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보험 온라인 판매 등 지속가능 모델 구축 실패
스타트업 전략 한계, 인터넷 보험사 본질은 금융업
온·오프라인 혼합 채널 등 규제와 플랫폼 혁신 필요
캐롯 교보 등 적자 확대, 인터넷은행 흑자와 대조적
최근 한화손해보험이 캐롯손해보험의 흡수합병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터넷 보험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캐롯손보는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디지털 전환기를 맞아 보험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2019년 자동차보험을 중심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손해보험사다. ‘퍼마일 자동차보험’ 등 실험적인 상품을 출시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지난 6년간 누적 손실은 3333억원을 넘겼다.
인터넷 보험사는 혁신 기술과 고객 편의성을 무기로 등장했지만 실질적인 비즈니스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2013년 출범한 교보라이프플래닛 역시 누적 적자 2036억 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른 인터넷 보험사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반면 IFRS17 도입 이후 보장성 보험 판매에 집중한 전통 보험사들의 순이익은 크게 증가하며 대조를 이룬다. 2024년 기준 인터넷 보험 5사(캐롯손보, 하나손보, 카카오페이손보, 신한EZ손보, 교보라이프플래닛)의 당기순손실은 1854억 원에 달하고, 최근 3년간 누적 적자는 6220억 원을 넘었다.
같은 디지털 기반에서 영업하는 인터넷 은행은 오히려 실적이 급증했다. 2024년 기준 인터넷은행 3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75.2% 증가한 6136억원을 기록했고 후발주자인 토스뱅크도 456억원의 흑자를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비즈니스임에도 보험과 은행이 전혀 다른 실적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보험산업 고유의 특성과 디지털 환경에 맞지 않는 규제와 관행, 기술 중심 스타트업과 자본 중심 금융업 사이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보험은 먼저 비용을 지불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는 구조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자각’ 니즈를 자극해야 계약이 성사된다. 이는 현재의 가시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소비자 행태와 충돌한다. 반면 은행은 돈을 먼저 빌려 혜택을 누리고 나중에 갚는 구조로 접근성이 더 높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상품은 복잡하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이해하고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며 특히 질병이나 사망 등 보장성 보험은 약관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비대면 환경에 익숙한 MZ세대조차 복잡한 장기 보험 상품에 대해서는 설계사의 대면 서비스를 선호한다. 여전히 다수의 보험 소비자는 직접 소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받기 원한다. 보험은 단기 소비재와 달리 장기간에 걸친 미래 보상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적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 결국 온라인 채널만으로 보험 영업에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인터넷 보험사는 자동차보험 여행자보험 등 구조가 단순하고 절차가 간편한 단기성 상품에 치우쳐 있다. 이들은 온라인 판매에 적합하지만 수익성이 낮고 보험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견인하기엔 역부족이다. 보험사의 핵심 수익원인 장기 보장성상품은 복잡한 설계와 높은 고객 신뢰를 전제로 하며 고객도 신중하게 가입하기 때문에 비대면 판매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보험산업을 옥죄는 경직된 규제 역시 인터넷 보험사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현행 보험업법 시행령 제13조에 따르면 인터넷 보험사는 통신판매업자로 분류되어 전체 수입보험료의 90% 이상을 온라인 채널에서 발생시켜야 한다. 이는 다양한 판매 채널을 통해 고객 기반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가로막는다. 또한 온라인 상품의 신계약비를 일반상품 대비 70%로 제한하는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계사 조직 유지비용이 크기 때문에 온라인 영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오해다. 디지털 채널에서 고객을 유치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데 드는 마케팅 비용은 오프라인 못지않게 크다. 더구나 복잡한 상품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높아 온라인 판매가 제한되거나 반드시 대면 확인 절차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 보험사들의 디지털 전환도 인터넷보험사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이미 자체 온라인 채널(CM)을 통해 자동차 건강 연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서도 인터넷 보험사가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전통 보험사는 막대한 자본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후발 주자인 인터넷 보험사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인터넷 보험사는 위험평가, 상품 개발 및 인수(UW), 고객 접근에서 AI와 빅데이터 등 인슈어테크 기반의 기술 의존도가 높다. 초기 수익성보다 빠른 성장을 중시하는 점에서 스타트업과 유사하지만 결국 보험업은 금융업이며 자본의 크기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인터넷 보험사를 기술 중심 스타트업으로 접근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려 했지만 자본력 중심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 특히 인터넷은행과 인터넷보험사의 자본금 차이가 수십 배에 달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은 고객 획득 비용과 낮은 상품 수익성은 인터넷 보험사의 가장 큰 고민이다. 온라인 광고 플랫폼 제휴 등으로 고객 접점을 확보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우더라도 고객 획득 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을 창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적자는 누적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인터넷 보험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온라인 단일 전략(Online Only)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라인 판매 비중을 90% 이상으로 강제하는 규제가 완화되어야 가능하다. 온라인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살리면서 대면과 비대면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판매모델 도입이 필요하다. 자동차보험이나 소액저축성 보험에 제한적으로 도입된 ‘보험상품 비교추천 플랫폼’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정책적 변화와 보험업계의 협조도 요구된다. 디지털 환경에 부합하는 소비자 중심의 비교추천 플랫폼 구축이 절실하다.
인터넷보험사는 차별화된 상품과 혁신적 서비스를 통해 보험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기술과 비전을 무기로 전통 보험업에 도전했지만 자본력·규제환경·고객신뢰라는 견고한 벽을 넘지 못했다. 캐롯손보의 흡수합병 논의는 디지털 시대 존폐 위기에 직면한 인터넷 보험사의 성장 전략을 되돌아보게 하는 분기점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인터넷보험사가 긴 터널을 벗어나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허정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