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 <해야> MV 일러스트는 어떻게 탄생했나.

아이브 <해야> 티저와 뮤직비디오 일러스트에서 멤버들의 호랑이 같은 기개가 잘 느껴져서 ‘어떤 분이 작업하셨는지’ 궁금했어. 그러던 중 우연히 일러스트를 작업하신 박지은 작가님의 블로그 글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어! 개인전 준비로 바쁘신 와중에 흔쾌히 응해주시며 동양화를 전공한 예술인만이 알 수 있는 고급 지식을 쏟아내주셨어.💗

박지은 작가님의 인터뷰, 지금 바로 만나보자!

편의상 캐럿은 🥕로, 박지은 작가님은 ✒️로 표기했어.

🥕: 지은님, 안녕하세요. stew! 구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작가 박지은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옛 그림에 담긴 바람, 들꽃, 폭포 등 흐르는 것을 보며 이것이 제 안에 있고, 또 그것을 표현할 수 있길 바랐어요. 때문에 동양화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곡선, 나선처럼 흐르는 것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삶과 그림 속에서 표현하고 있어요.

🥕: 블로그에 남겨주신 ‘한국화’와 ‘동양화’에 대한 고민이 인상 깊었어요. 비전공자인 저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거든요. 자연스레 지은님께서 ‘동양화’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어요.
✒️: 예술고등학교에 진학 후 전공 선택을 위해 여러 수업을 들어보았어요. 1학년 때 한국화 선생님께서 청경채를 수채화로 그리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때와 아주 큰 차이가 있더라구요. 종이 위에 물감이 번지고 마르는 과정을 직접 보며, 이런 한국화의 특성이 저랑 잘 맞을 것 같았죠. 그렇게 한국화 전공을 선택했어요.

아마 대부분의 한국화 전공생들도 저랑 비슷할 거예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말 충격적으로 매력적이거든요.

출처: 유튜브 IVE 아이브 <해야 (HEYA)> TEASER

🥕: 저도 작품이 그려지는 과정을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아이브 <해야> 일러스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 사실 한 달 정도 만에 긴박하게 작업이 진행되어, 자세히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우선 티저 제작진 측에서 원하셨던 것은 ‘호랑이’였어요. 토속적이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신비한 호랑이를 계속적으로 생각했고, 그런 아이디어를 아이브의 각 멤버들에 맞게 풀어내려 노력했어요.

<해야>를 하루 종일 듣고, 전달 주신 콘셉트에 맞는 결과물을 상상했어요. 화려하고 날렵하지만 귀여운, 그러나 고양이 같지는 않은, ‘호랑이’다운 기개를 담는 것에 집중했죠.

🥕: 정말 긴박하게 이루어졌네요. 원래 하시던 작업과 조금 다른 작업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크리에이터는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평소에는 대중의 선호도 고려하지만 스스로 좋다고 판단되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작업해야 하죠. 자기 작업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작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우니까요.

반면 <해야>는 대중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작업이었죠. 제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을 대중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한중일 안에서도 각 나라마다 호랑이의 느낌이 다른데 저희는 ‘한국 호랑이’를 전달해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호랑이의 해학적 까칠함과는 조금 다른, 앙큼한 느낌도 있는 아이브 호랑이. 이 느낌을 대중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어요. 덕분에 이번 작업을 하며 대중적 시선을 많이 배웠어요.

‘동서남북소녀사천왕 프로필’ 2021.

🥕: 작가님께서 의도하신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웃음) 작가님의 ‘소녀사천왕’ 시리즈도 재밌게 관람했습니다. 소녀사천왕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 작가, 크리에이터는 무언가를 보고 영감을 얻고, 자기 것으로 계속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한국화 작업을 지속하는 것에 영향을 줬던 것이 뭘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한국화와 서구 회화를 비교해서 보면 한국화 인물은 자세의 정형성이 있어 좀 덜 유연하기도 하고, 대칭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표현 방식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런 한국화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즐겁더라구요. 특히 신이나 사천왕, 보살 등을 그린 작품에서 이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 그럼 ‘이런 작업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옛 그림의 사천왕이나 보살은 모두 얼굴이 험상궂고, 몸이 우락부락해서 제가 상상해서 표현하기에는 거리가 있었어요. 저도 거리감을 느끼는데 한국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욱 낯설 것 같았죠. 그래서 제가 감정 이입이 될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세계의 신을 살펴보면 대체로 양성, 중성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참고했고, ‘어차피 지금 아무 기반도 없이 내 것을 시작하는 것이니 혼자라도 재밌게 작업해 보자!’는 마음으로 소녀사천왕을 그려갔어요.

🥕: 소녀사천왕의 세계관이 있는데 이것도 이미 다 설정된 것일까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너무 기대돼요!
✒️: 스토리가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난 전시회를 하며 큰 세계관을 정리했고, 이번 전시회 때 각 인물의 MBTI를 추가했어요.

