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여담] 信口雌黃 <신구자황>

박영서 2026. 3.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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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신, 입 구, 암컷 자, 누를 황. 사실을 무시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는 의미다. ‘신구개하’(信口開河·입을 열면 강물 터지듯 마구 쏟아냄), ‘조언비어’(造言飛語·사실이 아닌 말을 지어내어 퍼트림)와 의미가 상통하다.

‘신구자황’의 주인공은 중국 서진(西晉) 시대 명사(名士) 왕연(王衍)이다. 그는 재능이 뛰어났고 용모도 출중했다. 특히 달변이었다. 하지만 말의 유려함이 곧 진실을 담보하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않는 말이 문제였다.

진서(晉書) 왕연전(王衍傳)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義理有所不安,隨卽改更,世號口中雌黃.’ 이치(의리)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말을 고쳐 바꾸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입 속에 자황(雌黃)이 있다’고 불렀다는 뜻이다. 자황은 옛사람들이 붓글씨를 쓰다가 오자가 나왔을 때 쓰던 황색 안료다. 일종의 지우개였다. 잘못 쓴 글자 위에 바르고 다시 쓰면 됐다. 왕연의 경우 자황은 혀끝에서 쓰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논리를 만나면 확인하거나 성찰하기보다, 말을 덧칠해 자기 편의대로 바꾸었다는 비유다.

오늘날 세상에서 ‘신구자황’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그렇다. 침소봉대해 말을 툭 던져놓고 파장이 커지면 슬그머니 발을 뺀다. 논란이 일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한 발 물러선다. 불리해지면 표현을 바꿔 책임을 비켜간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에 정치는 흔들리고 국민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공자(孔子)는 “言忠信”(말은 충실하고 신의있게 하라)이라고 했다. 입에 자황을 바르듯 말을 덧칠하기 전에, 말에 따르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라는 경계다. 정치의 힘은 언변이 아니라 진실에 있다. 혀끝의 기교로는 국민을 속일 수 없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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