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인도네시아 서세람 섬의 신화 '하이누웰레'
인간의 조상은 식물이 아닐까 하는 세계관
식물은 우리를 낳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우리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해
인간을 조종하는 식물
신화의 세계는 상식과 반대되는 행위와 사고로 자주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 원리를 이해하면 사유의 지평이 확대되며 타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미래에 실현되는 상상력은 종종 과거와 연결되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신화의 세계에 도착하는 이것이 신화의 힘이기도 하다.
식물은 한자리에 붙박인 생명활동 전략을 선택해 동물과는 다른 계를 구성해왔다. 인류는 힘과 지식을 동원해 식물을 길들이고 재배했으며 인류사는 그렇게 영역을 넓혀온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자칭 ‘만물의 영장’ 인간은 식물계를 동물계보다 하위로 분류하지만, 그것은 일면적 사고일 수 있다. 관점의 문제인데 결국 무엇이 살아남아 전해지는가 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공룡처럼 언젠가 멸종할 운명이며 ‘공룡 시대’에도, 인류세에도 건재하는 유전자들은 종이나 계를 불문하고 저들끼리 협력하며 ‘진화의 칼날’을 넘어 전해질 것이다.
같은 방식의 관점에서 식물은 동물을 이용해 후세를 퍼뜨려왔으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인간이 자신들을 키우도록 조종하기까지 했다(마이클 폴란著, 『욕망하는 식물』). 인간이 자신들의 영역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이 순간에도 식물은 인간이 미처 다 알아낼 수 없는 지혜와 힘을 발휘해 번식을 도모한다. 이러한 인식의 반전을 비약해서 말하자면, 농업혁명을 통해 신석기 시대로 들어선 인류사의 사건에 식물계의 계략이 개입한 것이다. 그런 만큼 고대인들은 식물의 힘을 경외했다.

식물에서 태어난 소녀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서세람 섬에는 《하이누웰레(Hainuwele) 신화》가 널리 퍼져 있다. 태고의 사건을 전하는 이 신화에는 식물에서 태어난 소녀가 등장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아돌프 엘레가르트 옌젠과 헤르만 니게마이어가 그들의 저서 『하이누웰레 신화』에서 소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타메네 시와에 사는 아메타라는 미혼 남자가 돼지 사냥을 나갔다. 남자는 도망치다 연못에 빠져 죽은 돼지를 건졌고 돼지의 어금니에서 코코넛을 발견한다. 돼지는 놔두고 코코넛만 들고 온 아메타는 선반에 이를 두었고 그날 밤 꿈에서 코코넛을 땅에 심으라는 계시를 듣는다. 사흘이 지나자 심은 코코넛에서 야자나무가 자랐으며 다시 사흘 후에 꽃이 피었다. 마침 아메타는 마실 것을 구하러 나무에 올랐는데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그의 핏방울이 야자꽃 위로 떨어졌다.
다시 두 차례의 사흘 동안 야자나무에서는 사람의 얼굴 형상과 몸통이 차례로 생겨났고 여기에 사흘이 더 흐르며 소녀가 태어났다. 아메타는 그날 밤 소녀를 파톨라 사롱(뱀무늬의 긴 천으로 된 여성옷)에 감싸 데려오라는 꿈을 꾼 뒤 그대로 실행해 하이누웰레(야자나무 가지)라 이름 지었다. 세람에서는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면 이 같은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이는 아기가 태어난 상징이며 오늘날에도 이 관습은 지켜진다.
하이누웰레는 사흘이 지나자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특출난 재능을 타고나 아버지를 부자로 만들었는데
변을 볼 때마다 귀중품을 배설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마로 춤 축제 기간이 되었고 하이누웰레도 축제에 참여했다. 문제의 축제는 아홉 집안의 사람들이 참여해 9일 밤 동안 장소를 옮겨가며 벌이는 춤판이었다.
그녀는 춤을 추지 않는 여자들과 춤판 가운데 섞여 앉아 아홉 겹의 나선형 원을 그리는 춤을 보았다. 전통에 따라 춤추는 사람들에게 시리와 피낭을 나눠주었고 이튿날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시리와 피낭을 청하지 않는 바람에, 그녀는 대신 그들에게 귀중품을 나눠주었다. 그날부터 하이누웰레는 산호, 중국 도자기 접시, 금귀걸이, 징 등 점점 값나가는 물건을 춤추는 사람들에게 주었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시샘해 죽일 의논을 한다. 계략은 진행되어 사람들은 구덩이를 팠고 마지막 날 밤에 춤을 추던 사람들은 그녀를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딸의 시신 묻은 땅에서 자라난 구근 식물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아메타는 딸의 죽음을 직감한다. 사건 장소로 간 그는 아홉 개의 야자나무 잎맥을 땅에 하나씩 꽂으며 아홉 겹 마로 춤을 추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갔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꽂은 잎맥을 다시 뽑았는데 잎맥에 머리카락과 피가 묻어나왔다. 아메타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딸의 시신을 파냈고 두 팔은 남겨둔 채 여러 조각으로 잘랐다. 이후 시신 조각을 묻은 곳곳에서는 지상에 없던 구근식물이 자라나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다."
