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2월 14일과 15일 사이 베트남 꽝응아이성 짜빈동 일대에서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 11중대 97명이 약 2400명의 베트콩·월맹 정규군과 야간 백병전을 벌인 사건이 있습니다. 같은 부대 동료들도 한 시간 거리 밖에 있어 혼자 버텨야 했던 그날 밤입니다.11중대는 당시 진지를 미리 정비해 두고 있었고, 적의 우회 침투 패턴을 일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이 새벽 어둠에 맞춰 들어왔을 때 첫 사격선에서 무너지지 않고 진지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이 가능했습니다.
이 전투는 한국 해병대의 베트남 파병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입니다. 적 대비 병력비가 1대 25에 가까운 상황에서 진지를 끝까지 사수했고, 살아남은 인원이 적 사상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전투 직후 미국 해병대 사령부는 "Tra Binh Dong"이라는 명칭으로 보고서를 정식 채택했고, 한국 해병대에는 부대 단위 표창이 수여됐습니다. 한국군 베트남 파병 8년 가운데 가장 강도 높았던 야간 방어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97명 대 2400명, 진지 안에서 이뤄진 야간 백병전
당시 11중대 인원은 97명, 진지를 둘러싼 적은 베트콩 21사단과 월맹 정규군 일부를 합쳐 약 2400명으로 추정됐습니다. 적은 새벽 4시 무렵 어둠을 이용해 진지 외곽 철조망을 절단하며 들어왔습니다.11중대원들은 진지 안 깊숙한 자리까지 적이 들어오게 한 다음, 미리 약속된 수신호를 기점으로 일제히 사격과 백병전을 시작했습니다. 진지 한 구역에서는 총알이 떨어진 병사가 야삽으로 적과 맞붙는 장면이 나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적의 우회 침투 동선을 진지 정비 단계에서 막아두었다
11중대는 전투 며칠 전부터 진지 외곽 정찰 보고를 모아 적이 어떤 골짜기를 따라 들어올지 예측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 골짜기에 부비트랩과 조명탄을 미리 배치해 둔 것이 첫 사격선의 결과를 갈랐습니다.적이 첫 골짜기 장애물에 막혀 정렬이 흐트러진 사이 중대원들은 미리 잡아둔 사격 위치에서 정확한 사격을 이어갔습니다. 진지 정비 단계에서 끝낸 준비가 야간의 혼란을 줄이는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세 시간, 손이 닿는 거리에서 끝난 전투
새벽 4시 첫 교전부터 새벽 7시 적의 마지막 후퇴까지 약 세 시간 동안 11중대 진지 안쪽에서는 손이 닿는 거리에서의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사격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는 수류탄과 야삽이 사용됐습니다.날이 밝으면서 적이 후퇴하기 시작했을 때 진지 안에는 수많은 적의 시신과 무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국군 측 사상자도 결코 적지 않았지만 진지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날의 결과는 방어 성공으로 기록됐습니다.

전투 직후 미군이 채택한 'Tra Binh Dong' 보고서
전투가 끝나고 며칠 뒤 미국 해병대 사령부는 한국군의 진지 운용 방식을 정리한 보고서를 별도 명칭으로 채택했습니다. 사단급 정찰 보고에 한국 해병대의 야간 방어 사례로 짜빈동이 정식 인용된 것입니다.이 보고서는 당시 베트남 전선에서 활동하던 다른 미군 대대에도 회람되어 야간 진지 정비 표준에 일부 반영됐습니다. 한국군 부대가 미군 매뉴얼에 사례로 들어간 보기 드문 기록입니다.

11중대장과 11중대원들에게 부대 표창과 미국 대통령 표창
한국 해병대 본부는 11중대 전체에 부대 표창을 수여했고, 중대장과 분대장 일부에게는 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도 해당 부대에 대통령 부대 표창을 별도로 보냈습니다.전투 당시 살아남은 중대원 일부는 이후 한국으로 귀환해 해병대 교육기관에서 교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짜빈동의 진지 운용 방식은 1970년대 한국 해병대 야간 훈련 표준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진지 한 곳을 끝까지 사수한다는 것의 의미
짜빈동은 단순히 적 사상자가 많았던 전투가 아니라, 1대 25의 병력비에서도 진지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군 베트남 파병사의 상징이 됐습니다. 야간 어둠과 손에 닿는 거리에서의 백병전이라는 가장 가혹한 조건이었습니다.11중대원 한 명 한 명에게는 그날 밤이 가장 긴 세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한국 해병대 부대 역사관에는 짜빈동 진지 모형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짜빈동 전투는 베트남 파병에 나섰던 한국 해병대의 강한 야간 진지 방어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97명이 한 진지를 사수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숫자 비교를 넘는 의미를 가집니다. 같은 시기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남긴 다른 비사들도 함께 기억할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