은 그렇다 치자. 어찌어찌 5점은 낼 기세다. 그런데 마운드가 문제다. 3점을 잃으면 끝이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큰소리 칠 때다.

사실 그의 출전 자체가 쉽지 않았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전에서 더 나빠졌다.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힌 탓이다.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그래도 참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대만 전, 호주 전은 1루 수비가 어려웠다. 대신 지명타자로 나가야 했다. (호주와 경기 막판에 잠깐 1루수 투입)

달리는 것도 편치 않았다. 홈런을 치고도 다이아몬드를 돌 때도 평소와는 달랐다. 세리머니도 화끈하게 펼치지 못했다. 아픔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보경’이다. 개의치 않는다. 치고, 또 친다. 대표팀 공격이 막힐 때마다. 1점이 아쉬울 때마다. 어김없이 갈증을 풀어준다. 통쾌한 적시타를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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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구 삼진의 깊은 뜻

멋진 장면은 또 있다. 마지막 타석 때다.
9회 안현민의 희생플라이로 7점째를 올렸다. 스코어 7-2가 됐다.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완성된 다음이다. 2사 1루에서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초구에만 배트를 휘두른다. 그다지 칠 뜻이 없는 스윙이다. 그리고 2구와 3구째는 움직이지 않는다. 평범한 직구가 한복판으로 오는데 말이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당한다. 3구 삼진이다. 이것도 깊은 뜻이 보인다.

더 이상 공격은 무의미하다. 8-2, 9-2가 돼도 달라지지 않는다. 빨리 9회 말로 넘기는 게 낫다. 한껏 뜨거워진 분위기가 식기 전에 말이다.

(아마 이것 때문인 것 같다. 일부 대만 팬들이 그의 SNS에 화풀이한다는 보도가 있다.)

간절한 마음이 닿았다. 간절한 뜻이 이뤄진다. 마지막 아웃도 그의 손에서 이뤄진다. 마운드 위에 타구가 높이 뜬다. 2루수, 유격수, 3루수, 모두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1루수의 목소리가 가장 쩌렁쩌렁하다.

“마이 볼.”

결국 27번째 아웃까지 ‘대보경’이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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