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빈티지 도자기 탕츠. 가격은 무려 5만4000원이다. 감사하게도 무료 배송이다. 해당 사이트의 유려한 포장이 어찌나 대단한지 “혜자잖아?”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래된 흔적이 전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느끼며 바라볼 때마다 역사와의 연결을 경험하세요.” 심지어 반품 불가에 대한 멘트도 환성적이다. “각 제품은 서로 다르며, 완벽하지 않고, 역사를 지니며, 그 여정의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Maison Extravaganza]
명사. 1. (中) 탕츠(湯匙 ) 2. (日) 치리렌게(散蓮華), 렌게 3. (英) 차이니즈 스푼(chinese spoon) 4. (韓) 렝게(스푼), 렌게, 우동스푼, 라멘스푼, 중식스푼【예문】탕츠로 볶음밥을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턱이 빠졌다.
탕츠다. 끓일 탕(湯) 자에 숟가락 시(匙) 자를 쓴다.¹ 국이나 탕 등 국물류 요리를 먹을 때 쓰는 숟가락이란 의미다. 영미권에서는 차이니즈 스푼(중국식 숟가락)으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후술할 일본식 이름을 빌려와 렌게라고 지칭한다. 렝게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유래한 식도구다. 한국에서 쓰는 숟가락보다 크고 깊게 파인 형태다. 음식을 퍼서 담는 부분(술바닥)과 손잡이(술자루)가 확실히 구분되는 한국식·서양식 숟가락과 달리, 탕츠는 바닥 면의 뒷부분이 점차 가늘어지며 자연스럽게 손잡이 형태가 된다. 전체 형태도 일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올라가는 모양새인 점과 바닥 면이 밥공기나 국그릇처럼 평평한 점도 탕츠의 특징이다.
주로 도자기 재질로 만든다. 오래전부터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인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쓰인다. 동남아에서는 금속이나 플라스틱(멜라민수지)으로 만든 탕츠를 많이 쓴다. 국내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에서 한국식 숟가락 대신 탕츠가 나오는 경우가 잦은 것도 이런 이유다.
¹ 중국어 간제차로는 汤匙라고 쓴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부위별 명칭과 단위. 알아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지는 않지만 재밌다. [인스푼 홈페이지]
한국식 숟가락과는 영 딴판으로 생긴 탕츠는 먹는 방법도 다르다. 커다란 탕츠는 입에 넣기 힘들 뿐만 아니라, 억지로 넣는다고 해도 각지고 깊은 모양 때문에 밥알이나 건더기를 깔끔하게 먹기도 힘들다. 탕츠는 국물을 퍼서 입을 대고 후루룩 마시는 용도다. 샤오룽바오(小籠包 소룡포)처럼 육즙이 많은 만두류를 터트려 그 육즙을 마시거나, 면류를 먹을 때 앞접시처럼 보조 식기로 쓰기도 한다. 즉, 개인용 작은 국자라고 보면 되겠다.
원래 용도대로 쓴다면, 탕츠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불편할 일은 없다. 문제는 일본으로 전파되면서부터 발생했다. 헤이안 시대(794~1185년) 일본으로 전파된 탕츠는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꽤나 대중적인 식기로 자리 잡았다. 현지에서는 치리렌게(ちりれんげ·散蓮華 산련화)라고 부른다. 간단히 렌게(れんげ·연꽃)라고 부른다. 흩어진(散) 연꽃(蓮華)이란 시적인 이름인데, 실제 연꽃잎을 보면 수긍하게 될 터다. 똑 닮았다.
