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TV 드라마 대사를 줄줄 외워 어른들 앞에서 재연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줌마, 이거 봤어요?” 하며 극 중 장면을 말투까지 흉내 내던 그 아이는, 나중에 뮤지컬 무대 위에서 진짜 누군가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배우가 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뮤지컬 배우 민경아입니다.

처음 뮤지컬을 꿈꾸게 된 건 어머니 손을 잡고 <캣츠> 내한공연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고 합니다.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고양이들을 보며, 공연이 끝나자마자 “나 저거 할래”라고 했다고 하죠.

이후 중학생이 되어 <명성황후>를 본 민경아는 더욱 확고해졌다고 합니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요.
23살, 학교를 휴학하고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민경아는 <빨래> 오디션 최종까지 올라갔지만,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아, 난 안 되겠구나’ 느꼈다고 해요.
실제로 결과는 탈락이었고, 좌절을 안고 돌아가던 길에 배우 김수로를 우연히 만나 <아가사> 앙상블 오디션 제안을 받습니다. 그렇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고, 민경아는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2015년 뮤지컬 <아가사>의 앙상블로 데뷔했고, 같은 해 <베어 더 뮤지컬>에서는 주연으로 발탁됩니다. 앙상블에서 대극장 주연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베어 더 뮤지컬> 초연 당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바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게 마지막 공연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무대 뒤에서 울기도 했지만, 결국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무리됐고, 휴식 후 무대에 다시 올랐습니다.

그 후 1년간 항암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무려 1년 만에 다시 <베어> 재연 무대에 복귀해 같은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그때의 복귀는 민경아에게 있어 단순한 컴백이 아니라, ‘이 무대를 끝까지 마칠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와도 두렵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했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치열한 연습실, 낯선 무대, 끝이 보이지 않던 병원 생활까지 모두 지나, 지금 민경아는 <시카고>, <아이다>, <레베카>, <알라딘> 같은 대극장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 있습니다.

동화처럼 예쁘게만 보이는 무대 이면엔, 오디션에서 주저앉던 스물셋의 민경아와, 항암 치료 중에도 다시 무대를 꿈꾸던 민경아가 있습니다.

지금의 그녀를 만든 건, 타고난 재능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민경아의 무대는 더 뜨겁고, 더 깊게 마음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