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8만개 때려달라’ 문자에도 金여사 불기소 이유는
검찰이 17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했습니다. 예상됐던 결론이지만 보도 참고자료를 내는 것은 물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2시가 다 되도록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어느 사건보다도 ‘설명’에 힘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권오수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등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들의 판결문에서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된 사실이나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 등과 주고받은 연락에 대해서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김 여사의 혐의에 대한 본격 사법 판단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먼저 어떤 혐의로 입건됐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여사 ‘주가조작 의혹’ 첫 사법판단
김 여사는 권오수 전 회장 등과 공모해 2010년 1월~2011년 3월 ①신한 ②DB ③대신 ④미래에셋 ⑤DS ⑥한화투자 등 6개 증권계좌에 대해 권씨가 소개한 이모씨에게 계좌를 맡기거나, 권씨 요청에 따라 매매해 시세조종에 가담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권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들의 1·2심에서 법원은 신한과 DB증권 계좌를 이용한 거래는 시효완성을 이유로 면소판결을 내렸습니다. 한화투자의 거래는 시세조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대신증권, 미래에셋,DS증권 계좌를 이용한 거래에 김 여사가 가담했는지 여부입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된 거래 행태는 ‘통정매매’입니다. 사전에 정해진 시간과 가격에 서로 짜고 특정 주식을 거래해 해당 종목의 거래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입니다. 권 전 회장 전체 범행에서 인정된 통정매매 98회 중 47회가 ③대신증권 ④미래에셋 ⑤DS증권에서 이뤄졌습니다.
◇무혐의 처분 이유는..”주가조작 인식 못해”
6개의 계좌는 관리 형태에 따라 권 전 회장이나 증권사 직원에게 운용을 맡긴 일임매매 계좌와 직접 운영한 계좌로 나뉩니다. ①신한 ②DB ④미래에셋 ⑤DS 가 일임매매 계좌에 해당합니다.
일임매매의 경우 무혐의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계좌를 맡겼기 때문에 몰랐다’는 것입니다. 먼저 김 여사의 진술입니다. 김 여사는 검찰에서 ‘계좌관리를 일임해 시세조종 거래가 있는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일임을 받은 권 전 회장이나 계좌 관리인들이 모두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 내지 주가관리를 한다는 얘기를 한 사실이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김 여사가 시세조종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직접운용 계좌의 경우 좀더 봐야 합니다. ③대신증권 계좌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계좌에서는 총 12회의 통정매매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이중에서 매도 주문은 두 번입니다. ‘선수’ 김모씨가 2010년 10월 28일 민모씨에게 ‘12시에 3300원에 8만주 때려 달라’는 문자메시지 요청을 보내고 실제로 김 여사 명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요청한 대로 주식 8만주가 3300원에 매도 주문이 나왔던 사안입니다.
이 주문 체결 직후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체결됐죠’라고 묻는 녹취가 있습니다. 이를 보면 2회의 매도 주문은 김 여사가 권오수 회장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받고 증권사 직원을 통해 주문을 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입니다. 즉 김모씨로부터 저가에 주식을 달라는 요청을 받은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에게 연락을 해서 매도 주문이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김 여사와 권 전 회장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권 전 회장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 내지 주가관리를 한다는 얘기를 전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선수’들의 진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문을 낸 김모씨, 민모씨는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을 많이 신뢰하는 관계여서 권오수의 요청이 있었다면 믿고 매매를 해 줬을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에게 자신의 시세조종 의도를 알렸고 김 여사가 인식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자신을 신뢰하는 피의자(김 여사)에게 주가관리(주가조작)사실을 숨기고 매도 요청을 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며 “상장사 대표가 선수들을 동원해 시세조종을 한다는 상황이 이례적이고 투자자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사정인 것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선수들, 김여사에 “아는 게 없지, 지 사업만 아는 거고”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입니다. 권오수 회장이나, 직접 매도·매수 주문을 낸 ‘선수’들과는 달리 전주(錢主)인 김 여사는 이들의 주가조작 사실을 알고 가담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수사기관 진술을 볼 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인식’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주가조작 초기에 관여한 ‘1차 주포’ 이모씨는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을 알린 사실이 없다”고 했고, ‘2차 주포’ 김모씨는 “김 여사는 권오수가 주가관리(조작)를 한다는 것을 모르니까 계좌를 맡겼을 것이다. 당시 저는 증권사 지점장이어서 주가관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검찰 수사가 진행된 시점에 이들이 나눈 통화녹음에 따르면 이들은 김 여사를 ‘권오수에게 활용된 계좌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2020년 2월 김모씨는 “(김건희)걔는 그거지, 왜냐하면 아는 게 없지. 지 사업만 아는 거고” “그니까 권오수는 그때 당시에는 건희 엄마가 필요하니까, 건희에게 잘해주는 척 하면서 돈 먹여줄 것처럼 뭐 이래 가지고 한 거지”라고 했습니다.
