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조城에 핀 역사의 꽃 '안젤름 키퍼 전시'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는 작품 전시

지난 4월부터 일본 오사카에서는 세계 엑스포가 한창입니다. 때마침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여러 도시에서는 많은 전시회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교토의 니조성(二條城)에서 열리는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전시가 흥미로왔습니다. 도대체 키퍼는, 그리고 교토는 왜 이곳을 전시장으로 선택했을까요? 니조성으로 가기 전에 20세기 이후 다양해진 전시공간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술품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곳을 미술관, 박물관 혹은 갤러리라고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현대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은 시대나 사조, 주제에 따라 인류 최고의 작품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이후 예술가들은 제도화된 공간을 벗어나려는 여러 시도를 보여줍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나와 특정한 장소가 지닌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지역 특정적 예술(site-specific-art)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요.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1938 -1973)의 <스파이럴 제티 Spiral Jetty>(1970, 길이 460m, 굵기 4.6m)가 대표적입니다.

스미슨은 미국 유타주(州)의 소금호수에 돌과 흙을 이용하여 길이 460m의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을 설치합니다. 50년이 지났지만 작품은 여전히 호수에 건재하면서 물 속에 잠기기도 하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자연과 인간, 예술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1938-1973)의 '스파이럴 제티 Spiral Jetty', 1970, 길이 460m, 굵기 4.6m. 사진= https://www.wikiart.org/en/robert-smithson/spiral-jetty-1970

작품은 장소를, 장소는 작품을...새로운 의미 창조

세계 각지의 거대한 자연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을 천으로 둘러싸는 작업을 했던 대지예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거주민들이 대부분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마을 전체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일본의 섬 이누지마의 ‘이에 프로젝트’, 리버풀의 크로스비 해변에 100개의 인체 조각을 설치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ry, 1950-) 등은 예술의 경험 공간을 자연과 삶 속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듯 자연과 삶의 맥락 속에 작품이 설치되면, 전시되는 ‘장소’와 작품은 제도화된 전시 공간과는 다른,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작품은 장소를, 장소는 작품을 비춰주고 반영하고 굴절시키면서 예기치 못한 풍부한 의미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에서 열린 '제프 쿤스 베르사유' 전시회. 사진= https://kr.pinterest.com/pin/216243219603069888/

2008년 9월 10일에서 2009년 1월 4일까지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에서 열린 <제프 쿤스 베르사유> 전시회도 좋은 예입니다. 이 전시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당시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 관장이었던 장 자크 아야공은 “역사유적을 보호하는 것은 나프탈렌 속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예술품 전시공간으로서의 역사유적의 무한한 활용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습니다. 그 이후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은 이우환, 필립 파레노, 장 미셸 오토니엘, 아니쉬 카푸어 등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작가 전시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고요.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을 모색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작품과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의 이질성이야말로 이상적인 예술 감상 요건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인지 전세계에는 용도가 폐기된 오랜 건축물들이 '컨템퍼러리' 미술관이 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개축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2000년 5월 개관), 독일 에센의 탄광 및 제철 공장을 탈바꿈시킨 제헤 졸버레인 복합 문화공간, 베네치아에 문을 연 피노 컬렉션의 팔라초 그라시(2006년 개관)와 푼타 델라 도가나(2009년 개관),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 피노 컬렉션(2021년 개관) 등 역사와 문화, 산업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 멋진 전시관으로 재탄생되는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안젤름 키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논쟁이 된 화가 겸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안젤름 키퍼와 일본 예술감각과의 만남

안젤름 키퍼는 2022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2024년에는 피렌체의 팔라쵸 스트로치에서 전시회를 했고, 2025년 현재,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과 고흐 미술관에서 동시에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독일 출신 예술가입니다. 일본과는 1993년부터 교토, 도쿄, 히로시마 등 여러 차례 전시를 한 인연이 있는데요. 2025년 3월 31일부터 6월 22일까지 열리고 있는 전시(Anselm Kiefer SOLARIS)는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 교토 니조성의 옛 부엌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조금 색다릅니다. 니조성에 가보도록 할까요?

일본 니조성.

니조성은 에도(江戸) 시대 때 지어진 성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 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뒤 천황에 의해 쇼군으로 임명됩니다. 수도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로 천도하는데, 여전히 교토에 있었던 천황을 방문하러 올 경우 자신이 머물 숙소로 지은 것이 니조성입니다. 1602년에서 1603년 사이에 건설되었습니다. 이곳은 번영과 평화를 구가했던 에도 막부의 시작과 영광뿐만 아니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을 간직한 곳인데요.

1867년 10월, 에도 막부의 열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쇼군이였던 도쿠가와 요시노부(1837-1913)가 교토 번의 중신들을 모아 대정봉환(大政奉還, 에도 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돌려준 것을 의미)을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후 니조성은 천황의 별궁이 되었다가 교토시가 관리하게 되었고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안젤름 키퍼, 라, 2019, 납, 940x950cm. 사진=정연복

납으로 조각한 태양신 '라'

니조성에서 열리는 키퍼의 전시는 1년 전에 결정이 되었는데요. 니조성이라는 특수한 ‘장소’의 특성을 반영하여 새롭게 제작한 작품과 이전에 제작한 작품을 포함, 총 33점의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맨 먼저 마당에서 납으로 만든 9m 높이의 조각 <라>(2019)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라’는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을 나타내는데요. 라틴어로 ‘태양의’라는 뜻을 가진 전시제목 ‘솔라리스’와 연결되는 조각입니다. 역사와 신화, 기독교적 주제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작품의 주제로 삼는 키퍼에게 '납'은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키퍼는

납이 인류 역사의 기억과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납은 연금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변화와 재생의 상징이 됩니다.