인물을 처음 그릴 때도, 본래 사천왕들이 가진 특징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면 지국천왕은 대체로 얼굴에 감정이 많이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걸 살렸구요. 광목천왕은 넓은 눈으로 세상을 살핀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 눈을 강조하는 등, 이런 기본 설정 위에 현대성을 부여했죠. 서울은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도시잖아요? 그래서 광목천왕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줬구요. 증장천왕은 항상 들고 있는 붓 대신 꼬치를 들게 하면 어떨까 해서 이번 전시에서는 탕후루를 들게 했어요.

‘ASURA CHAIN’, 2023, 전통 한지에 천연안료. ‘인타라망’, 2024, 전통 한지에 천연안료. ‘Indra CHAIN’ 2024, 전통 한지에 천연안료

🥕: 알고 보니 더 흥미로워요. 전시를 보며 ‘제석천’이라는 인물도 궁금했어요.
✒️: 제석천의 경우, 처음에 배경에만 슬쩍 녹이면서 드러냈기 때문에 다들 이 인물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어요. 제가 지속적으로 조금씩 노출하다 보니 ‘이 인물이 뭔가 있나?’ 하면서 주목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데뷔시켰어요.(웃음)

🥕: 제석천의 데뷔 외에도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부분을 더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 소녀사천왕은 만화처럼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거든요? 하지만 제가 스토리 순서대로 작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씬을 순차적으로 보여드리지 못해요. 그래서 개인전을 할 때마다 순차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서 관객분들이 나름의 세계관이 있다는 점을 느끼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그에 더해 다음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정도요.

‘홀로그램 부처님 오신 날’, 2020, 전통 한지에 천연안료.

🥕: 작가님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 옛날 회화 작품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작은 동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호랑이같이 큰 동물을 좋아했어요. 동양권에서 호랑이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잖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동양적인 부분인데, 이런 점이 흥미롭더라구요.

피겨 스케이팅 영상도 찾아보는데요. 피겨 경기를 보다 보면 곡선을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신체가 만들어내는 곡선을 보며 작품으로 살려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구요. 사극도 정말 좋아해요. 스토리가 재밌어서 인기 많은 사극도 좋지만, 풍경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사극을 선호해요. 기와를 타고 바람이 흐르는 것을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사극을 보며 그런 장면을 포착할 때 영감을 얻게 돼요.

🥕: 사극 내 풍경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저도 집중해서 보게 될 것 같아요. 작업하실 때 음악을 많이 들으시나요? 즐겨들으시는 케이팝 추천 부탁드려요!
✒️: 어릴 때는 케이팝을 들으며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제는 작업할 땐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아요. 하지만 운전할 땐 케이팝만 한 것이 없더라구요.

<해야> 작업하면서 <해야>를 많이 들었어요. <아센디오>도 즐겨 듣고요. 보아의 <Amazing Kiss>와 EXO의 노래를 한창 들었어요. EXO- M의 음원도 찾아 들을 정도였죠. 마감이 다가오면 <Monster>,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NCT127 <NonStop> 등 켄지님이 만드신 노래를 꼭 들었던 기억도 있네요.

신화의 4집과 5집도 즐겨 들었는데, 이 노래들은 약간 옛 산수화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더 마음이 가더라구요. 이렇게 보니 어릴 때부터 케이팝 조기 교육을 잘 받아왔네요. (웃음)

🥕: 공감되는 플레이리스트예요.(웃음) 앞으로 어떤 작품 활동이 예정되어 있으신가요, 그리고 작품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으신 방향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작년 가을부터 전시를 비롯한 활동을 바쁘게 해왔기 때문에 확실한 계획은 아직 없는데요.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이렇게 발행을 자주 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또 언제 어떤 사건이 생길지 모르죠.

앞으로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각형 작품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지금 작품들은 사각형 판넬이 아니라서 전시 준비를 할 때 굉장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거든요. 그림을 통째로 벽에 붙이기도 했었고, 이 주변에 마스킹테이프처럼 붙여 놓은 것이 사실 한지예요. 한지는 습도와 온도에 따라 잘 떼어지기도 하고 흐트러지기도 해서 자주 재정비해 줘야 하거든요. 원화 자체에 집중하려면 사각형 화명 포맷을 다시 잘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족자의 행방’, 2020, 한지에 수묵. ‘제석천의 지령: 아수라를 찾아라’, 2020, 한지에 수묵. ‘스쳐간 인연’, 2020, 한지에 수묵.

🥕: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지 여쭤보며 인터뷰를 마무리해 볼게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고민은 계속하고 있고, 이런 고민을 내 방식대로, 내가 스스로 납득 가능하게, 내 안에 있는 부분들을 잘 붙여서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이 작가는 무엇을 만드는지 스스로가 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한국화 강의를 들은 느낌이에요.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하겠습니다!

박지은 작가님의 인터뷰 어땠어? 미술과 거리가 먼 나는 전공자의 시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 정~말 즐거운 인터뷰였어. 구독자도 흥미롭게 읽어주길 바라며, 앞으로 케이팝과 관련된 넓은 분야의 인터뷰도 열심히 기획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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