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 환자, 척추에 전기 흘리자 다시 걸었다 [사이언스샷]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2. 11. 10. 07:31 수정 2022. 11. 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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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 환자 9명, 척추에 전극 이식
5개월 전기자극 후 모두 다시 걸어
동물실험서 재활유전자도 확인
유전자·줄기세포 치료도 적용 기대
하반신 마비 환자가 척추에 전극을 이식받고 보행보조기 도움을 받아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임상시험 참가자 9명 중 4명은 나중에 전기자극 없이도 보행이 가능했다./NeuroRestore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환자가 척추에 전기자극을 받고 다시 걸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전기자극에 반응하는 유전자도 밝혀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해당 유전자를 다시 작동시켜 마비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EPFL)의 그레고어 쿠틴 교수와 로잔대병원의 조슬린 블로흐 교수 연구진은 “하지 마비 환자 9명에게 5개월 간 척수에 전기자극을 줬더니 모두 걸을 수 있었으며, 그 중 4명은 전기자극 없이도 보행이 가능했다”고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밝혔다.

하반신 완전 마비 환자도 다시 걸어

이번에 임상시험에 참여한 9명 중 6명은 다리에 일부 감각이 남아 있었지만, 3명은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돼 다리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상태였다. 연구진은 이들의 척추에 전극을 이식하고 정기적으로 전기자극을 주면서 물리치료도 병행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환자 맞춤형 전기자극을 줬다.

5개월 후 임상시험 참가자 전원이 보행보조기로 균형을 잡으면서 걸을 수 있었다. 이 중 4명은 전기자극 없이도 걸었다. 환자들은 처음에 6분 동안 25미터(m)까지 걸었지만 5개월 후에는 보행 거리가 평균 50m로 늘었다.

연구진은 전기자극이 척추에 있는 신경세포를 재편성해서 다시 보행 동작 네트워크를 작동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잔대병원의 블로흐 교수는 “정상인이 걸을 때 뇌에서 온 전기신호에 척수신경이 반응하는 것을 모방했다”며 “같은 신경세포를 적절한 시간에 자극해 다리 근육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기자극은 척수 손상을 입은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데 자주 쓰인다. 최근에는 마비 환자의 척수에 전극을 이식하고 신경을 자극하는 시도도 이뤄졌다.

스위스 연구진은 2018년 처음으로 마비 환자의 척수에 전기자극을 줘 다시 걷게 하는 데 성공했다. 전기자극 시험은 대부분 척수 손상이 덜해 신경이 온전한 환자에게 시도했지만 지난 2월에는 처음으로 척수가 완전히 손상된 환자에 전극을 이식해 물에서 발차기까지 성공시켰다.

척수 전기 자극 원리. 하반신 마비 환자의 척추에 전극을 이식하고 전류를 흘리자 특정 신경세포가 작동해 다시 근육 동작을 유도했다. 임상시험 참가자 9명 전원이 5개월 후 다시 걸을 수 있었다./NeuroRestore

전기자극에 반응하는 유전자도 확인

연구진은 전기자극이 척추의 어떤 유전자를 다시 작동시켰는지 쥐를 통해 확인했다. 하반신 마비 환자처럼 쥐의 뒷다리를 마비시켰다. 이후 척추에 전극을 이식하고 같은 전기자극을 주면서 다시 걸을 수 있을 때 수천 가지 유전자 중 어떤 것이 작동하는지 추적했다.

인공지능 분석 결과, 연구진은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연결하는 연합신경과 관련된 유전자가 마비 환자를 다시 걷게 한 것을 알아냈다. 아직 사람에서도 같은 유전자가 작동하는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 소크 생명과학연구소의 아이만 아짐 박사는 이날 네이처 논평 논문에서 “사람과 쥐를 포함해 모든 척추동물의 척수신경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사람에서도 해당 신경이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건강한 쥐에서 전기자극에 반응한 유전자를 억제하면 보행 능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유전자는 재활에만 관여한다는 뜻이다. 소크 연구소의 아짐 박사는 논평 논문에서 “재활을 유도하는 신경세포를 확인한 것은 전기 자극의 재활 원리를 이해하는 데 엄청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유전자, 줄기세포 치료도 적용 기대

과학자들은 마비 환자의 재활을 유도하는 유전자가 밝혀진 만큼, 앞으로 전극을 이식하지 않고도 치료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소크 연구소의 아짐 박사는 유전자 치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호주 퀸즐랜드대의 마크 뤼텐버그 교수는 이날 네이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 치료도 척수 손상 부위를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치료 범위도 하반신 마비를 넘어 다른 곳으로 확대될 수 있다. 쿠틴 교수 연구진은 지난 6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역시 전기자극으로 원숭이의 팔 동작을 회복시켰다고 밝혔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지난해 목에 붙인 전극으로 전기를 흘려 척수마비 환자 6명의 팔 동작을 회복시켰다.

퀸즐랜드대의 뤼텐버그 교수는 네이처에 “척수마비 환자에게는 보행보다 방광이나 장 기능을 스스로 조절하고 성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쿠틴 교수는 해당 기능과 관련된 신경세포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온워드(ONWARD)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세웠다. 이 회사는 2024년 미국에서 70~80명 대상으로 상용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참고자료

Nature, DOI: doi.org/10.1038/s41586-022-05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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