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상의 ‘시네 한 수’] “요즘 영화 별로?”라는 질문에 스크린이 답하다

유영상 칼럼니스트 2026. 3. 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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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카체이스 신 카타르시스의 정점
하드보일드한 복수의 여정 확인
로케이션·아이디어, 생짜 쾌감

유영상 칼럼니스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상을 거머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하 PTA)은 수상 소감에서, “요즘 영화 별로라더라”는 일부 영화 팬들의 불평에 대해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다. 일견 거칠게 들릴 수 있는 “꺼지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답변이 그것이었다. 이후 올해 공개된 영화들을 치켜세우며 “끝내준다”라는 표현까지 아끼지 않았다. 해석에 따라 “올해 공개된 영화들은 축하받아야 한다” “충분히 훌륭하다” 등으로 번역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들 정말 기똥찼다”라는 우리식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PTA 본인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만 하더라도 미학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일반 관객들의 기호를 맞추지 못한다는 PTA 본인의 평가를 보기 좋게 뒤집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영화 팬을 자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 볼 영화가 없다 혹은 요즘 극장에서 즐길 영화가 없다는 평이 적잖이 들린다. 그렇다면 단지 극장은 마땅한 작품이 있을 때만 가던 곳인지 재차 반문하고 싶어진다. 과거 극장은 데이트의 필수 코스였으며 TV와 달리 대형 스크린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던 스펙터클의 본고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극장은 비단 넷플릭스에 없는 영화를 보기 위한 부차적인 영화 플랫폼 정도로 취급받는다. 아니라면 정말 스스로를 씨네필을 자처하는 이들의 매니악한 장소라는 견해를 지우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몇 가지 원인을 이유로 관객들이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는 현상을 규명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극장 티켓 값의 상승과 팝콘으로 대변되는 먹거리에서 발생하는 추가 지출이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앞서 제기한 이유보다 대체가 가능한 환경 때문에 극장이 외면당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소위 OTT의 등장은 영화 소비의 형태를 바꾸었다. 단지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작의 말거리를 나누고 싶은 욕구라면,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통해 소비하는 영화로도 가능하다. 흔히 “그 배우 연기 잘하던데”, “미장센이 뛰어나더라” 등등.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대개 내 작품을 극장을 통해 증명하거나 체험하게 하고픈 궁극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스크린의 폭력적인 크기만이 시각적 기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귀를 울리는 엄청난 음성 신호들은 관객의 정서를 침잠시킨다. 일련의 과정은 소위 감동이라고 하는 관객의 고유한 정서적 자극을 위해 작용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과 무선 이어폰의 제한된 사운드는 만든 이의 목적을 온전히 구현하기에는 참으로 한정된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나 패러다임 개혁을 마냥 지적할 수만은 없다. 영화에 각별한 애정이 없는 이들에게 앞선 회유들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점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주장은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현상은 인정하되, 구태여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식의 구실을 찾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황금기라던 시절마저 분명 획일화되고 고루하다는 평의 코미디와 조폭 영화는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봉준호와 박찬욱의 강세는 당시를 한국 영화의 영광의 시대로 기어이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시 PTA의 이야기로 돌아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카체이스 신은 작금에 극장에서 느낀 카타르시스의 정점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화면을 가득 메운 구불구불한 도로의 시점 샷 가운데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의 하드보일드 한 복수의 여정을 확인하게 된다. 통상 자동차가 도시의 도로를 점거하고 벌이는 번화한 액션은 해당 영화가 가진 영화적 문법 혹은 접근 방식과 비교할 수 없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배기량의 허세와 더불어 CGI의 과장 대신, PTA는 오직 로케이션과 아이디어가 한 몸이 된 생짜 그것의 쾌감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캘리포니아주 안자 보레고 사막의 굽이진 도로를 담은 풀 샷과 귀를 압도하며 무겁게 퍼지는 머슬카의 배기음은, 오직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만이 줄 수 있는 문화적 포만감을 증명한다.

/유영상 칼럼니스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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