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B하이텍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사업부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사업부의 분할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주주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물적분할 방식이 유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DB하이텍은 지난 7월과 8월 공시를 통해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DB하이텍은 "반도체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설계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며 "다양한 전략 방안을 고려 중이나, 구체적인 방법 및 시기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시에 따르면 DB하이텍의 분사는 '상수'이며, 분할 방식과 분할 시기만 '변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DB하이텍의 최대주주인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을 쪼개는 것이 최대주주에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DB하이텍을 인적분할할 경우 주주들에게 부정적 영향이 없지만, 물적분할을 택할 경우 DB아이엔씨를 제외한 주주들의 손실이 예상된다.
DB아이엔씨의 DB하이텍 지분은 17.84%에 불과하다. 김준기 DB그룹 전 회장과 DB김준기재단 등의 지분을 제외하면 DB아이엔씨의 지분은 12.84%에 불과하다.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낮은 만큼 만약 주주총회에서 DB하이텍 분할 안건이 통과될지 불투명하다.
분할 안건이 통과하려면 출석한 주주의 주식수의 과반 이상과 발행주식의 4분의 1(1112만주) 이상 분할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792만주에 그쳐, 국민연금공단(415만주)이 분할에 찬성해야 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DB그룹 입장에서 DB하이텍 분할 안건은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결과를 확신하기 어려운 현안이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시장은 DB하이텍의 분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DB아이엔씨의 속내가 궁금하다는 반응이다.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군불'을 떼는 것이란 관측도 있다. 분할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매각을 염두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나리오 1. '연말까지 버티면 산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DB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할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DB아이엔씨는 지난 5월1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사로 전환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말 DB아이엔씨의 자회사인(DB하이텍 포함)의 지분증권 공정가액은 4092억원을 기록했다. DB아이엔씨의 자산총계(6019억원) 중 자회사 지분증권 비중이 67.9%를 기록해 지주사 강제 전환 요건인 50%를 돌파했다.
DB하이텍이 메모리 시황 영향으로 주가가 약 70% 상승하면서 DB그룹은 강제로 지주사 전환 이슈를 맞딱뜨렸다. 이 경우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지분을 최대 30%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지분 매입에 3000억원 이상을 써야한다. 현행 법에 따라 지주사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 30%(상장사) 이상 확보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 DB아이엔씨의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은 256억원에 불과하다. 현금성 자산을 모두 털어도 60만주밖에 살 수 없다. 지분율을 1% 정도 높일 수 있어 사실상 지주사 전환은 DB아이엔씨에게 불가능한 선택지다.
지주사 전환을 피하려면 DB하이텍 등 자회사 주식가액의 비중을 50% 미만으로 낮추는 방법이 있다. DB아이엔씨가 차입금을 빌려 자산규모를 키우거나 자회사의 주식가액 비중이 낮아지면 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 DB아이엔씨의 자회사 지분증권 공정가액은 2838억원을 기록했다. 2개 분기 만에 30.6% 하락했다. 자산총계 대비 자회사 지분증권 공정가액은 55.4%를 기록했다. 여전히 지주사 전환 의무는 유효한 상황이지만, DB하이텍 주가가 조금 더 하락하면 지주사 전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황은 전방산업 수요 둔화로 어려운 상황이다. 특수한 호재가 없다면 DB하이텍의 주가가 올라갈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주가가 조금 더 하락할 경우 이전처럼 관계기업으로 DB하이텍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상장사의 기업분할 안건은 주주에게 매우 민감한 현안이다. 물적분할을 추진할 경우 DB하이텍 신설법인이 존속법인에 종속돼 기존 주주는 간접적으로 지배하게 돼 손해를 본다. 만약 인적분할을 한다면 기존 주주는 DB하이텍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을 모두 직접 지배하게 된다. 이 때문에 물적분할 이슈는 주가에 지속적인 '악재'로 꼽힌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집단 반발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DB하이텍이 그동안 주주친화정책이나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물적분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소액주주연대 관계자는 "(분할 배경에는) 대주주가 주가를 눌러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물적분할이 어렵다면 다른 이슈로 주가 하락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DB하이텍의 소액주주는 물적분할을 저지하기 위해 주주대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려면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며, 현재 4.6% 주주가 소송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들은 현재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시나리오 2. '분할 상장 또는 매각' 모두 DB그룹에 '이익'
DB그룹이 DB하이텍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분할을 추진 중이라는 관측도 있다. DB하이텍은 파운드리와 팹리스 역량을 모두 갖춘 종합 반도체기업(IDM)이다. DB하이텍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2%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냈다.
