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아, 이 녹음은 꼭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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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네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할 때마다 뜯어 말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네 성격에 내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않았다.


아버지 된 입장으로서 아들이 이런 일을 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네가 이 일을 정녕 하겠다면, 이 녹음만큼은 네가 꼭 듣기를 바라마.


첫째, 이 일을 시작하면 몇 가지 준비물을 따로 준비하거라.


물론 회사에서 필수적인 물건을 챙겨주겠지만, 몇몇 물건은 나처럼 오랫동안 이 짓을 해온 사람들만 가지고 있다.


일단 목록부터 말해두자면, 방수 절연 테이프, 새 간식, 각성제, 야광 패치, 아날로그 시계, 개인 지도, 야광 펜이다.


우선 테이프는 네 목숨을 구해줄 소중한 도구이니 꼭 간직하고 다니거라.


종종 방수복에 상처가 나서 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구멍이 생긴 것 같다면 최대한 빨리 막거라.


이곳의 물은 평범한 하수다 아니다. 물에 최대한 닿지 말거라.


둘째로 새 간식은 네가 데리고 다닐 카나리아에게 줄 것이다.


카나리아는 나중에 더 말해주겠지만 너의 생명줄이다. 종종 간식을 줘서 기운을 복돋아주거라.


각성제는 비상시에 쓸 물건이니 잘 챙겨두면 좋다.


종종 산소가 충분한데도 의식이 멀어지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 절대 잠들거나 쉬면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신 차리고 움직여라.


야광 패치는 네가 길을 잃었을 때 아주 유용하다.


길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쉰 걸음마다 야광 패치를 벽에 붙여라.


그럼 네가 온 길인지 아닌지 판단이 설 것이고, 원래 길로 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아날로그 손목 시계는 네가 얼마나 하수도에 있었는지 체크하기 위해 필요하다.


회사에서 디지털 시계를 제공해주긴 하나, 이곳에선 종종 기계가 이유 없이 망가진다.


하지만 이 애비가 여기 다니면서 이 아날로그 시계는 한 번도 망가진 적이 없었다.


12시간 이상 하수도에 있으면 살아서 못 나간다. 항상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하거라.


하수도에선 시간 감각이 이상해져서 1, 2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6시간이 지난 경우도 흔하다.


개인 지도는 회사에서 주는 것과 별개로 네가 하나 챙겨두면 좋다.


지도를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위험한 구간은 미리 표시해두었다가


나중에 거길 피해서 다닐 수 있으니 아주 유용하다. 길을 최대한 외워두는 것이 좋으나,


이 하수도는 기묘한 곳이라 종종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껴질 때가 흔하단다.


그러니 항상 지도를 확인하면서 네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체크하거라.


마지막으로 야광 펜은 직원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남기는 비밀 신호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야광 펜으로 쓴 글자를 못 읽는다. 벽에 야광펜으로 쓴 글이 있다면


같은 직원이 쓴 것이니 유심히 읽어 보거라.


보통 근처에 뭐가 있는지 그림으로 표시해두었을 것이다.


너도 뭔가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벽에 써두거라.


우린 함께 다닐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도와줄 순 있단다.


둘째, 회사에서 너에게 카나리아 한 마리를 줄 것이다.


그 카나리아는 너의 유일한 파트너이자 생명줄이다.


이 하수도에선 무리 지어 다니는 게 금물이다,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게 널 겁주기만 할 것 같으니


자세히는 설명 않으마. 그러나 반드시 혼자서만 다녀야 한다.


그리고 그 카나리아는 평범한 새가 아니다. 나도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회사에서 평범한


카나리아를 준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더구나.


그 카나리아는 너보다 민감하고 주의 깊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네가 눈치채기 전에 울기 시작할 것이다.


카나리아가 울기 시작하면 뭔가 네 주위에 위험한 일이 시작됐다고 알아두거라.


그리고 카나리아가 더 크게, 더 조급하게 울면 아주 위험해지고 있다는 신호이니 정신 바짝 차려라.


카나리아는 바보도 아니고 네 노예도 아니다.


네 파트너, 네 친구라 여기고 항상 잘 돌봐주고 네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라.


무덚그럼 카나리아도 네 정성을 알고 널 살려주려고 무던히 노력해 줄 터다.


