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대통령이 쏘아 올린 ‘발전 통폐합’… 脫석탄 본궤도 오르나

강승구 2025. 12. 2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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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자회사
“왜 이렇게 나눠놨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李대통령, 기후부 업무보고서 의문 제기
기후부 “캘리포니아 대정전때 민영화 멈춰”
“발전사 분할이후 실질적 경쟁효과 없었다”
2040년 탈석탄시점 역산해 구조개편 검토
지역 대표 거점기업으로 지차체와도 밀착
개별 매출 10조 안팎으로 이미 커진 상황
통합하면 공룡 공기업… 사회적 갈등 우려

발전사 통폐합 논의가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전력 발전 부문의 5개 자회사 분리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발전 공기업 구조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발전사 통폐합은 정권마다 반복적으로 거론돼 온 이슈지만, 정부의 탈석탄 로드맵과 맞물리며 이번에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5개 발전사가 지역 거점 기업으로 오랜 기간 자리 잡아온 만큼 통폐합 추진 시 지방세 감소와 지역경제 위축, 지자체 반발 등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자회사 통합 방안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 전까지 가닥을 잡을 계획이다. 최근 발전 공기업과 자회사를 포함해 기후부에서 업무 검토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전경. [중부발전 제공]

◇전기본 앞두고 발전사 통폐합 검토 본격화


20년 넘게 5개 발전사가 분리 운영돼 온 만큼 지역 간 이해관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있는 상태다. 이에 정부는 단기 용역을 거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말 제12차 전기본 확정 이전에 관련 계획을 제시할 방침이다.

여기에 정부가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퇴출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발전사 구조 개편 논의 역시 탈석탄 로드맵을 전제로 검토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기후부는 2040년 시점의 발전소 구조를 역산해 살펴본 뒤 5개 발전자회사 체제 재편 방향을 내년 상반기를 중심으로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17일 이 대통령은 기후부 업무보고에서 한전 발전자회사들을 두고 “왜 이렇게 나눠났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이호현 기후부 2차관은 “발전과 (전력) 판매, 송배전을 구분하고 발전사를 민영화하고자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시도했다가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 민영화가 좋은 방법이 아니겠다고 해서 (한전 아래) 자회사를 만들고 멈췄다”고 답했다.

이후 이 대통령은 발전 부문 분할 이후 실질적인 경쟁 효과가 있었는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차관은 “전력을 한전이 혼자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경쟁 효과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기상청)·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복된 통합 논의, 다시 테이블 위로


발전사 통폐합 논의는 역대 정부에서도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정부 차원의 검토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경선전기·조선전업·남선전기 등 3개 전력회사가 통합됐고, 1982년 공기업 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2001년 4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거쳐 현재의 발전 5사 체제가 출범했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돼 1단계까지만 진행된 뒤, 노무현 정부 들어 중단됐다.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정전을 비롯해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선제적으로 추진한 해외에서 정전과 전기요금 급등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가 핵심 기간산업인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기능이나 역할을 보면, 지금처럼 지역별로 나누는 방식은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며 “지역별로 나눠 운영해 온 것도 나름의 장점은 있지만, 전력 계통 전체 차원에서 망의 안정성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발전사 통폐합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통폐합 논의가 속도에 치우치기보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눈여겨볼 대목은 과거 발전사 분리가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추진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전은 1999년부터 2001년 4월까지 약 1년 6개월간 발족 준비 조직을 운영하며 인수인계 절차와 분리 기준을 단계적으로 정리했다.

발전 5사 분리 당시에는 설비 용량을 균등하게 배분하고, 삼천포·보령·태안·하동·당진 등 핵심 화력발전소를 각 사에 1곳씩 포함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인수 조건 역시 구조조정 없는 고용 승계를 전제로 한전 입사일 인정과 급여·복리후생 등 근로 조건을 한국전력공사 기준에 맞춰 유지했다.

정부가 내년 말까지 통폐합 검토안을 내놓겠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 분리 과정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논의와 단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폐합 놓고 엇갈린 시선 ‘공룡 공기업’ 우려


현재로서는 5개 발전사 통폐합 이후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발전공기업 통합은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공사를 별도로 만들어 전환을 추진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발전 5개사 통폐합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개별 발전사 매출이 확대되고 지역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통폐합을 추진할 경우, 실익보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개별 발전사 매출이 이미 10조원 안팎으로 커진 상황에서 이를 통합할 경우 또 하나의 공룡 공기업이 탄생하게 된다”며 “남부·남동·중부·서부발전은 각각 부산, 진주, 보령, 태안에서 지방세를 가장 많이 납부하는 핵심 기업인 만큼, 통폐합이 추진될 경우 지방세 감소에 따른 주민 반발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역시 구조 개편의 방향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8월 정부가 발전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통폐합 방침을 거론하자, 성명을 내고 한전과 발전공기업을 화석연료 시대의 유물로 볼 것이 아니라 전기에너지의 공공성을 전제로 역할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분할이 아닌 통합적 구조 속에서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회사들이 지방으로 이전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르며 지자체와의 관계도 밀착됐다는 평가다. 지역 고용과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통폐합 논의 과정에서 지자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발전사 분리 이후 경쟁이 소모적으로 작동해 온 만큼 경영평가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 교수는 “현재의 비효율은 통폐합이 아니라 경영평가 방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경영평가라는 명목으로 5개 발전사를 과도하게 경쟁시키다 보니 소모적인 경쟁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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