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졸장부의 대장부타령

남자로 태어나 70여 년을 사내로 살았습니다.
굴곡지고 녹록치 않았던 삶이었지만 사내답게 살고자 했고, 애써 사내구실하며 살려했습니다. 경상도 보리 문둥이여서, 경상도사나이여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마음뿐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헌헌장부이고 싶었고, 사내대장부란 소리 듣고 살고자했으나 생계 앞에서, 입신양명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고 실리를 좇아 적당히 타협하고 살았으니 졸장부였습니다.
그런 졸장부가 감히 대장부타령을 합니다. 남은 생이라도 대장부이고 싶어서.
대장부(大丈夫)의 사전적 의미는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또는 떳떳하고 당당한 사내를 이릅니다. 하지만 철인(哲人)들은 호연지기를 가진 크고 어른다운 사내를 대장부라 부릅니다.
일찍이 대장부에 대하여 논한 철인이 있었습니다. 맹자와 장자가 그렇습니다.
맹자는 단순히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를 대장부라 하지 않고 '천하의 넓은 곳에 거하고, 바른 자리에 서며, 큰 도를 행하고.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하고,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며. 부귀를 가졌어도 부패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들어도 포부를 버리지 않고, 권위와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 이라야 대장부라 부를 만하다' 했습니다.
또 장자는 인(仁)이라는 천하의 넓은 집에 살고, 예(禮)라는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서, 의(義)라는 천하의 큰 도를 행하는 이를 일러 대장부라 했으니 오십 보 백 보입니다.
맹자가 제시한 대장부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부동심(不動心)입니다.
아무리 큰 유혹과 혼란 앞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는 겁니다.
둘째는 선의후리(先義後利)입니다.
자신의 이익보다 의로움을 먼저 행하는, 의(義)를 행하면 이(利)는 따라오게 마련이니 그리 살라합니다.
셋째는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올곧고 크며 하늘에 닿을 듯 한 지극히 크고 강한 기운, 한결같고 거침없는 기개입니다.
넷째는 여민동락(與民同樂)입니다.
좋은 것을 혼자 누리지 않고 백성과 함께 나누고 더불어 즐길 줄 아는 자세입니다.
다섯째는 불인지심(不忍之心)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연민과 자비의 마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이 다섯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연결되는 대장부의 품격입니다.
어려운 경지이지만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아무튼 대장부하면 생각나는 말과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내대장부의 한마디 말은 천금처럼 무겁다. 장부가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절대로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않는다. 약속과 신용을 생명처럼 굳게 지키는 것이 사내대장부라는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 그러하고, 남이 장군의 웅건한 대장부 정신이 녹아있는 '남아이십 미평국(南兒二十 未平國)이면 후세유칭 대장부(後世誰稱 大丈夫)'라는 북정가(北征歌)의 시구가 그렇습니다.
또 왜적의 침략으로 국가존망이 위태할 때 목숨을 바쳐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겠노라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당존망지추 일사보군은(當存亡之秋 一死報君恩)'이라는 결의와 '대장부는 소인배와 논하거나 싸우지 않는다'라는 격언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행한 비상계엄의 전말과 유무죄를 따지는 국회와 법정에 선 인사들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런 자들이 일국의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장군이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겉은 대장부인데 속은 제다 졸장부였으니 말입니다.
그렇듯 환난과 위기 때 보면 압니다. 대장부인지, 졸장부인지를.
감히 한마디 합니다. 이기적인 삶을 살면 졸장부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면 대장부라고. /시인·편집위원
Copyright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