조각은 높은 기둥 위에 몸통 양편으로 큰 날개를 펼치고 있는 새 형상인데요. 가만히 보면 몸통은 팔레트 모양입니다. 아래쪽의 기둥에는 똬리를 튼 뱀이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고요. 기둥에 묶여있고 뱀의 공격을 받지만 하늘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형상화한 조각은 예술을 통해 키퍼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순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안젤름 키퍼, 옥타비오 파스를 위해, 202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돌, 목탄, 금박, 380x950cm. 사진=정연복

<라>를 본 다음 작품이 전시된 부엌과 조리실로 들어갑니다. 화려한 궁전과는 달리 특별한 장식 없이 높은 층고의 실내가 어두운데요.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키퍼의 작품에 더할 나위없이 어울립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회화 <옥타비오 파스를 위해>(9.5x35m, 2024)가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이번 전시의 핵심주제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배경에는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가 그려져 있고 하늘을 향해 큰 입을 벌린 채 고통으로 절규하는 얼굴이 앞쪽에 불쑥 솟아 있습니다. 물감이 두터울 뿐 아니라 숯이나 돌을 붙여 부조처럼 보일 정도로 캔버스는 입체적인데요. 그림의 주된 색깔은 청록색과 금색입니다. 청록색은 금속을 산화해 만든 것이고 전시공간의 특성을 반영하고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니조성 건축물 어디서나 보이는 주요 소재인 금색을 활용했습니다. 깊은 바다빛 혹은 창공처럼 보이는 청록색, 여기 저기 빛나는 금색을 통해 그림은 어둡지만 밝고, 참혹하면서도 찬란하게 폐허에서 빛과 꽃을 피어올리는 듯했습니다.

그림 맨 위쪽에는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의 시 <물, 돌, 바람>의 한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다른 사람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존재. 공허한 이름들 사이를 지나 사라지는 존재들.”

모두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구별이 무의미한, 왔다가 사라져가는 허망한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파스의 문제의식

을 통해 키퍼는 독일과 일본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은 같은 전범국으로서의 독일과 일본의 참회, 폭격으로 참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히로시마인들의 상처에 대한 위무를 넘어 전쟁과 파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류 전체를 위한 진혼곡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안젤름 키퍼, 안젤름이 여기 있었다, 202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목탄, 금박, 280x570cm. 사진=정연복

안젤름이 여기에 있었다

키퍼의 작품은 일견 폐허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어둡거나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안젤름이 여기 있었다>(2024)와 같은 방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과 어우러지며 마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자연의 향연을 펼쳐줍니다.

안젤름 키퍼, 모겐소 플랜, 2025, 강철, 모래, 면, 석고, 천, 점토, 아크릴 물감, 셸락, 금박, 테라코타, 돌, 납. 사진=정연복

2012년부터 설치와 회화 작업을 이어온 <모겐소 플랜>(2025)의 스케일과 아름다움은 압도적입니다. ‘모겐소 플랜’은 1944년 제2차 퀘백 회담에서 제안된 안건으로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았는데요. 전범국 독일을 무력화하기 위해 산업 시설을 해체하고 농업 국가로 만들려 했던 계획을 말합니다.

작품은 창, 바닥, 서까래의 짙은 목재와 하얀 벽의 대비가 만드는 일본 건축의 절제미가 느껴지는 방에 설치되어 있는데요. 모래가 깔린 바닥에 금칠이 된 곡식이 어지러이 서 있습니다. 한 바퀴 돌다 보면 밭 가운데에 뱀 한 마리와 책이 보이는데요. 에덴 동산에서의 유혹과 추방, 역경과 극복을 암시하기 위한 것일까요? 같은 방에는 <요셉의 꿈>(2013)이, 옆방에는 <데메테르>(2014)가 전시되어 있어 추운 겨울과 시련을 견딘 후 다시 힘차게 생명을 이어가는 희망의 메시지가 분명히 부각됩니다.

맨 앞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리아', '사포', '셰키나', '솔라리스'이다. 사진=정연복

창밖에는 니노마루 궁전 앞의 마당에 책이나 기이한 구조물들을 머리에 인 조각들(<사포>, <솔라리스>, <셰키나>, <다리아>)이 서있는데요. 인류의 고통과 생명, 부활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지원군인 양 든든해 보입니다.

니누마루 궁전의 정문. 사진=정연복

역사와 신화, 종교를 아우르는 33점의 작품을 다 둘러본 다음에는 니누마루 궁전과 정원을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궁전은 6개의 건물이 마치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듯한 형상으로 이어져 있는데요. 일본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니조성의 역사와 공간의 구성, 성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3,600점 이상의 장벽화들(호랑이, 표범, 소나무, 화조도, 독수리, 매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궁전의 마루 바닥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는데요. 걸쇠와 복도를 지탱하는 못이 닿으면서 나는 소리라고 합니다. 400년 이상의 시간이 소리로 울려퍼지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2025년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80주년입니다. 1945년에 태어난 안젤름 키퍼와 나이가 같습니다. 평생 전쟁과 역사의 상흔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던 키퍼의 전시가 에도 막부의 영광과 소멸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니조성에서 열린 것은 절묘한 기획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해자를 건너 성문을 나섰습니다.


※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