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규모 단속에 나선 현장은 조지아주의 한국 배터리공장이다. 외견상 투자 파트너였던 한국 기업은 하루아침에 불법 고용의 표적이 됐고 단속 무대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으로 활용됐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 정부와 민주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 함께 존재하는 분할 권력 구조, 북미 최대 규모의 첨단 공장이라는 상징성이 맞물리면서 조지아는 미국 정부가 가시적인 단속 성과와 강경한 정치 메시지를 동시에 연출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지아' 왜 단속 무대가 됐나
조지아는 미국 대선의 판도를 결정짓는 대표 스윙스테이트로 최근 수년간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온 지역이다.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불과 0.23%포인트 차이로 승리하며 민주당에 28년 만의 승리를 안지만, 불과 4년 뒤인 2024년에는 공화당이 50.7% 득표율로 다시 승리했다.
이 같은 빠른 권력 재편은 조지아가 미국 정치 지형에서 얼마나 유동적이고 민감한 곳인지 보여준다. 실제로 조지아는 지난 대선 당시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미시간, 위스콘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와 함께 미국 7대 스윙스테이트로 분류됐다.
현재 조지아 정치 지형은 이 같은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는 과거 트럼프와 갈등을 빚은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화당 노선을 유지하며 주정을 이끌고 있다. 주 의회 역시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우세해 정책 기조는 뚜렷하게 보수적이다. 반면 연방 상원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주 차원의 권력은 공화당이 쥐고 있지만 연방 차원 대표성은 민주당으로 기운 분할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ICE가 단속 무대로 조지아를 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단속의 집행 주체인 ICE는 행정부 소속으로 연방 기관이지만 실제 단속 실행과 공권력 운용은 주 정부 및 지방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조지아처럼 주 단위 권력이 공화당에 있는 경우 집행 저항이 적고 법 집행 효율이 높아진다.
여기에 연방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같은 집단단속에 정치적 반발을 제기함으로써 이슈를 전국 단위로 확산시킬 수 있다. 조지아는 단속의 현장 실행 효율성과 정치적 파급력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략적 무대였던 셈이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했거나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계산과도 맞닿아 있다. 강경 이민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민주당의 전국적 반발은 통제 가능한 선으로 관리하고자 할 때 조지아는 최적의 선택지인 것이다. ICE가 집행에 집중하고 민주당이 비판하며 전국 언론에 노출되는 구조 속에서 정책 메시지와 정무적 효과가 동시에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속 가시성·정치 상징성 갖춘 '완벽한 타깃'
같은 시기 미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일본·유럽계 기업들과 비교하면 한국 기업들이 유독 단속 표적이 된 데에는 구조적·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도요타·혼다 등 완성차 기업들이 수십 년 전부터 미국에 다수의 생산거점을 구축해 왔지만 이번처럼 수백 명 단위의 대규모 불법고용 단속에 적발된 사례는 없었다. 이는 일본 기업들이 현지 고용 비중을 높게 유지하고 필수 인력만을 엄격히 정식 취업비자를 통해 파견하는 관행을 고수해온 결과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고강도 이민·고용 정책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일본은 외교적 로비보다는 기업 내부의 준법 체계 점검에 집중해왔다.
유럽계 기업들도 미국 내 다수의 공장을 운영 중이지만 이들과 관련된 불법 고용 적발 사례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독일계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법규 준수와 서류 기반 통제에 대한 조직적 집착이 강하다. 원칙주의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관리방식 덕분에 미국 당국이 추적할 수 있는 허점 자체가 적었다는 평가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상황이 다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현대차 등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수십조원을 투자하며 배터리 및 완성차 공장을 단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해 왔다.
HL-GA 프로젝트만 해도 7조원 이상이 투입된 대형 사업으로 단기간에 수천 명이 집중 투입되면서 단속 노출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단속 규모가 클수록 가시성과 상징성이 커지는 만큼 미국으로선 한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 정치적 메시지와 준법 효과를 동시에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속도전 문화'까지 겹쳤다. 공정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사 숙련 인력을 단기 방문 자격으로 급히 투입하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 이는 현장에서는 일종의 필요 악으로 통했지만 미국 당국 입장에서는 명확한 규정 위반 근거가 되는 제도적 허점으로 작용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 메시지와 단속 실효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대규모 투자로 주목받고 단기간에 인력이 집중되며 제도적 허점이 노출되기 쉬운 한국 기업이 단속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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