통상 종합 반도체 기업의 경우 이해상충 이슈가 발생한다. 파운드리 업체는 고객사로부터 설계 도면을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데, 같은 회사 내 설계 사업부로 민감한 기술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DB하이텍의 경우 팹리스를 맡고 있는 브랜드 사업부로 기술 정보 유출 우려가 있어, 분사가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다. 만약 DB아이엔씨가 DB하이텍의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팹리스 분사는 더욱 필요하다.
파운드리 사업의 성패는 팹리스 고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지 달렸기 때문이다. 종합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업을 모두 영위하고 있다. 두 회사에 위탁 생산을 맡기는 팹리스 업체 또한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중소업체인 DB하이텍의 경우라면 팹리스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글로벌 팹리스 시장의 상위 10개 업체는 퀄컴·엔비디아·브로드컴·미디어텍·AMD·노바텍·마벨·리얼텍·자일링스·하이막스 등으로 미국과 대만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 팹리스 업체 중에서는 LX세미콘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DB하이텍은 팹리스 경쟁력이 낮은 만큼 분사 후 매각이 현실적일 수 있다. 다만 DB하이텍이 시장에 준 시그널은 '분사 후 매각'보다 '분할 상장'에 무게가 실려 있다. DB하이텍은 지난 5월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황규철 전 전무를 브랜드사업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삼성전자에서 팹리스를 맡고 있는 부서다.
이를 두고 시장은 DB하이텍이 팹리스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인사로 해석했다. 황 본부장이 DB하이텍의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자체 브랜드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DB하이텍은 8인치 파운드리가 주력인데, 2007년부터 모바일·TV 디스플레이 화소를 조절해 색상을 표현하는 DDI 등 일부 제품을 직접 설계해 자체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 육성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DB하이텍의 팹리스 분할 안건이 주총을 통과할지 불확실하다. 다만 팹리스를 분사한다면 DB하이텍은 고객사의 신뢰와 분사를 통한 재무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분할 상장한다면 DB하이텍은 파운드리 사업에 쓸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DB아이엔씨는 구주 매출로 인한 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 분할 상장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예상되고, 시장 환경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분할 후 신설법인(팹리스)을 매각할 경우 DB하이텍은 상당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DB하이텍에 재투자할 수도 있고, DB아이엔씨에 배당할 수도 있다.

시나리오 3. 인적분할은 선택지에 없다
만약 DB하이텍에서 팹리스를 떼낸다면 인적분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적분할은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이 완전히 독립된 회사가 되는 수평적 분할 방식이다. 분할 시 기존 주주들은 분할 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배분받는다. 기존 주주들이 신설법인까지 직접 지배하는 만큼 반발이 덜하다.
지난 6월 발간된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간 이뤄진 상장회사 분할 중 78%가 물적분할인 것으로 집계됐다. LG와 신세계 등이 인적분할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데, 두 사례 모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인적분할한 사례다.
법인이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런데 인적분할 시 지주회사에 사업회사의 자사주까지 몰아서 배정한다. 지주사에 배정된 사업회사 주식은 자사주가 아니기 때문에 의결권이 부활한다. 지주사 전환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적분할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DB하이텍은 DB그룹의 지주사가 아니며, DB하이텍을 아무리 쪼개도 DB아이엔씨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활용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DB하이텍 분할에 인적분할 방식을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물적분할한다면 DB하이텍과 DB아이엔씨 모두 재무적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인적분할한다면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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