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필리핀 ‘이모’, 그림자는 짙은데.. “1,200명 전국 확대” 이대로 괜찮으려나?
“돌봄, 돈으로만 환산”→ “무단 이탈로 드러난 것”
정책, ‘경제 효율성’에 갇혀.. “돌봄 노동 가치 외면”
오 시장 “필수 실험”.. “시도 자체 흔들어선 안돼”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전국 확대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는 시범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입국해, 가정에 배치된 지 채 몇 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이 가운데 2명이 추석 연휴 직후 숙소를 무단 이탈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주 여성 노동자의 돌봄노동을 저임금으로 환산해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한 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런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범사업 가운데 일부 문제가 발생했지만 “시도 자체를 흔들어선 안 된다”라고 밝히면서 미래의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실험’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주장이, 시작부터 기초가 흔들리는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는 모습입니다.
앞서 오 시장은 최근 필리핀 가사관리사 이탈 사건을 계기로 정책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범 운영 중 일부 미비점이 발견됐다고 시도 자체를 흔들려 해선 안 된다”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오 시장은 ‘법무부, 감사합니다. 참 잘하셨습니다’란 글을 올리고 “법무부의 '톱티어 비자' 신설을 환영한다”라며 “인공지능(AI), 로봇, 우주항공 인재 등 외국 우수인재 확보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법무부는 전날 5년 내에 인공지능·로봇·양자기술·우주항공 등 첨단분야 고급인재 10만 명을 유치하기 위해 위한 ‘톱티어(Top-Tier)’ 비자를 신설하는 등 비자 제도 개선과 지원을 강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청년 드림 비자(Youth’s Dream in Korea Visa)‘를 신설해 한국전 국제연합(UN) 참전국, 주요 경제협력국 청년 등에게 국내 취업·문화체험 등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오 시장은 여기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언급하면서 “2년 전 건의해 첫발을 내디딘 외국인 가사 관리사 정책 역시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라면서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려고 시범사업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으로, 지난달 6일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했지만 2명이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15일 숙소에서 이탈에 아직까지 연락이 끊긴 상황입니다.
오 시장은 “지금 대한민국 집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0.7명대고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라며 “10년 뒤면 돌봄 수요가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나지만 이에 대응할 인력 공급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미래의 진짜 문제를 잊지 않고 해결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라며 “적절한 외국인 인력 도입은 집의 균열을 메꿀 필수 해결책이다. 문제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이고 유연한 접근법을 찾기 위해 모두 함께 지혜를 모을 때”라고 글을 마쳤습니다.
이같은 주장에도, 각계에서 반발은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미봉책으로 그 이면에 숨은 부작용이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다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당초 서울시는 저출생 문제와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을 도입했습니다. 히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시범사업이 돌봄 인력난 해결이라는 명목으로 돌봄노동의 저평가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등 31개 단체가 참여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의 경우,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졸속적인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정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정부에 문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연대회의를 출범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연대회의 측은 “이 사업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와 아동 돌봄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없이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첫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기숙사의 엄격한 통금 시간 등 열악한 근로 여건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근로 환경은 노동자들의 무단 이탈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정부는 이들을 '불법 체류자'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범사업이 도입 초기부터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총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시 정책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을 저임금으로 활용하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기 위해 주 30시간 근무라는 제한적인 조건을 걸었고, 이를 통해 저임금 노동을 유지하려 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돌봄 인력의 안정성과 질적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연대회의 측은 앞으로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으로 입국한 필리핀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에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모든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그동안 저평가돼온 가사돌봄 노동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에 공공돌봄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주노동자와 연대해 함께 싸우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시민단체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여성의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관련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아니라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공공 돌봄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면서 “오 시장이 언급한 ‘미래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법’ 역시 결국 경제적 효율성의 틀을 넘어서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이번 ‘이탈’사건 역시도 단순 시범사업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저출생 문제와 돌봄 인력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되짚어봐야할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그만큼 돌봄은 단순히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는 얘기”라고 말햇습니다.
이어 “이를 외면한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정책은 더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서울시가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에 나설지 주목해야할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은 2022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월 38~76만 원 수준’의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언급하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을 제안하면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 발언 이후 ‘외국인 가사관리사’로 시범사업이 발빠른 과제로 추진됐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5월 저출생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도입을 주문하는가 하면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돌봄 서비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며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7월 3주간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이용 가정을 모집해 731가정 신청을 받아 157가정을 선정했지만, 89가정이 취소하는 등 초반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시는 재차 추가 선정을 통해 142가정과 이용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상시 신청 방식으로 전환해 매칭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내년 상반기 전국 단위의 ‘본사업’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본사업을 통해 외국인 가사 관리사 1,200명을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지만 시범사업 전부터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데다, 관리사 2명의 ‘이탈’사건이 이어지면서 본사업 시행에 대한 우려가 지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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