옌젠과 니게마이어 두 저자는 하이누웰레 신화에서 농경신화의 유형을 하이누웰레 형과 프로메테우스 형으로 구분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전자가 사체화생(死體化生, 살해된 몸에서 온갖 곡식과 알뿌리 식물이 생겨남) 신화라면, 후자는 문명의 외부 유입설(신들로부터 훔쳐온 불처럼 문명이 외부에서 전해졌다는 의미)을 말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식물에서 태어나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뒤 구근식물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하이누웰레 신화는 죽음과 생식력의 관계를 말해준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죽음을 비껴갈 수 없는 인간의 존재방식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남겨놓은 딸의 두 팔을 들고 아메타는 물루아 사테네에게 갔다. 물루아 사테네는 사람들이 생겨난 바나나 가운데 익지 않은 바나나에서 태어난 소녀로, 사람들의 지도자였다. 아메타에게 사정을 들은 물루아 사테네는 사람들의 살인 행위에 몹시 화를 내며 조치를 마련한다. 우선은 타메네 시와에 아홉 겹 나선형의 문을 만들어 문의 한쪽에다 나무 기둥을 세웠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 다음 문을 통과해 자신에게 오는 자들만을 사람으로 남겼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온갖 동물과 정령으로 만들어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지상을 떠났다. 이는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른 대가였으며 사람들은 죽어야만 그녀에게 갈 수 있었다. 하이누웰레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에게도 죽음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사테네의 결단은 단죄와는 거리가 멀다. 세람인들은 태고시대의 사건을 통해 죽음과 출생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도덕적 판단을 배제하는 해석으로 이들 학자는 서구의 신화 연구에 획기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식물에서 태어나고 식물을 다시 먹는 인간
생명을 낳는 생식력을 식물의 모습으로 가시화했다는 점에서는 세람인들의 식물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이누웰레 신화는, 생명의 근원은 식물이며 인간도 여기서 나왔다는 대칭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식물에서 태어난 인간은 식물을 먹고 살며, 인간을 묻은 땅에서 자란 식물은 인간을 살게 하는 순환구조를 이룬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의 비결을 터득한 고대인들에게 대상이 식물(또는 동물)로 현현한 신이든, 사람이든 서로를 먹으며 서로를 키우는 의례는 자연스럽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피서하는 나무」에는 이 같은 ‘공식'(共食, 제물로 바친 동식물을 나눠 먹음으로써 숭배 대상과 일체가 된다는 믿음)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반려견의 무덤에 그 반려견을 상징하는 나무를 심고 이사 갈 때마다 나무는 물론 그 밑의 “뼈를 수습”해서 옮긴다. 이는 하이누웰레의 뼈와 살을 땅에 묻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식물기』에 실렸으며 함께 실린 단편들은 식물의 전당 ‘가라시야’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엮여 있다. 호시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장편 『오레 오레』와 『론리하트 킬러』가 먼저 출간되었으며 지난해 출간된 『식물기』는 식물에 정복당하는 인간의 서사를 그리고 있다. 이곳 산하 연구소는 식물의 능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프로젝트를 벌인 곳으로 식물전환수술을 받는 인간들도 등장한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식물기』에서 식물과 인간
인간이 식물을 갈망하기까지는 지구촌에 셀 수 없는 동기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앞당긴 사건이 「디어 프루던스」의 인류가 겪은 ‘암흑의 시대’로, 코로나 팬데믹을 연상시킨다. “닿는 곳부터 옮아 부패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복숭아열’”(56쪽)이라는 이름이 붙은 ‘썩을 병’은 섹스마저 목숨 거는 행위로 만들었다. 보기에 따라 이 짧은 한 문장은 에이즈는 물론 매독, 흑사병, 한센병까지 인류가 겪어온 전염병의 역사를 훑게 만든다. 이 시대를 거치며 감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하지만 집안에 틀어박힌 사람은 틀어박힌 대로 불안과 공포에 떨며 뇌가 썩어간다.
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절박한 상상력을 동원해 다른 생명체로 전환한다. 이들이 선택한 길은 애벌레나 민들레 씨 같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아주 하찮은 생태계의 최하위 ‘생명체-되기’였다. 그런가 하면 『스킨 플랜트』에는 꽃에서 ‘플라워즈’라는 아기가 태어난다.
호시노 도모유키는 식물계와 동물계의 관계랄지, 인간과 동물을 바라보는 눈에 편견이 없다. 오히려 점령자처럼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을 가장 하위에 두고 서사를 끌어간다. 영장류의 지위를 포기하고 다른 동물이 된다든지 식물이 되거나 식물에 먹히는 상상은 신화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작품집의 서막과도 같은 「피서하는 나무」에서는 공식(共食)을 실현하면서 인간은 잃어버린 세계로 회귀하고, 『식물기』는 인간은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존재라는 듯, 돌이킬 수 없는 ‘운명’으로 인류의 미래를 끌고 간다.
고대에서 유래한 신성한 의례(공식)라든가 식물을 주체로 바라보는 세상은 불편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신화적 세계관, 인간과 동식물을 동등하게 보는 대칭적 세계관이 가진 힘으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게 한다.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