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공개 대신 숨바꼭질, 벤투의 신의 한 수였다
패를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가린 숨바꼭질이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고집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24일(현지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후반 막판 우루과이의 공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전체적으로는 한국이 벤투 감독 체제에서 4년 동안 준비한 ‘빌드업 축구’가 기대 이상으로 구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향한 주위의 시선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H조 경쟁국들이 저마다 전지훈련, 또는 평가전을 한 차례씩 치르고 대회 개막 직전에서야 카타르에 입성한 반면 대표팀은 국내에서 한 차례, 그것도 정상 전력도 아닌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한 번 갖고 H조 팀들 중 가장 먼저 카타르에 들어왔다.
사실 벤투 감독도 전지훈련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카타르 입성 전 튀르키예(터키)에서 전지훈련을 고민했으나 한창 시즌 중인 유럽파 선수들이 참여하지 못하기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평가전의 경우는 대한축구협회 측에서 유럽 강호들과 중동에서 평가전을 갖는 것을 추진했는데 벤투 감독이 이를 거절했다.
다른 팀들이 착실히 전지훈련과 평가전으로 담금질을 할 때 대표팀만 다른 ‘마이 웨이’를 고집하며 적잖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우루과이전이 끝난 지금, 그 고집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벤투 감독은 유럽파 합류 직전 국내파 위주로 소집해 마지막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K리그는 올해 월드컵이 겨울에 열리다보니 그 전에 일정을 모두 끝마치기 위해 엄청나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시즌을 막 끝낸 선수들의 몸상태가 당연히 좋을리 없었고, 결국 훈련의 중심은 선수들의 몸상태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또 끌어올리는데 집중됐다.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에서 스리백을 쓰긴 했지만, 사실상 최종 엔트리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키는데 의미가 있었다. 어차피 대표팀의 주전력인 유럽파가 없는 시점에서 하는 전술 훈련은 무의미했다.
벤투 감독이 철저하게 훈련 위주의 스케쥴을 짠 것은 부상 선수들을 위함도 있었다. 손흥민(토트넘)이 불의의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고 황희찬(울버햄프턴), 김진수(전북)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회복은 한국의 월드컵 성적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벤투 감독은 이들의 회복 상태를 철저하게 감시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상태가 상대팀에 유출되지 않게 치밀하게 정보를 숨겼다.
다소 무모해보이기도 했던 숨바꼭질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증명됐다. 우루과이전을 통해 벤투 감독의 ‘이유 있는 고집’이 빛을 발하고 있다.
도하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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