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에 맞서다 한날한시에 순국한 형제 농민군들

김용희 기자 2024. 9. 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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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동학농민군 열전⑤
최장현·최선현·최기현
지난 1일 최효섭 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이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룡리 석산마을에 조성된 삼의사(최장현·최선현·최기현) 실적비를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무안 지식층 집안, ‘삼의사’로 불려
1894년 두 차례 나주 공격 끝내 실패
호남 초토영서 한날한시에 순국
민족의식 깨운 후손들이 넋 기려

1일 찾은 전남 함평군 학교면에 있는 고막천석교는 7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0m, 너비 3m 다리는 당시에는 드물게 돌로 만들어진 덕에 고막천의 빠른 물살을 수백년이나 버틸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무안현 소재로, 무안에서 나주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숙박시설인 고막원이 자리했고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고막포가 있어 육상·수상 물류 유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무안 등 전남 서남해안 농민군들이 나주 공격에 실패하고 관군에게 쫓겨 고막포로 후퇴했는데 다리가 좁으니까 한꺼번에 건너지 못했어요. 그땐 밀물 때면 물이 사람 키를 넘게 불어나곤 했는데 인근 산에서 포를 쏘아대니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농민군이 수십명이었다고 해요.” 최효섭(75) 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이 가까이 보이는 나지막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검마저 훼손한 일본군의 야만

음력 1894년 11월 전남 무안·함평·진도 등의 동학농민군이 나주성 공격에 실패하고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고막천석교. 김용희 기자

1894년 6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같은 해 9월 동학농민군들은 2차 봉기했다. 전봉준 장군은 북쪽을 향해 진격하면서도 전남 농민군은 남해안을 방비하도록 했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음력 11월9일 우금치 전투에서 패퇴한 뒤 음력 11월27일 태인 전투를 끝으로 해산했지만 전남에 남아 있던 농민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좌선봉장 이규태가 1894년 8월1일 부모에게 쓴 편지에는 “전봉준과 김개남은 거괴라고 할 수 있으나 무장의 손화중과 무안의 배상옥 무리는 전봉준의 2배, 김개남의 5배에 달한다”고 나와 있다.

11월17일 배상옥 장군은 무안과 함평, 진도 농민군을 이끌고 나주를 공격하기 위해 고막원에 집결했다. 당시 전남의 중심지였던 나주는 유림세력이 강해 집강소를 설치하지 못했던 곳으로, 11월 초 손화중 장군이 한차례 공격했다가 패한 직후였다. 배상옥 장군은 손화중 장군과 합류해 나주를 다시 공격할 계획이었다. 첩보를 입수한 관군은 일본군과 함께 대포를 동원해 고막원으로 진출했다. 농민군은 수만명, 관군은 3천여명이었지만 죽창으로는 대포와 소총 등 최신 무기를 당하지 못했다. 농민군은 고막교로 후퇴했고 나주 공격은 끝내 실패했다.

고막원 전투에는 최 전 이사장의 증조할아버지 최선현(1852~1894)도 참가했다. 무안 해제면 석룡리 석산마을에 살던 해주 최씨 형제 농민군 중 둘째다. 최선현을 비롯한 첫째 최장현(1838~1894), 사촌동생 최기현(1866~1894) 형제를 가리켜 무안에서는 삼의사(세명의 의로운 사람)로 부르고 있다.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룡리 마을회관 앞에 조성된 동학길에 그려진 동학혁명 벽화.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최 전 이사장은 “증조할아버지는 고향 마을에서 논 9마지기, 밭 20마지기를 경작하는 등 풍족한 형편이었고 함평의 향교를 오가며 학문을 배운 지식층이었지만 부조리한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환갑이 가까운 형을 대신해 선현 할아버지는 접주(동학 지도자)와 임치진 집강(동학 자치기구인 집강소의 수장)을 맡아 농민군을 훈련했고 기현 할아버지는 접주를 보좌하는 접사로 활동하며 수차례 전투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삼의사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고막원 전투 뒤 고향마을에 숨어 있던 최장현 등은 주민 밀고로 붙잡혔고 음력 12월27일 호남초토영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최장현의 둘째 아들 최영환(당시 17살)이 뒤를 따라가 최장현, 최선현의 주검은 수습했으나 최기현의 주검은 찾지 못했다. 당시 일본군은 주검을 불에 태우거나 얼굴에 검정 기름을 발라 신원을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최 전 이사장과 찾은 석산마을은 바다를 앞에 두고 봉대산(해발 197m) 등 낮은 산에 둘러싸인 조용한 지역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동학의 땅 석룡1리 석산마을’이라고 써진 큼지막한 선돌이 보였다. 둑을 쌓아 농경지로 간척한 석산마을 앞 민대들은 한창 벼가 노랗게 익고 있었다. 축구장 30여개 넓이에 달하는 이곳은 고막원 전투에서 혈전을 벌인 농민군들이 관군의 감시를 피해 훈련을 했던 곳이다. 인근 도리포에서 바닷길을 이용해 영광, 함평 전투에 참여했다.

