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를 한 번도 쓰지 못한 사회의 비애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9. 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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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장기표 [사진 = 연합뉴스]
지난 일요일 아침 고(故) 남재희 선생에 얽힌 일화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서 보낸 보도자료가 하나 들어와 있다. 장기표 선생 작고! 남 선생과 장 선생은 영역과 성격은 달랐으되 ‘어른’이라는 말이 넘치지 않는 인생을 살고 떠났다. 어른들은 하나둘 떠나고 빈자리를 채울 신규 회원들은 씨가 말랐다. 어른들만 입회가 가능한 ‘정신 원로원’이 회원 부족으로 문을 닫을 판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장 선생 빈소를 다녀가고 여러 신문이 부고 외에 별도 사설을 썼다. 그에 대한 회고담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나는 장 선생을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지만 주로 간접적인 관찰이었고 간혹 글에서 그를 다루긴 했으되 사적으로 한마디 말을 보탤 만한 일화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부고는 내게 묵직한 소회로 다가왔다.

지난 7월15일 장 선생은 담낭암 말기 소식을 전하며 유언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게는 이 문구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말기 판정이)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평생 재야에만 있었고 안정적인 월급 한번 받아보지 못했을 사람이 이룰 만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을 보고 ‘과연 장기표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두고 일반적으로 도달하는 겸허와 순명이 아니라 구체성을 띤 자기 평가로 보인다. 장기표의 이룸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높고 엄격한 자신의 도덕성으로 우리 공동체의 부패를 경계하는 데 있었다고 생각되는바 그는 이뤄도 과하게 이룬 사람이었다. 그는 젊어서는 산업화 세력의 탐욕과 부패를 질타했고 장년 이후에는 NL 운동권 세력의 놀이터가 된 좌파 진영의 위선과 타락을 직격했다. 이런 패턴의 진영 옮김은 장기표 외에도 많은 이가 시도했지만 장기표 수준의 도덕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옮긴 사람은 오직 장기표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장기표는 본인이 진영을 옮긴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이 바뀌면서 저절로 공격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장기표는 늘 가장 거대한 괴물을 겨냥해 돌진하는 인물이었다. 한때는 그 괴물이 산업화 세력이었고 만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세력이었다. 따라서 장기표를 두고 ‘전향’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전향은 사상적 귀순이다. 장기표의 투명한 정치 세계에서는 그런 회의와 자기부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늘 조국을 사랑하는 정의로운 사람이었고 그 정의를 거스르는 악당들이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명멸해 갔을 뿐이다.

그런 장기표가 있어서 우리는 서부극의 주인공을 응원하듯 ‘장 선생 같은 사람이 잘 되어야 하는데’ 같은 말을 뇌까릴 수 있었다. 누가 잘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은 순수한 감정이다. 우리는 장기표가 너무 순수해서 그 지향이 현실에서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그가 그 순수를 포기하면서 현실과 타협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순수한 응원의 대상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기표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장기표 개인이 충분히 이루는 것과 우리 사회가 그를 써서 무엇인가 성취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나는 지난해 연말 한동훈의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판에 임해 이렇게 썼다. “한동훈이 할 일은 이 한심한 당의 면면을 싹 물갈이하는 것이다. 그 당에는 중진들도 별로지만 초선들이 특히 꼴불견이다. 집단 홍위병 노릇을 그렇게 알아서, 눈에 쌍심지 돋우고 하는 초선 집단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들에 비하면 내일모레 여든이면서 아직 국회의원 한번 못한 장기표가 백배, 천배 ‘청년스럽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돈 안 밝히고, 권력 행사에는 무심하지만 애국에는 관심이 있는 10명만 찾아서 지휘부에 앉히라. 그게 정치 혁명의 시작이다.” 장 선생을 오래 모신 사람이 그 글을 보고 ‘국힘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럴 기척도 안 보이는데 ‘당신 참 엉뚱한 소리한다’는 뉘앙스였다.

이 정부가 장 선생을 정치혁명에 활용했으면 지금처럼 지리멸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정치혁명부터 하고 거기서 확보된 동력으로 개혁을 했어야 했다. 정치혁명은 사람들 마음에 꿈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고 장기표는 그것을 평생 해온 사람이었다. 장기표라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과 상징을 차용하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끝난 얘기다.

장기표 개인의 성취가 워낙 크기에 그 위대한 자원을 재야에만 머무르게 한 한국 사회의 인색함, 안목 없음이 뼈아프다. 장기표라는 순수의 정신이 끝까지 고아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곤핍을 견뎌온 유족들과 한두명의 헌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정신을 보기 위해 한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을 그들이 대신 치렀다. 위로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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