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사운드 리버 페스티벌 현장 "걸어요 이 여름밤을"
“요즘 한강에서 무소음 헤드폰으로 디스코 파티 많이 하는데, 한강만 강이가? 남강도 강이다!”
지난 20일 오후 7시 20분께. 진주 칠암동 남강변 형평운동기념탑 앞으로 운동복 차림의 시민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민소매와 반소매, 반바지와 10부 바지 등 차림새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운동화를 챙겨 신고 목에 파란 스포츠 타월을 둘렀다.
여기까지는 대규모 야외 운동 모임이나 경기를 찾아도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지만,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이 하나 있었다.
모두가 머리에 동일한 무선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드폰 양쪽 귀 부분에 새겨진 NONOIZ(노 노이즈)라는 글씨와 로고가 푸른 빛을 발산하면서 참가자들은 따로 또 같이 이 시간을 즐기는 동지가 됐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더운 날씨 속 이들이 남강변으로 나온 까닭은 ‘2024 사운드 리버 페스티벌(강변 음악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역 문화 콘텐츠를 발굴해 지역 청년 인구 유출 문제를 극복하겠다며 지난 2019년 진주에 문을 연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연구소)이 주관하는 행사로, 지난 4월 열린 ‘사운드 리버 워크(강변 음악 걷기)’의 후속 격 행사다.
연구소는 4월 행사 당시 뜨거운 반응을 바탕으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 기존 활동에 더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강해 축제형 행사로 진화시켰다.
행사는 크게 2개 순서로 꾸려졌다. 먼저 자전거를 탄 DJ를 따라서 디제잉 음악을 들으며 함께 걷고 달리는 ‘사운드 리버 워크’. 이후 돗자리와 식음료를 지급받아 남강변에 앉거나 누워 DJ가 들려주는 음악을 즐기는 피크닉 시간.
행사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1부,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2부로 진행됐는데 날이 밝은 시간 진행된 1부는 스피커로 음악을 자유롭게 틀었던 반면 일몰을 즈음해 시작한 2부부터는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참가자 전원 무선 무소음 헤드폰을 통해 디제잉 음악과 사회자 목소리를 듣는 독특한 형식으로 ‘무소음 사운드 리버 워크’와 이후 피크닉이 진행된 것.
헤드폰을 끼자 풀 벌레 찌르르 우는 소리와 주변 인파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절로 무릎이 들썩이는 신나는 멜로디가 들려오는 상황이 퍽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멜로디가 눈앞의 DJ가 실시간으로 틀어주고, 동일한 헤드폰을 낀 세 자릿수의 사람들이 함께 듣고 있는 음악이라는 점이. 흥에 겨운 듯 헤드폰을 끼지 않은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고 음악 맞춰 춤을 추는 참가자가 여럿 눈에 띄었다.
헤드폰을 끼고 디제잉 장비가 달린 자전거에 오른 DJ koko(코코) 앞에 서 6열 종대로 국민 체조를 하던 참가자들은 한 줄에 2명씩 줄을 새롭게 정비해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걷고 또 달렸다.
반환 지점인 진주성 앞 남강에 띄워진 하모 조형물에 도착해 남강과 진주성 야간 조명을 배경으로 한껏 인증 사진을 찍은 참가자들은 DJ koko를 따라 출발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무소음 사운드 리버 워크’가 마무리되자 헤드폰의 불빛이 파랑에서 빨강으로 바뀌며 피크닉 시간이 찾아왔다. 보랏빛 경관 조명을 입은 뒤벼리를 배경으로 헤드폰을 낀 채 디제잉에 여념이 없는 DJ min.K(민케이) 앞으로 음료와 먹을거리를 수령한 참가자들이 하나둘 돗자리를 펼쳤다.
사전 신청자와 이날 현장 참가자를 합쳐 주최 측 추산 참가자 500명 대부분은 20~30대 친구·연인 단위였지만, 홀로 혹은 반려견과 함께 행사장을 찾거나 가족 단위로 참가한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박소연(26·진주)씨는 “재미있는 행사 같아서 남자 친구와 함께 찾았다”며 “조금 덥기는 하지만 이렇게 뛰니 개운하고 좋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1부와 2부 행사에 모두 참여한 시민도 있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돗자리를 받아 든 최인아(58·진주)씨는 “SNS에서 행사 소식을 접하고 딸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며 “1부와 2부를 모두 참여했더니 생각보다 힘들긴 했지만 재밌고 좋다”고 전했다. 딸과 나란히 돗자리에 누워 보름달이 찬란한 하늘을 바라보며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모습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남강변 산책을 즐기던 행인과 자전거 족들은 평소 마주하기 힘든 독특한 풍경을 호기심 어린 풍경으로 지켜봤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데 리듬을 타며 디제잉을 하는 DJ bookbuk(북북)과 그 앞에서 모두 같은 헤드폰을 낀 사람들을 보며 저마다 추측을 내놓기 바빴다.
행사가 별도의 참가비 없는 선착순 신청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안내받은 한 행인은 행사 진행 요원에게 “SNS로만 행사가 열리는 것을 알고 신청할 수 있냐”, “진주 시내 상권이 많이 죽었는데 구도심에서도 이런 걸 해주면 안 되냐” 등 폭풍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연구소 측이 ㈔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 공모에 선정돼 진행한 사업으로, 이후로도 행사를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등 계속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경남 #진주 #남강 #사운드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