김씨는 같은 해 9월에는 “(김건희)걔? 뭐 먹은 것도 없을 걸, 괜히 뭐 하고 뭐 하고 그냥 권오수가 사라고 그래갖고, 샀다가 뭐 하고 팔았지”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화 상대방으로 보이는 이모씨는 “아이 김건희만 괜히 피해자고” 라고 했습니다. 이씨는 2021년 4월엔 “김건희를 어떻게, 뭐, 뭐냐고, 그냥 one of them이지 맞잖아”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대화가 거래시기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나 검찰 수사기 이뤄지던 시점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 대화만을 근거로 김 여사가 ‘몰랐다’ 고 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 여부를 확실히는 모르더라도 미필적으로는 인식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피의자(김건희)는 주식 관련 지식, 전문성, 경험 등이 부족하고 시세조종 관련 전력이 없는 점, 상장사 대표인 권오수를 믿고 초기부터 회사 주식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점 등을 고려하면 권오수가 시세조종을 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도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죄판결 받은 전주와의 차이점은
2심에서 유죄가 난 전주 손모씨의 경우 전문투자자로서 주포 김모씨의 요청에 따라 주식을 매매하면서 HTS로 직접 시세조종 주문(426회)을 냈기 때문에 김 여사와는 다르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무엇보다 선수 김모씨가 손씨에게 주가 관리(조작)사실을 알렸다고 했고 이는 두 사람 사이의 문자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012년 7월 13일 김씨는 손씨에게 “종가에 조금만 쏴주세요” “한 오천주만 쏴도”라는 문자를 보냅니다. 같은달 16일에는 “형님이 도이치 쫌만 잡아주세요”라고, 27일에는 “형님이 한 만 주 잡을 수 있어요?”라고 합니다. 김씨가 손씨에게 주가조작을 위한 매매를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손씨 또한 김씨에게 같은달 30일 “내가 도이치 상찍었다”는 문자를 보냅니다. 부탁받은 매매행위의 결과 주가가 올랐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검찰은 당초 손씨를 이들과 공범(공동정범)으로 기소했습니다. 그러다 무죄가 나자 2심에서 방조행위를 추가했습니다. 2심은 주위적 혐의인 공범은 무죄로 보고 방조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의심스럽지만 반박은 어려운 ‘8만주 때려달라’
검찰은 이 사건은 “권오수가 주포들과 함께 시세조종 범행을 하면서 피의자(김건희)등 ‘초기투자자들’의 자금을 자신의 범행에 활용한 게 사건의 실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권씨가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 내지 주가관리 상황을 알려주며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김 여사가 권씨 등의 범행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DS계좌에서 주포들이 권오수 전 회장에게 요청해 거래가 이뤄진 8만주의 매도 주문은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수들이 매도 요청을 하고 권오수씨가 물량을 내주고 선수들 사이에 주가조작 문자가 오간 것은 인정되지만, 권오수씨와 김 여사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검찰도 브리핑에서 “제일 의심했던 것은 대신증권 문자”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설명은 이렇습니다. “만일 권오수씨가 김 여사에게 ‘애들이 필요하다네, 8만주 내줄 수 있냐’고 했으면 김 여사도 주가조작을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그거 계속 팔고 있잖아, 시가도 좋고 장도 좋으니 팔아봐’라고 했을 경우 (주가조작을 몰랐다는 주장을) 배척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합리적 의심없이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무혐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에 따라 판단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검찰은 “사건 기록을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수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주어진 여건에서는 한치의 의심도 남지 않게 수사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물론 10년도 훨씬 넘은 주식거래를 두고 당사자들이 모두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에서 주관적 요건인 ‘공모’ ‘인식’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는 법리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건에서도 검찰이 이처럼 철저하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입증을 기준으로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전직 대법원장을 47개 혐의로 기소했지만 ‘통으로’ 무죄가 난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의 목표가 유죄판결이 아니라 기소 자체가 아니었나 의심스러운 경우들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김 여사 사건은 조사 과정에서의 ‘총장 패싱’ 논란, 여사의 검찰 출석이 아닌 경호처 관리 건물에서 이뤄진 조사의 특혜 논란 등 여러 잡음이 있었습니다. 법리적 한계와는 별도로, 이번 검찰의 판단이 종합적으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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