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쓴 에이스 [세상읽기]
[세상읽기]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가을, 겨울에는 프로배구를 본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왠지 가을마다 경기를 하지 않기도 해서 올해도 설레는 마음으로 시즌이 시작되는 10월을 기다렸다. 이번 시즌 한국의 브이(V)리그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팀별 한명씩 허용되던 외국인 선수 이외에 아시아 국가 출신 선수 한명을 더 등록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가 시행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한국 무대에 서게 된 선수 가운데에서 여자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메가(메가왓티 퍼티위)가 특히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출신인 메가는 무슬림이다. 한국 스포츠 팬들은 검은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 운동선수라는 낯선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 외국인, 여성, 낯선 종교에 대한 혐오가 이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향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나는 배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메가의 복장과 종교는 관심 대상이었다. 히잡을 쓰면 제대로 뛸 수 있겠느냐, 경기 중에 벗겨질까 봐 몸을 사릴까 걱정이다, 심지어 경기 중에 머리카락이 드러나면 본국에서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는 거짓 정보까지도 떠돌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럴 때마다 그런 소문들을 교정하려고 시도하는 이용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슬림 선수들이 사용하는 히잡은 얼굴 등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특수 제작된 스포츠용이며, 인도네시아에서는 법으로 히잡을 쓰도록 강제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인구가 절대다수지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그리스도인 수는 2910만명이 넘어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데, 이는 단순히 교인 수로 비교하면 한국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그 밖에도 발리에서는 힌두교가 우세하며,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상당수는 불교와 유교에 속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유교가 법적으로 공인된 교단 형태의 종교로 존재하는 드문 나라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류 종교인 이슬람의 실천 양식도 대단히 다양하다. 전통적인 형태의 종교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현대 사회에 잘 적응된 유연한 신앙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 전통인 수피즘이 번성한 한편, 민간신앙과 결합한 ‘민속적’인 이슬람이 실천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예외적으로 수마트라의 아체 특별자치구는 샤리아 율법을 원리주의적으로 적용하여 세속법보다 우선시한다. 이곳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으면 처벌하는 등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자바 출신인 메가와는 별 관련이 없다.
메가는 단기간에 팀 에이스로 자리잡고 1라운드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기대 이상의 대활약을 하였다. 주목도가 높아지자 히잡 말고 다른 화제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그 막바지 라마단 기간이 되면 배고파서 못 뛰지 않겠느냐는 등의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강력한 반례가 있었다. 과거 남자부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였던 아프리카 말리 출신인 노우모리 케이타도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지적하자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한번은 메가가 경기 수훈선수로 선정되어 인터뷰하던 중 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때 통역자는 이슬람의 신 이름을 “알라신”으로 옮겼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알라신”을 부르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개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쯤 되면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버리고 개입할지를 고민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도 몇몇 이용자들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며 언어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올렸다.(실제로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의 한국어 번역으로 개신교와 같은 ‘하나님’을 채택하고 있다.)
나는 이 참여관찰을 통해 작지 않은 희망을 느꼈다. 낯선 소수 종교에 대한 편견은 분명 존재했지만 모종의 집단지성이 그것을 빠르게 교정해나갔다. 많은 경우 타자의 종교 문화에 대한 무지나 혐오는 접촉 기회의 부족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스포츠에서 일어난 인적 교류가 비록 부정적일지라도 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고,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익명의 대화가 부분적인 인식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방인들이 안전하게 방문하고 거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만나고, 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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