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가 수입차보다 부품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충격적인 소비자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산 브랜드의 애프터서비스 과정에서 부품 지연을 경험한 소비자가 5명 중 1명 이상에 달했다. 반면 렉서스를 비롯한 일부 수입 브랜드는 입고 하루 만에 수리를 완료하는 등 정비 속도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현대차와 기아의 애프터서비스 부품 수급난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길어진 부품 리드타임이 회복되지 않으면서 정비소들은 부품이 없어 손님을 돌려보내는 일이 일상화됐다. 소비자들은 직접 하청업체에 전화를 걸며 부품 발주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하루 만에 고장난 신차, 한 달 반 동안 정비 대기”
지난 9월 1일 기아 EV9 GT를 인도받은 장종혁(30)씨는 바로 다음날 계기판에 경고등이 떴다. 출고 하루 만에 발생한 고장이었다. 장씨는 당일 바로 오토큐에 차를 입고했지만, 한 달 반이 지난 10월 15일이 되어서야 차를 인도받았다. 부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매일같이 기아 고객센터와 부품을 총괄하는 현대모비스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담당 부서에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뿐이었다. 결국 직접 해당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를 찾아 연락했으나, “현대모비스에서 발주가 들어와야 생산할 수 있는데 현재 발주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장씨는 “부품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일정이나 사정을 알려주지도 않는 게 문제”라며 “소비자를 지치게 하는 기아 차를 다신 안 살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자동차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소비자는 “작년에 사이드미러를 구하지 못해 한 달을 기다렸다”며 “내가 직접 정비소와 현대모비스 두 곳에 전화하고 닦달하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유리 기어 고장이 나 수리하려고 하니 한 달을 기다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비소도 손 못 쓴다 “주에 네댓 명씩 그냥 돌려보낸다”
정비소 현장에서도 부품난은 이미 일상화됐다. 서울 금천구의 한 정비업체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때부터 부품이 너무 안 들어온다”며 “7~8년 된 차들은 부품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손님이 오면 일단 차량을 받았지만 이제는 부품 재고부터 확인한다”며 “오늘도 차주 한 명을 돌려보냈고 주에 네댓 명은 수리 자체를 못 받고 돌아간다”고 전했다.
서울 성동구의 정비업체 관계자도 “재고가 넉넉한 부품은 금방 해결되지만 안 구해지는 부품은 몇 달이 지나도 답이 없다”며 “요즘은 국산차도 수입차만큼 수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과거 ‘부품이 풍부하고 수리비가 저렴하다’는 국산차의 이미지는 이제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최근 자동차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부품 수급 지연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18.8%였다. 하지만 국산차 소비자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21.3%로 급증했다. 반면 수입차는 18.3%에 그쳤다. 즉 국산차 오너 5명 중 1명 이상이 ‘부품 대기 때문에 수리 지연을 겪었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형 차종이나 오래된 모델의 경우 부품 재고가 충분하지 않아 서비스센터 간 물류 이동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렉서스는 93.4% 하루 만에 끝낸다” 국산차는 평균 일주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렉서스는 차량 입고 당일 수리를 마치는 비율이 93.4%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토요타와 혼다도 90%를 웃돌며 일본 브랜드의 정비 효율성이 돋보였다. 반면 국산차의 경우 대부분이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국산 브랜드 중에서는 KGM(옛 쌍용자동차)이 유일하게 평균을 상회했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여전히 수리 기간이 길었다. 기아의 경우 평균 수리 소요 기간이 6.7일에 달해 소비자들의 체감 불만이 높았다.
수입차라고 해서 모두 느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브랜드는 국산차보다 빠른 대응력을 보였다. 테슬라의 평균 부품 대기 기간은 8.4일, BMW는 10.5일, 볼보는 12일로 나타났다. 반면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평균 10일 이상이 걸렸다. 국산차 중에서도 KGM과 한국GM은 일주일 이내에 처리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브랜드 간 서비스 차이는 단순한 기술력보다 정비 체계의 자동화 수준과 고객 응대 속도에서 갈린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재고 최소화 정책이 부른 부품 품절 대란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현대·기아의 애프터서비스 부품 수급난은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과거에는 출고 차량의 비율에 맞춰 애프터서비스용 부품도 함께 비축했지만 지금은 재고 부담을 줄이려 최소 단위만 갖고 있다”며 “완성차용 부품과는 다르게 정비용 부품은 그때그때마다 주문하다 보니 결품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자동차관리법상 단종 차량의 부품 보유 의무 조항이 있으나 실효성이 낮다”며 “애프터서비스 부품을 일정 기간 내 공급하도록 세부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 기아와 현대모비스가 재고 보유량과 비용 문제 등을 잘 조율해 소비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부품 수급난이 일부 품목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일 뿐 전체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2만~3만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중 일부 품목에서 영세한 협력사 사정으로 일시적 지연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전체 공급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러 발주를 안 넣거나 공급을 늦추는 게 아니라 영세 협력사 사정이나 원자재 수급 문제 등 복합 요인으로 특정 품목의 납기가 늦어질 수는 있다”고 해명했다.
정비비용 격차도 심각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2.7배”
정비 속도뿐 아니라 비용 격차도 문제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7월 전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제25차 자동차기획조사에서 수입차 정비비용이 국산차 대비 평균 2.7배 높게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비 현장에서 발생하는 과잉정비, 정비오류, 임의정비 비율은 평균 5.8~7.6% 수준에서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국산차는 6~8%, 수입차는 4~6%로 국산차 보유자의 부정 경험이 더 많았지만 비용 부담에서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정비·수리 후 동일 문제가 재발한 경험률은 국산차가 6.9%로 낮아지며 처음으로 수입차 10.5%보다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정비 결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경험 역시 국산차는 8.5%, 수입차는 9~10%대에서 정체돼 국산차의 개선세가 뚜렷했다. 실제 지난 3년간 국산차는 동일 문제 재발률이 13→13→6.9%로 급감했고 불만 제기율도 15→13→8.5%로 하락했다. 반면 수입차는 동일 문제 재발률이 11%대, 불만 제기율이 9~10%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투명한 소통이다”
물리적인 대기 시간보다 더 큰 문제는 체감 만족도다. 소비자는 단순히 며칠을 기다리느냐보다 정비 진행 상황을 얼마나 투명하게 안내받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조사에 따르면 정비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쉽다고 답한 비율은 볼보가 89.7%로 3년 연속 1위였다. 일본 브랜드인 토요타(88.1%), 렉서스(85.6%)가 그 뒤를 이었고 국산차 중에서는 KGM이 75.2%로 선방했다.
서비스센터 내 편의시설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게 조사됐다. 응답자 90.6%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답했으며 볼보는 94.9%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산차 중에서는 제네시스가 92.4%로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문제는 편의시설 이용 안내율이 33.7%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좋은 시설이 있어도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지 않아 체감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번 조사는 단순히 국산차의 서비스 속도가 느리다는 사실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의 본질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제 소비자는 빠른 수리만큼이나 정비 현황을 명확하게 알고 싶어하고 기다리는 동안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경험을 원한다. 전문가들은 “국산차 브랜드가 수입차처럼 정비 프로세스의 투명화와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비스 품질 경쟁은 속도보다 신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국산차는 품질과 디자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정비 서비스에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국산차니까 빠르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정비 속도, 부품 수급, 고객 응대 — 이 세 가지 요소는 단순한 서비스 품질이 아니라 브랜드 신뢰의 바로미터다. 국산 브랜드가 진정한 고객 중심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선 시간 단축보다 소통 강화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