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80만원으로 충분해”대도시 탈출하는 중국의 청춘들

한겨레21 2024. 10. 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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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중국 역사의 쓰레기 시간’ 조롱하며 은거 선택… 암담한 현실 반영
베이징 지하철 상안역. 역 이름은 취업이나 대학원, 공무원 시험 등에 합격해서 사회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유행어가 됐다. 베이징 문화관광국 누리집 갈무리

“사람들은 다 크면 마치 불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 의지대로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고 모두 세상이 요구하는 의지대로만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일까요? 저는 이해가 잘 안 가요.”

“그럼 넌 뭘 하고 싶니?”

“내 작은 방을 정리한 뒤 하루 종일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만) 살고 싶어요.”

“뭘 해서 먹고살 거니?”

“온라인 가게 사장이 되고 싶어요. 1년에 2만위안(약 380만원) 정도 벌어서 최소한의 식료품을 사고 물세, 전기세, 월세 등만 낼 수 있다면 충분할 거 같아요. 다른 걱정거리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아주 괜찮은 일 같거든요.”

즐겨 보는 중국의 한 다큐멘터리 대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젊은 출연자가 나눈 대화다. 대화를 나눈 청년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부모가 사는 궁벽한 고향 마을에 내려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도시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일하는 고향 친구들은 그사이 ‘세상의 의지대로만 살다가’ 세파에 푹 찌든 몰골을 하고 있었다.

세상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2024년 9월 중순 윈난성을 여행하면서 만난 샤오양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년 서른 살이 된 샤오양은 대학 졸업 뒤 줄곧 고향 충칭의 한 작은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고 지금도 부모와 함께 산다. 그림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는 “돈벌이하기 힘들다”며 대신 안정된 월급과 노후를 보장하는 “교사가 돼라”고 했다. 그래서 ‘교사가 되기 쉬운’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졸업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잡지사 편집자가 됐다. 현재 직장에 딱히 큰 불만은 없지만 서른이 되면서부터 사는 게 갑갑해졌다. 부모와 주변 친척 및 이웃들이 다시 자신에게 ‘세상의 잣대’를 들이밀며 사귀는 남자친구가 없으면 맞선이라도 보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좋은 상대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며 그에게 “세상 순리대로 살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샤오양은 아직 그림 공부에 미련이 남아 있다. 하지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은 나이 서른에 처음부터 다시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고, “궤도를 이탈해 사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충고한다고 한다. 자신은 이제 ‘겨우 서른이라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은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벌써 서른이나 됐으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정도 혼자 독립할 수 있는 돈을 모으면 집값이나 월세가 싼 조용한 곳을 찾아 ‘자신만의 방’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그 방에서 좋아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며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산책 다니다가 저녁에는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들과 함께 광장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샤오양이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사는 게 과연 궤도를 이탈하는 위험한 일일까요?”

‘원조 은거자’ 저우후이(오른쪽)와 그가 쓴 책 ‘나를 아는 사람들은 천천히 나를 잊어갈 것이다’(왼쪽). 타오바오 갈무리

1974년생 저우후이는 마흔 살이 되던 해인 10년 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선전 외곽에 있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촌마을에 방 한 칸을 얻어 정착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비슷한 다른 청년들처럼 공장에 취직했다. 나중에 자력으로 성인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의 한 물류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으로 발탁돼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등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새로운 상사로 부임했고 그것을 빌미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다니긴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아니었고 평생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우연한 계기로 선전 외곽에 있는 한 외진 마을을 알게 된 그는 단박에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조용히 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을에는 자신과 마음이 통할 것 같은 몇몇 작가와 예술가가 이미 둥지를 틀어 살고 있던 터라 가끔 사교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시내에 산 작은 집을 세주고, 지금 사는 마을에서 한 달에 500위안(약 10만원) 정도 하는 방 한 칸을 얻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과 세준 집에서 나오는 월세를 쪼개서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살고 있다. 야채나 과일 등 기본적인 식재료는 이웃이 텃밭 농사지은 걸 얻어먹거나 마을 농부들에게서 아주 싼 가격에 사서 먹는다. 배달도 잘 안 되는 곳이라 도시처럼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10년째 살고 있다. 그가 매일 하는 일은 읽고 싶은 책 읽기와 블로그 등에 글쓰기,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초 돌보기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 헬스장에 가서 좋아하는 춤을 추는 게 거의 유일한 사회 활동이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직업을 물으면 “마땅히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못생긴 편에 가까운 무직자”라고 답한다.

