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만 불황 안개 걷혔다 [+영상]
● 불황 터널 지나고 활력 가득한 사업장
● 수주잔량 99척 中 LNG운반선 65척… “친환경 선박 요람”
● 최초 용접로봇 개발·활용, 고전 사업 이미지 탈피
● 여의도 1.67배 면적 조선소 실시간 관제… “이곳은 스마트시티”
10월 27일 오전 9시 30분 무렵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엔 대우그룹 산하 시절부터 함께한 25년차 베테랑 직원의 말을 증명하듯 활력이 가득했다. 여의도의 1.67배, 축구장 686개에 이르는 면적(490만㎡)이 꽉 차게 느껴질 만큼 물류를 실은 트럭 수십 대가 쉴 새 없이 오갔고, 직원들은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곳곳을 누볐다. 2010년대 중반부터 조선업계를 덮친 불황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이날 한화오션은 5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이후 거제사업장을 최초 공개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높이 103m에 이르는 골리앗 크레인, 구조물, 선박 등 큼지막한 물체는 물론 직원들이 쓰는 작은 도구 하나하나 모두 한화그룹을 상징하는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정문 인근 바위에 새겨졌던 글귀 '신뢰와 열정'도 한화의 경영 철학 '신용과 의리'로 바뀌었다.
거제사업장을 총괄하는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거제사업장장)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듬뿍 묻어났다.
"거제사업장은 세계 최고 설비·기술력을 갖췄습니다. 친환경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뿐 아니라 미래 친환경 선박을 연구·개발·건조하는 요람이자 미래 조선 시장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다 둘러보려면 버스를 타고 다니더라도 최소 1만 보 이상은 걸어야 할 겁니다."
세계 LNG운반선 4척 中 1척 한화오션 건조
이글 벤츄라는 싱가포르의 '이글사'에 수주됐다. 계약금은 1억2000만 달러다. 원유탱크를 15개 보유해 총 30만t의 원유를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다. 박민태 한화오션 선박생산관리 책임은 "330만 명을 모두 태울 수 있는 무게로 부산시민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글 벤츄라는 기존 선박유와 LNG를 모두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이다. 기존 선박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3%가량 줄였다. 배 중앙부엔 2대의 1750㎥ 규모의 둥근 LNG 연료통이 눈길을 끌었다. 합금강(고망간강)으로 만들어졌다. 고망간강은 극저온 등 극한 외부 환경에서도 손상이 덜하다. 박민태 책임은 "연료를 가득 채우면 한 달 이상 운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론 길이 530m, 높이 14.5m, 폭 131m 규모 1도크에 들렀다. 단일 도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준이다. 친환경 선박으로 각광받는 LNG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현장의 한화오션 관계자는 "4척의 계약 규모만 해도 1조 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의 친환경 선박 건조 능력은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운항되는 LNG운반선 가운데 4분의 1이 한화오션이 건조한 것일 정도다. 실제 한화오션의 수주 잔량 99척 가운데 LNG운반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65.7%(65척)에 달한다.
부단한 R&D가 낳은 新기술 역량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는 2015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극저온 연구시설이다. LNG를 사용한 실제 운항과 동일한 환경에서 재액화·재기화 실험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연구하는 극저온 가스 기술은 LNG운반선 운용의 핵심이다. 극저온으로 보관해야 하는 LNG는 화물창 외부와의 온도차로 인해 일부 기화된다. 기화되는 가스는 연료로 사용하거나 태워버려야 해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화오션은 이러한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재액화 기술에 매진, 현재까지 120척 이상의 LNG운반선에 재액화 장치를 적용했다. LNG 재액화 장치는 증발된 LNG를 모아 다시 액체 상태로 바꾸는 장치다.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에서 실험을 마쳐 한화오션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는 암모니아 분해를 통한 수소 생산, 액체 이산화탄소 화물 관리 시스템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도 연구하고 있다. 실증설비를 통한 검증도 진행한다. 센터 관계자는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을 해외 업체에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등 수익도 내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엔 무료로 기술을 제공해 업계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들른 생산혁신연구센터에선 한화오션의 최첨단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하던 일을 척척 해내는 로봇들의 모습이 보였다. 강성원 한화오션 로봇연구팀 연구위원은 "요즘 조선소에선 수작업 비중을 줄이고 로봇·자동화 장비를 확대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이 세계 최초 개발한 '무레일 자동용접장치(EGW)'도 눈여겨볼만 했다. 기존 방식과 달리 곡선 부위 용접이 가능하고 레일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 평균 3.5시간가량 작업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버튼만 누르면 55㎜ 두께 블록도 단번에 용접돼 기존엔 필요하던 그라인딩(연삭) 과정도 생략 가능하다. 또 기존 장비가 100㎏이 넘던 것에 비해 일반형은 13.5㎏, 경량형은 8.5㎏에 불과해 작업의 용이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탑재론지 용접로봇을 비롯해 한화오션이 개발해 용접·가공 등 공정에 활용하는 로봇은 총 80여 개에 달한다. 센터 관계자는 "이러한 기술 덕분에 여성·비숙련공도 남성 숙련공 못잖은 작업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조선소'
슬로싱 연구센터는 모형 탱크로 실험을 진행하는 모션 플랫폼 2기와 500여 개의 압력 센서, 500채널의 데이터 획득 장치 등을 갖췄다.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효율적 운영과 24시간 연속 실험이 가능하다. 또 LNG운반선 화물창에 관한 슬로싱 연구뿐 아니라 액화에틸렌운반선 및 액화이산화탄소 화물창에 대한 슬로싱 평가도 수행하며 다양한 액화가스 운반선 화물창 하중 해석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센터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치 문어와 같은 형태의 모션 플랫폼이 눈에 띄었다. 모션 플랫폼은 파도를 구현하는 하단 구조물 위에 3D프린터로 만든 화물창 모형을 부착해 제조했다. 하단 구조물은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터 다리가 사용됐다. 플랫폼이 가동되자 모형 탱크 속 파란 액체가 출렁거렸다. 탱크 곳곳에 부착된 센서 500여 개가 흔들리는 액체로 인해 발생하는 압력을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센터 관계자는 "바이어들이 선박 안전문제로 인해 슬로싱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며 "암모니아·액화수소 등 더 폭넓은 슬로싱 연구를 통해 친환경 운반선 개발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디지털 생산센터다. 디지털 생산센터는 한화오션이 지향하는 '스마트 야드'의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공항의 관제탑과 흡사한 기능을 하며 2021년 설립됐다. 거제사업장을 디지털로 옮겨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크게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와 스마트 시운전센터로 구성됐다.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에선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공정 정보 현황 등을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GPS 위치 정보에 의존하던 기존의 블록 추적 시스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드론은 하루 두 번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블록 적치장을 촬영한다. 인공지능(AI) 자동 인식 시스템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블록의 실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 시운전센터는 바다 위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상태를 육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한다. 이를 통해 도크 단계, 진수 공정률을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주요 장비의 실시간 성능 모니터링과 화재 및 침수에 대응할 수 있다.
과거엔 시운전 중인 선박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 인력이 예인선 혹은 헬기를 타고 직접 해상의 배로 가서 해결해야만 했는데, 이러한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다. 디지털·자동화로 공기 단축과 안전성 확보,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효과가 더해진 셈이다.
권순도 한화오션 스마트야드연구팀장은 "거제사업장은 공장이라기보단 하나의 '도시'에 가깝다"며 "사람과 경험 중심의 전통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자동화 생산방식과 데이터로 일하는 스마트한 조선소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거제=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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