최 전 이사장은 마을회관 앞 ‘해주 최씨 삼의사 실적비’로 이끌었다. 1973년 후손과 마을 사람들이 세운 비석 자리에 도로가 개설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지난해 새롭게 실적비를 건립했다. 새 실적비는 높이 3m 규모에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민제 최장현, 청파 최선현, 춘암 최기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석의 방향은 도로 쪽이 아닌 민대들을 향해 세웠다. 기존 삼의사 실적비 옆에는 최선현의 부인 밀양 박씨의 열행비가 함께 있었다. 농민군들이 마시던 우물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최 전 이사장은 “삼의사의 죽음으로 민족의식을 깨달은 후손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에게 전답을 팔지 않았고 농악놀이도 하지 않았다”며 “유물이나 문서는 없지만 집안 어른들이 증조부들의 일을 생생히 전달해주셔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유생 김응문도 형제·아들까지 참전

형제와 아들을 이끌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김응문 일가 합장묘를 후손 김성황씨가 살펴보고 있다. 김성황씨 제공

또 다른 유생 집안이었던 응문 김창구(1849~1894) 일가도 고막원 전투에 참여했다가 한날한시 세상을 떠났다.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에 살던 ‘나주 김씨’ 장손 김응문은 1894년 3월 백산대회부터 둘째 동생 효문 김영구(1851~1894), 막냇동생 자문 김덕구(1868~1894)와 큰아들 여정 김우신(1867~1894)을 이끌고 혁명에 참여했다. 배상옥 장군과 친분이 있어 몽탄면 접주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동생인 윤문 김학구(1864~1895)는 가계를 잇기 위해 동학에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0칸이 넘는 집에 사는 등 풍족한 형편이었던 김응문은 2차 혁명이 발발하자 집 뒤에 대장간을 만들어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 훈련, 군자금 등을 지원했다. 배상옥 장군이 나주 공격을 계획하자 고막원 전투에도 참여했다.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입구에 세워진 김응문·김효문·김자문 삼형제와 김응문의 아들 김여정 현창비. 김용희 기자

전투에서 패배한 뒤 김응문 일가는 함평 며느리 집에 숨었다가 주민 밀고로 체포됐다. 12월8일 무안 관아에서 김응문과 자문, 여정은 참수당했고 나흘 뒤 효문도 붙잡혀 처형당했다. 김윤문도 관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고 풀려났으나 1895년 11월 후유증으로 숨졌다. 유족들을 김응문과 자문의 머리 유골만 간신히 수습해 무안읍 월구정의 야산에 애기묘를 몰래 만들어 안장했다. 효문은 무안 몽탄면 사천리, 여정은 무안읍에 묻었다.

2022년 4월 후손들은 합장묘를 만들기 위해 각지에 있던 묘를 발굴했고 김응문 등의 머리 유골을 확인했다. 차뫼마을 입구에는 현창비를 세워 본격적인 기념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여름 차뫼마을 선산에 김응문 4형제와 아들 여정의 합장묘를 조성하며 130여년 만에 김응문 일가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응문의 후손 김성황(87)씨는 “이제야 증조할아버지를 제대로 모실 수 있어 기쁘다”며 “무안의 의로운 정신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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