소도시·농촌서 심심한 일상 속 행복

저우후이가 자신만의 외딴 방에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무료한 자유’다. 하루 종일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 고양이와 새, 화초들과만 얘기하는 날도 있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만나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이렇게 ‘무료한 자유’가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저 쉬운 삶을 선택했고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 도피한 것일 뿐입니다. (…)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 같아요. (다니기 싫은 직장에) 출근하며 사느니 차라리 가난하게 살고 싶답니다.” 저우후이가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24년 초 블로그나 일기 등에 썼던 글들을 모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천천히 나를 잊어갈 것이다’(认识我的人慢慢忘了我)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이웃에 사는 문학평론가가 평소 그의 글솜씨를 눈여겨보다가 ‘강요해서’ 묶어낸 책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무명에 가깝던 그의 책은 초판이 나오자마자 무섭게 입소문을 타더니 주요 매체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서평과 인터뷰가 폭주했고 불과 출간 두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그저 무료하고 단순한 자신의 일상을 무채색 수묵화처럼 써내려간, 심심함 가득한 내용의 에세이가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저우후이의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가 공통으로 공감하는 부분은 ‘무료한 자유’와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달아나’ 살 수 있는 자유다.

중국 내 유수 잡지사에서 논픽션 전문 기자로 일하던 리잉디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번아웃이 찾아왔다. 어딘가로 잠시 ‘달아나’ 푹 쉬거나 은거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차츰 은거한 사람들과 탕핑(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는 상태)하는 사람들, 숨어버리거나 (세속적 삶에서) 달아나버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은거를 꿈꾸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인 ‘은거바’(隐居吧)를 발견했다. ‘은거바’는 현재 약 14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바이두 내 인기 커뮤니티다. 리잉디는 2021년부터 ‘은거바’ 회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취재를 했다. 그가 궁금했던 건 이렇게나 많은 (대부분 젊은) 사람이 왜, 무슨 이유로 ‘자신만의 방’으로 달아나고 싶어 하는가였다. 리잉디가 3년여간의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최근 들어 부쩍 ‘달아나고 싶은’ 은거자들이 폭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직 실패·비싼 집값 등 원인

예전에는 은거자라고 하면 주로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절이나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정신적 수양이나 자유를 찾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가 취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은거’의 개념이 최근 복잡한 의미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두 ‘은거바’에 자주 출몰하는 사람들은 젊은 청년이 주류이며, 그들이 은거하거나 달아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종교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라고 한다. 구직 실패, 비싼 집값, 결혼 문제, 직장 내 인간관계 등등 삶이 피폐해진 청년들이 빈약한 경제력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물가의 소도시나 촌마을로 가서 ‘자신만의 방’을 구입한 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조용히 은거하듯 사는 일종의 저욕망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2022년, ‘은거바’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나는 허강(동북 지역에 있는 변경 소도시)으로 가서 가진 돈 중에서 3만~4만위안(약 600만~800만원) 정도 들여서 아파트를 산 뒤, 남은 돈으로 (일하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해 다른 언론매체에서도 도시의 비싼 주택가격에 지친 청년들이 외진 변경도시 허강으로 내려가 집을 사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은거바’에서는 곧바로 허강으로 가서 집을 사거나 이미 집을 사서 은거하고 있다는 회원들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허강 외에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성 허비 지역 등에도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집을 사서 ‘탈출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리잉디는 ‘은거바’에서 직간접적으로 그들을 취재하면서 더 깊은 호기심이 생겼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도 허강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현실의 삶에 지쳐 ‘달아나’ 은거하듯 살고 있는 수많은 실제 은거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웃으로 살며 취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실에서 ‘달아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예전 사람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 노력을 하든지 간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습니다.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요.”

리잉디는 2024년 8월, 자신이 지난 3년 동안 바이두 ‘은거바’와 허강에 살면서 취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서 ‘달아난 사람들’(逃走的人)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이 책 역시 출간 즉시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우후이의 책과 마찬가지로 리잉디의 ‘달아난 사람들’ 이야기가 주목받는 것은 현재 중국 젊은이들이 처한 각종 암담한 현실과 심리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 진입으로 여기기도

최근 베이징에는 지하철 ‘상안’(上岸)역이 핫스팟이 되고 있다. ‘상안’은 원래 ‘육지에 상륙하다’라는 뜻이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취업이나 대학원, 공무원 시험 등에 합격해서 사회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의미로 쓰이는 유행어가 됐다. 덕분에 베이징 ‘상안역’은 취업이나 각종 시험 등을 앞둔 청년들이 한 번씩 들러서 ‘성공적인 사회 상륙’을 기원하며 인증샷을 찍는 핫플이 됐다. 하지만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안전하게 ‘육지 위로 상륙’했고 나머지는 아직도 망망대해 위에 떠 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유례없는 빙하시대를 맞고 있는 중국 청년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금을 ‘역사의 쓰레기 시간’이라 조롱하며 현실의 바다 위를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다 지친 이들은 어딘가로 멀리 달아나 한동안 은거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생활을 포기하고 가만히 드러눕는 절망적인 탕핑이 아니라 최소한의 씀씀이로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을. 그들은 그것이 진정한 ‘상안’이라고 말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3주마다 연재.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은거를 꿈꾸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인 ‘은거바’. 바이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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