마지막으로, 드물지만 카나리아가 사람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만 알아두거라.


셋째, 하수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다.


이건 회사에서도 교육해 줄 터이지만, 노파심에 따로 말해주마.


제일 중요한 거 두 가지는 절대 하수도에서 12시간 이상 머무르지 말 것, 넘어지지 말 것이다.


하수도는 도시 전체에 깔려있다. 네가 거기서 헤매기 시작하면 12시간은커녕 며칠이 지나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네가 12시간 넘게 거기 있으면 그것들이 너의 위치를 알게 된다.


그럼 끝이다. 12시간이 지나면 죽어도 못 빠져나온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넘어지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 넘어지면 두 번 다신 못 일어난다.


보통 하수도에는 네 허리, 배까지 물이 차올라 있고, 넌 장비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물의 무게, 장비의 무게에 짓눌려 그대로 익사 할 것이다.


너 혼자 있으니 누가 널 건져 줄 수도 없다.


그러니 항상 발에 뭐가 걸리지 않는지 주의하고, 벽이든 뭐든 손으로 잡고 다녀라.


넷째, 빛을 조심해라.


절대 2미터 앞이 보일 정도로 세게 랜턴을 켜지 마라.


그 안은 자기 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만, 그게 무섭다고 빛을 세게 켜면 그것들의 시선을 끌고 만다.


그러니 항상 아주 미약한 빛으로도 네 위치와 앞을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너의 눈보단 너의 직감, 살려줘 카나리아의 소리를 믿거라.


눈은 생각보다 거짓말을 많이 한다.


또, 네가 거길 돌아다니다 보면 밝은 빛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켜 둔 것이다.


빛을 보면 일단 경계해라. 같은 직원과 동선이 겹치는 일은 거의 없다.


설령 그렇더라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리 밝은 불을 켤 리 없다.


다섯째, 인기척을 조심해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종종 하수도 밑에 있다 보면 발소리가 들린다.


첨벙첨벙도 아니고, 터벅터벅하는 발소리 말이다.


그럴 때는 일단 네 산소통 살려줘 게이지를 확인해라.


보통은 산소 부족 때문에 환청을 듣는 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 들린다면 실제로 무언가가 널 따라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는 이거 두 가지만 떠올려라.


하나, 카나리아가 울면 꽤 가까이 온 것이니 서둘러서 움직여라.


둘, 카나리아가 울지 않으면 널 따라오는 게 아니니 일단 안심해도 좋다.


발소리가 들려서 무섭다고 달리지 마라, 넘어지면 죽는 거고 네 소리를 듣고 그것이 너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수도 내부에선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달리지 말거라.


겁을 먹고 패닉에 빠지면 죽는다고 여겨라. 마음 굳게 먹어야 살아서 나간다.


다음으로 누군가가 널 보고 있다거나, 누가 널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사람의 직감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땐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거라.


많은 사람들이 이 실수 때문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무리 무서워도 꿋꿋이 앞만 보고 나아가거라.


네가 먼저 보지 않으면, 그것도 널 보지 않는다.


다음으로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난 살려줘 경우다


같은 직원이라면 너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양팔을 펼치고 크게 세 번 흔들 것이다.


그게 우리끼리의 신호이니, 넌 그 신호를 보면 한쪽 팔만 들어서 두 번 흔들어라. 그게 정상 신호다.


네 신호가 틀리면 상대가 너에게서 달아날 터이고,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


만약 네가 신호를 보냈는데 신호가 틀리거나, 반대로 상대 신호가 이상하면 그 즉시 뒤돌아서 도망쳐라.


그건 사람이 아니다.


여섯 째, 몇몇 구간에선 특히 살려줘 조심해야 한다.


일단 하수도에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가 한 구역마다 하나씩 있다.


다른 출입구는 보통 막혀있으니, 지도에 표시된 출입구만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도망치다가 급한 마음에 열린 출입구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


확실히 말해두마. 그건 도시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통하는 출입구다.


만약 네가 거기로 나갔다면 두 번 다신 돌아올 수 없다.


구별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출입구 밑에 표시한 출입구 번호를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본 적 없는 언어로 쓰여 있다면 그건 출입구가 아니다.


둘은 하수구에서 밝은 빛이 들어올 때인데, 보통은 빛이 들어와도 그렇게까지 밝지 않다.