‘중국식 숟가락’ 렌게의 어원은 연꽃을 뜻하는 일본어 ‘렌게’이다. [Kurt Stüber/위키피디아]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하레가헷타(배가 고프다)’좌 이노가시라 고로가 밥을 먹는 장면.gif 허겁지겁 밀어 넣는 모습을 보려고 보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머리 예절과는 좀 거리가 있다. 젓가락이 아닌 포크를 쓰긴 하지만, 숟가락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일본 식문화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테레비 도쿄]
일본 식문화에서 숟가락은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다. 일본 드라마 등을 보면, 밥그릇을 입에 갖다 대고 젓가락으로 입에 밀어 넣듯 먹는 식사 장면이 종종 나온다. 밥뿐만 아니라 국까지도 그릇을 들고 후루룩 마시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9세기 당나라가 쇠퇴하며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자, 숟가락과 젓가락을 고루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젓가락을 쓰는 일본만의 독자적인 식문화로 분화된 것으로 본다. 숟가락이 아예 멸종한 것은 아니지만 궁중·귀족 계층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외로이 젓가락만 남긴 서민의 식탁은 그렇게 몇백 년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17세기 에도시대~19세기 메이지 시대 일본 유물로 추정되는 숟가락. 은으로 만들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공공 저작물]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²로 대량 유입된 밀가루 덕분에 우동(うどん), 소바(そば·蕎麦) 같은 전통적인 면요리와 나가사키 짬뽕(長崎ちゃんぽん), 라멘(ラーメン) 일본식 중화 면요리가 대중적인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뜨거운 국물을 떠먹을 식기’ 즉 숟가락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숟가락에 대한 추억은커녕 역사도 없는 일본이 택한 방법은 ‘음식의 국적에 따라 다르게’였다. 라멘을 비롯한 중국식 요리에는 렌게를, 카레라이스에는 서양식 금속 스푼을, 비빔밥에는 한국 금속 숟가락을 사용하고, 일본식 메뉴에서는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쓰는 것이다. 이런 원작 존중의 정신 덕분에 국물 요리가 아닌 중국식 볶음밥 챠항(チャーハン)을 시켜도 금속 스푼이 아닌 렌게가 나와버린다. 사장님, 먹기 힘들다고요.
본토인 중국에서도 탕츠는 국물을 떠먹거나 죽 같은 묽은 음식을 먹는 용도로 쓴다. 공용으로 먹는 음식이나 반찬을 떠서 앞접시에 옮길 때도 쓴다. 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젓가락으로 먹는다.
² 1954년 미국의 ‘농업무역 및 개발 원조에 관한 법(PL480)’ 발효 이후, 자국의 남는 농산물을 제3세계로 대량 수출하게 된다. 이때 미국의 원조 밀가루는 한국의 짜장면, 대만의 우육탕면과 함께 일본의 라멘이 국민 음식으로 등극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명나라 시기(14~17세기) 유물인 옥(玉)으로 만든 탕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메트로폴리탄·공공 저작물]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인 열하일기(熱河日記·1780)에도 숟가락 문화의 차이를 기술한 부분이 등장³한다.
“중국 음식은 모두들 저를 사용하고 숟갈은 없었으며, 권하거니 받거니 하며 작은 잔으로 기쁨을 나눈다. 우리나라처럼 긴 숟갈로써 밥을 둥글둥글 뭉쳐 한꺼번에 배불리고는 곧 끝내는 법이 없이, 가끔 작은 국자로써 국물을 떴을 뿐이다. 국자는 마치 숟갈과 비슷하면서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기도 하나,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 한 쪽(形類蓮花一瓣)과 흡사하였다. 나는 국자를 집어서 한 공기 밥을 떠 보려 하였으나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 없기에…(후략)”
연암은 이 곤혹스러운 경험을 우스갯소리로 승화한다. “월왕(越王·춘추시대 월나라의 왕)을 불러오라”며 운을 뗀 뒤, 연유를 묻는 상대에게 “목이 썩 길고 입부리가 까마귀처럼 길었답니다”라고 답한다. 자신은 입이 툭 튀어나오지 않아 탕츠로는 식사하기가 영 어렵다는 의미다. 교양을 곁들인 K위트에 상대가 밥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박장대소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