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복제품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전시 ‘세컨드 임팩트’

1800년대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을 그저 찰나의 이미지를 복사해주는 ‘기술’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논란을 거치며 이제 사진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 공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3D 프린터를 이용해 원작을 복제한 작품이나 생성형 AI로 만들어 낸 작품들 역시 우리는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16일부터 선보이는 소장품 상설전 ‘세컨드 임팩트’는 ‘원복과 복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조명한다.

전시에는 소장품, 소장품의 복제품 그리고 2차적 저작물이 공존한다. 전시는 원본과 복제가 서로의 가치를 높이고, 대체를 시도하고 혹은 새로운 원본의 매개가 되는 복잡한 관계를 살피며, 관람객에게 예술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전시를 기획한 김민승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지난해 나혜석 사진첩 복원을 진행하며, 현재의 상태로 해야 할지, 사진첩 제작 당시의 모습으로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면서 "이번 전시는 소장품 관리자로서 고민하는 지점들을 담았고, 또 이를 관람객들에게 질문하는 전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전시 서두에는 저작권법에 따라 2차적 저작물로 분류될 수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하며, 법적으로 인정받는 원본과 복제의 개념 차이를 설명한다.

이명호, 문화유산 #3-서장대, 2015. 정경아 기자

이명호의 ‘문화유산 #3-서장대’는 수원 팔달산에 위치한 ‘서장대’라는 건축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활용했다. 사진 속 대형 캔버스는 피사체 뒤에 실제로 설치돼, 대상을 현실에서 분리하고 새로운 시선을 이끌어낸다.

이이남, 인왕제색도-사계, 2009. 정경아 기자

이이남의 ‘인왕제색도-사계’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작품에 작가만의 해석을 더한 2차적 저작물이다. 미술저작물 원본에서 시작해,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인왕산의 사계절을 담았다.

두 번째 섹션은 전시에서 관람객의 작품별 관람 시간이 평균 15~30초라는 조사에 기반해 구성됐다.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깊은 감상과 이해를 끌어내기 위해 원작품의 형태와 색상을 본뜬 인형 탈(에어수트)을 함께 배치했다.

홍순모 작가의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와 작품을 본 뜬 인형 탈. 정경아 기자

관람객은 홍순모의 높이 61㎝의 조각작품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를 만나기 전 높이 약 230㎝의 인형 탈을 마주하고, 착용해볼 수 있다. 질감, 물성 등 인형 탈에서 보이는 표면 외의 것들을 원본작품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원작품의 제목과 제작 의도를 읽으며 작품을 조금 더 다채롭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김경태 작가의 ‘서북공심돈’과 수원화성 서북공심돈을 찍은 자료사진. 정경아 기자

세 번째 섹션에서는 ‘자료사진’과 ‘예술사진’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 김경태의 사진 작품 ‘서북공심돈’은 같은 피사체를 촬영한 자료사진과 나란히 놓여있다. 관람객은 자료사진을 확대해보며 작품과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어느 부분을 촬영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두 사진의 어떠한 차이가 예술로서의 지위를 얻게 하는지 ‘작품의 조건’을 고민해본다.

유의정 작가의 ‘액체시대’와 3D프린터 복제본. 정경아 기자

이후에는 유의정 작가의 도자기 작품 ‘액체시대’, 이와 같은 크기의 3D프린터 복제본, 3D도면 영상을 함께 보여 주며 작품과 복제물의 삼각관계를 살핀다.

관람객은 도자 표면의 울퉁불퉁한 부분과 오브제들을 부착하며 생긴 비대칭까지 그대로 구현된 복제본이 과연 원본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본다. 더 나아가 원본이 사라진 후 상세한 기록에 따라 복원된 작품을 원본과 같이 인정해야 하는지까지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다.

전시는 확 트인 공간의 1층 로비에서 배형진의 작품 ‘벽·인간 1’과 ‘벽·인간 3’으로 끝을 맺는다. 각 작품 사이에 설치된 구조물 위에 올라 관람객 스스로가 직접 복제 작품이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이번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개최되며, 오는 9월22일까지 1부 전시를 진행한 후 일부 작품을 교체해 10월1일부터 2부 전시를 이어간다. 한애규 작가의 ‘지모신’과 안성석 작가의 ‘역사적 현재 002’, ‘역사적 현재 004’, 심영철 작가의 ‘빗의 단계적 표상’이 전시된다.

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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