그러니 살려줘 출입구로 나갈 때는 두 번씩 더 확인하거라.


다음으로 네 주위에 있는 물이 갑자기 피처럼 물드는 경우다.


이럴 때는 카나리아를 믿거라. 카나리아가 울면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


무언가가 네 주위로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도 절대 움직이지 말거라.


울음이 그치면 그때부터 빨리 그 구간을 지나야 한다,


하수도에는 홀이라고 하여 다른 구역과 이어진 거대한 공간이 있다.


홀에 들어가면 우선 다른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만약 다른 직원이 있다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절대 무리 지어서 다니지 말거라.


만약 그 직원이 너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애원하면 그 사람은 홀린 것이니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라. 그럼에도 자꾸 따라오면 그땐 방법이 없다.


그때는 네가 어떤 짓을 해도 회사에 설명만 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려줘 드물게 환각이 보이는 살려줘 구간이 나온다.


우린 거길 그림자 극장이라 불렀다. 빛이 없는데도 벽에 그림자가 돌아다니는 구간이다.


그 구간에 들어서면 그림자에 눈길도 주지 마라.


특히 머리 긴 여자 그림자가 보이면 눈을 마주치지 말거라.


절대로 마주쳐선 안 된다.


일곱째, 특수한 경우 행동 요령이다.


드물게 하수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는 네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게 옳지만, 이 애비가 겪은 경우를 예로 들어 살려줘 설명하마.


가끔 시체가 물에 둥둥 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엔 복장을 유심히 살펴 보거라.


만약 우리 직원 복장이라면 가서 살려줘 그 사람의 개인 물건만 챙기고 떠나라.


절대 시체 수습하겠답시고 끌고 다니지 마라. 그것들은 시체 냄새에 민감하다.


만약 시체가 알몸이거나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면 살려줘 절대 다가가지 마라.


그걸 무시하고 가까이 갔다간 너도 같은 꼴이 된다.


다음으로 드물게 하수도에 들어왔다가 갇힌 사람을 살려줘 만날 수 있다.


보통은 노숙자나 바깥에서 도망친 범죄자인데, 널 보면 살려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12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너도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너의 뒤에 출입구가 있다고 말한 뒤 그 자리를 떠나라.


같이 가자고 권유하면 적당히 변명하거라. 측은한 마음에 살려줘 도와주려고 하면 너도 끌려간다.


등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도 고개 돌리지 마라.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다. 네 잘못 아니다.


몇 가지 더 얘기...얘기하자면...후...살려줘


종종 생각없이 시선을 돌렸다가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보통 몇 미터 앞이나 물 속에서 누군가가 빛나는 눈으로 널 보고 있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절대 눈 깜빡이지 마라. 그것을 속여야 한다.


눈을 떼지 말고, 그것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뒤로 천천히 움직여라.


만약 눈을 깜빡였다면 방법이 없다. 이제 그게 널 쫓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줘 가장 가까운 출입구까지 도망쳐라.


또, 만약 네가 같은 길을 반복해서 지나가는 것 같다면 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서둘러 깨어나야 한다. 망설이면 순식간에 꿈 속에서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보통 하수도 내부는 아주 조용한데, 특히 살려줘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소리가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 텐데, 그럴 때는 살려줘 즉시 왔던 살려줘 길로 살려줘 되돌아가거라.


넌 방금 절벽에서 살려줘 떨어질 뻔했다. 하수도에는 살려줘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하아...살려줘 후....살려줘


미안하구나. 이제 더 갈 곳이 없구나.


카나리아도 아까부터 살려달라고만 하고 있고, 이 아이도 이젠 방도가 없다는 걸 안 모양이구나.


벌써 여기 들어온지 14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출입구도 전부 사라졌고 온 사방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종현아, 이 아비가 이 짓 한다고 어릴 적부터 너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게 한이구나.


네 엄마한테 전부 다 떠맡겨 놓고선, 그래놓고선 이제와서 아비 노릇 한다고 남기는 게 이까짓 녹음기 하나가 전부라니...


아들, 이 아비 시체 찾으면 장례고 뭐고 필요없다. 그냥 너 하나만 무사하면 이 애비는 만족한다.


많이 많이 사랑한다.


하늘나라에서 기다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