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놓쳤지만 AI & 로봇은 잡았다…구미, ‘세계 제조 AI 수도’를 향한 도전

반도체는 놓쳤지만 AI는 잡았다…구미, ‘세계 제조 AI 수도’를 향한 도전정부가 호남권에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와 첨단 팹(Fab) 투자를 추진하면서 대구·경북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최대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기반과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기지, 국가산업단지를 갖춘 구미가 사실상 생산기지 후보에서 제외되자 지역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국가균형발전만 내세울 뿐 왜 호남이 구미보다 더 적합한지 납득할 만한 설명조차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한 산업생태계를 외면한 채 정치논리에 따라 국가 미래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반면 같은 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구미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로봇) 투자 계획은 새로운 희망을 던졌다. 정부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로봇을 미래 3대 산업축으로 제시한 가운데 구미가 제조 AI 거점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다만 AI 데이터센터 몇 곳만으로는 호남권 반도체 투자의 파급력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승부는 개별 시설이 아니라 산업생태계”라며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로봇을 하나의 제조 AI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호남 수백조 반도체 투자…구미는 왜 또 비켜갔나
구미는 지방에서 유일한 반도체 소재·부품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다. SK실트론의 실리콘 웨이퍼를 비롯해 원익QnC, LG이노텍, KEC, 매그나칩, 도레이첨단소재,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300여 개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집적돼 있고, 금오공과대학교와 시험·평가 인프라까지 갖춘 국내 대표 반도체 공급망 거점이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과 공급망을 갖춘 지역을 제쳐두고 대규모 팹을 추진하는 이유를 정부가 납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지역에서는 애초 후공정 중심으로 알려졌던 호남권 사업이 대규모 메모리 팹으로 확대되는 과정에도 정책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인다.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국가 미래산업은 정치적 고려보다 산업생태계와 경제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팹이 들어서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연구개발 인력, 협력업체까지 함께 이동하는 만큼 향후 신규 투자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호남권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이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팹이 늘어날수록 웨이퍼와 석영, 세라믹, 특수가스 등 핵심 소재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세계적 기술력을 확보한 구미 기업들이 새로운 생산기지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구조가 자리 잡는다면 생산 확대와 수출 증가라는 반사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SiC·GaN 전력반도체, 유리기판, 광반도체 등 차세대 분야를 선점해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현권 금오공대 교수는 “호남권 반도체 팹은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5~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구미는 반도체 소재·부품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해 글로벌 공급망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반도체 공급망 위에 AI를 세우다…구미, 삼성·삼성SDS·퀀텀일레븐 잇단 투자로 각광받는 첨단산업도시
삼성SDS는 지난 1월 구미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옛 삼성전자 구미1공장 부지에 60MW급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퀀텀일레븐도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구미의 성장 가능성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AI 데이터센터와 제조 AI, 피지컬 AI 분야 투자까지 공식화하면서 구미는 AI 인프라와 첨단 제조업이 융합된 산업도시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구미가 AI 산업의 최적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 제조 기반에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용수, 안정적인 통신망, 반도체 공급망을 동시에 요구한다. 구미는 삼성전자와 LG전자, SK실트론을 중심으로 구축된 산업 생태계와 국가산업단지, 풍부한 공업용수, 안정적인 전력망을 모두 갖추고 있어 AI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최적의 테스트베드를 갖춘 구미 로봇산업…AI의 몸이 움직이는 곳, ‘제조 AI 실증도시’가 뜬다
도레이첨단소재, LS전선, SK실트론, KEC, 원익큐앤씨, 월덱스, LB루셈 등 첨단 소재·반도체 기업들은 전력반도체와 정밀부품, 센서 등 로봇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스마트팩토리 구축 기업들도 다수 집적돼 연구개발부터 실증, 양산까지 가능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스마트공장은 AI 기반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실증무대로 꼽힌다.
방산과 드론 산업, 지역 대학의 AI·로봇 전문인력까지 더해지면서 구미는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로봇산업이 하나로 연결되는 제조 AI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AI 시대 제조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를 산업현장에서 구현하는 로봇이 좌우한다”며 “반도체 공급망과 AI 데이터센터, 제조현장을 동시에 갖춘 구미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제조 AI 허브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 향후 전망과 대응전략
‘반도체·AI 데이터센터·로봇…3대 축으로 세계 제조 AI 수도를 꿈꾼다’
구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존 반도체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하는 것이다. 호남권 대규모 반도체 팹 투자는 아쉬운 현실이지만 이를 위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최대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 집적지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AI 반도체와 차세대 전력반도체, 첨단 소재를 집중 육성하고 글로벌 반도체·장비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GPU 클러스터와 클라우드 산업을 육성하고 국가 AI 슈퍼컴퓨팅센터와 AI 연구기관, 전문인력 양성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데이터와 연구개발, 첨단 제조가 선순환 구조를 이룰 때 AI 산업은 지역경제를 이끄는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로봇산업 역시 중요한 축이다. 구미는 스마트공장과 첨단 제조기업이 밀집한 국내 최고의 제조 실증도시로 평가받는다. AI와 로봇이 결합한 피지컬 AI와 협동로봇, 자율물류, 국방로봇 등을 실제 산업현장에서 검증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기술, 제조현장이 하나로 연결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현권 경북 구미 반도체특화단지 추진단장은 “구미는 반도체 소재·부품 경쟁력을 AI 반도체와 차세대 전력반도체까지 확장해야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도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는 앞으로 30년 구미 경제를 이끌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투자와 기업 유치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구미의 미래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로봇산업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탄탄한 반도체 공급망 위에 AI 인프라와 로봇 기술을 융합한다면 구미는 대한민국 제조 AI 허브를 넘어 세계적인 제조 AI 도시로 도약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삼성의 이번 투자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첫 번째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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