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무료로 자동차 정비하는 창원 누비콜 기사

주택과 공장이 밀집한 김해시 풍유동 칠산초등학교 인근 골목에서는 매주 1~2회 이상 차량 정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이를 따라가 보면 학교와 200m 거리에 '셀프&전문자동차정비'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있다. 셀프 세차장처럼 돈을 내면 잠시 장비를 대여해 혼자서 차를 고칠 수 있는 시설이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정비소는 전국 르노삼성 자동차 소유주들에게 꽤 유명한 곳이다. 그들은 창원 누비콜 기사 김덕국(51·창원시 진해구) 씨를 찾는다.

김덕국 창원 누비콜 기사가 김해시 풍유동 셀프카센터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재능기부, 수익은 장애인단체로 = 올해 4년 차 누비콜 기사 김 씨는 2021년 7월 1일부터 창원에서 교통약자 지원 콜택시를 몰고 있다. 쉴 틈이 생기면 김해에서 차량을 정비하곤 한다.

김 씨는 부품을 사서 자신을 찾아온 르노삼성 차량 소유주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차를 고친다. 엔진오일 교체 작업부터 하체·엔진 정비까지 일반 정비소에서 할 수 있는 웬만한 작업은 다 한다. 차량 고장 증세가 보이면 원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어떤 부품을 사야 할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분이 있으면 증상을 진단해 필요한 부품을 사전에 안내하고 나서 정비를 진행해요. 설명해도 안 될 때는 직접 차 상태를 눈으로 확인해요. 부품을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주고 구매하라고 안내합니다. 정비 예약은 르노삼성 이용자들이 모인 카페에 글을 올리고 동호회 회원들에게 받고 있어요."

당연히 받아야 할 정비료를 그는 모두 마다한다. 대신 기부금을 받는다. 차량 점검을 받은 이들에게 내고 싶은 만큼만 내라고 한다. 정가가 없는 정비료가 모이면 전액 진해장애인인권센터로 보낸다.

"정비료를 전혀 받지 않다가 아들이 제안해서 기부금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았지요. 누비콜 손님으로 만난 장애인인권센터 직원과 대화하다가 여기다 싶었어요."

기부는 2022년 4월부터 시작했다. 분기별로 적게는 66만 5000원, 많게는 154만 6030원을 냈다. 지금까지 기부금은 904만 3030원이다.

김덕국 창원 누비콜 기사.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군 주특기 살려 재능기부 = 선의도 있어야겠지만 일단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그는 1992년부터 2021년까지 29년 8개월 동안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면서 정비 기술을 익혔다. 군 주특기가 차량 정비였다. 자동차 정비 기능사와 정비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 씨가 군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처가 가족과 코로나 예방주사 접종 때문에 진해보건소를 갔다가 새 구청 건물을 구경하면서 마침 일자리센터가 있기에 들어가 봤지요."

누비콜 기사는 센터 직원이 추천한 일자리다. 창원 쿠팡공장 지게차 기사도 추천받았지만 김 씨는 누비콜 기사를 택했다.

"군에서 하던 일과 거의 다르지 않아 익숙했어요. 전역하고 바로 창원시설공단으로 직장을 옮겼지요."

재능기부는 8년 전부터 시작했다. 군 복무 기간에는 어차피 따로 정비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전역하고 나서야 아들 제안으로 자율적으로 내는 기부금을 받기 시작했다.

"정비를 마치면 제 차 트렁크에 돼지 저금통이 있으니 거기에 기부금을 내라고 안내하거든요. 돈을 낼 때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어요. 괜히 돈을 적게 넣는다는 생각이 들까 싶어서요. 그런데 기부금을 내기는커녕 그 저금통을 손대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계좌이체로 기부금을 받습니다."

르노삼성 차주들이 김 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김 씨는 2016년 7월 르노삼성 승용차를 구입했다. 차량 관련 정보를 얻고자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고 나서 한 회원 차를 정비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가 '재능기부' 시작이었다. 어쩌다 보니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아졌고 작업 반경도 넓어졌다.

쉐보레와 르노삼성 차는 부품값이 비싼 편이고 작업도 까다롭다. 부품만 챙겨오면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비를 받을 수 있으니 서울·경기·인천·강원·충청 등 전국에서 김 씨를 찾는다. 그는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는다. 재능기부를 통해 사람을 만나면서 얻는 게 더 많다고 느낀다.

김덕국 창원 누비콜 기사가 김해시 풍유동 셀프카센터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많은 사람을 접하다 보니 늘 유쾌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리를 받고도 1만 원만 내고 간 사람도 있다. 어렵게 시간을 냈더니 아무 연락 없이 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 딱한 처지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구에서 김 씨를 찾아온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처지를 설명하며 기부금 대신 헌혈증을 내고 가기도 했다. 김 씨는 이 헌혈증도 장애인인권센터에 기부했다.

김 씨는 자기 능력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좋다. 어차피 있는 기술을 그냥 썩히느니 남들 돕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정비소를 열기 전에 손님 확보 차원에서 재능기부를 한다는 오해도 받았어요.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요. 이 일을 하니 사람도 알게 되고 친구도 되고 그래서 좋아요. 군대에서 배운 기술 그대로 잊지 않고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가족들은 가끔 그만 하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이제 그만두기도 어려워졌어요. 제가 차를 갖고 있고 다치지만 않는다면 계속 재능기부를 할 생각이에요."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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