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바꾼 韓 원유 수입 지도…중동 줄고 미국 늘고

세종=강나훔 2026. 5. 3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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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리스크에 수입선 다변화 가속
"값싼 원유보다 끊기지 않는 원유"
에너지 안보 전략 전환
연합뉴스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한국의 원유 수입 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중동 중심' 조달 구조가 흔들리면서 미국과 아프리카 등 비중동산 원유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국제유가보다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해지는 경제안보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5~7월 국내 원유 도입 물량 가운데 비중동산 비중은 51.5%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1.9%와 비교하면 19.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중동산 비중은 같은 기간 69.1%에서 48.5%로 20.6%포인트 감소했다. 한국 원유 수입 구조에서 중동산 비중이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례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지역별로는 미주 지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미주산 원유 비중은 지난해 23.1%에서 올해 35.6%로 상승했다. 아프리카산 비중도 2.2%에서 8.3%로 확대됐다. 아시아산 역시 5.0%에서 7.4%로 증가했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수입선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 원유 공급을 크게 의존해 왔다. 중동산 원유는 가격 경쟁력과 국내 정유시설 적합성이 높아 사실상 대체가 어려운 자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지속되면서 정부와 정유업계는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기 시작했다. 실제 정부는 미국과 중남미, 아프리카산 원유 도입 확대를 지원하는 한편 UAE 공동비축 사업과 비축유 활용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변화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 셰일혁명 이후 세계 원유 시장은 중동 중심에서 다극화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충격이 반복되면서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원유 조달 전략이 '가장 싼 원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위기에서도 원유를 끊기지 않고 들여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우리 정부도 최근 중동 사태 대응 브리핑에서 원유 확보 물량과 비축 규모, 수입선 다변화 현황을 주요 성과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 에너지 업계에서도 이번 비중동산 비중 50% 돌파를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니라 한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동이 흔들려도 가격 문제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공급망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반도체와 핵심광물처럼 원유 역시 경제안보 자산으로 관리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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