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가 아니라 생로먹방

이 영상을 보라. KBS 생로병사의 비밀 출연자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야식으로 피자나 치킨을 먹고, 탄산음료나 기름진 음식을 끼고 살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취지인데, 왜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걸까?

가식은 1도 없는, 진정성 넘치는 생로먹방’이라는 반응이 쏟아지는데 “생로병사의 비밀은 왜 먹방의 대명사가 됐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2024년 1월, KBS 생로병사의 비밀 유튜브에 영상이 하나 올라온다. 2018년 이미 방송됐던 야식편을 재편집한 영상인데,본격적인 생로먹방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영상은 기존 방송분에 편집을 재밌게 해서 다시 올린 거다. 출연자의 발언을 소스로 리믹스를 만들거나,

삼겹살 기름이 다른 육류에 비해 나쁜 건 아니라는 의사의 인터뷰에 ‘삼겹살은 죄가 없다’는 식의 재치있는 타임라인을 다는 식이다.이 영상들은 수백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생로병사의 비밀은 KBS가 2002년부터 방영한 역사와 전통의 프로그램이다. 신체 및 질병이 주요 소재인데, EBS의 ‘명의’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강 프로그램의 쌍두마차다. 이미 건강에 관심많은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굳이 왜 편집을 다시 한 걸까?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모든 컨텐츠 제작자는 자신의 영상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잖아요. 생로병사의 비밀이 기존 중장년층 이상으로더 넓게 타겟을 확장하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생로먹방 컨텐츠를 만들게 됐습니다.

결국 제작진의 새로운 시도로 생로병사의 비밀은 중장년층에 더해 저속노화나 건강에 관심 많은 젊은층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됐다는 평가다. 건강 정보를 원하는 사람뿐 아니라 먹방으로 대리만족하는 이들의 눈길까지 끌게 된 것.

뚜렷한 개성의 출연자들 덕도 컸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잠바도 벗지않고 삼겹살을 굽는 손승수씨나 짜파게티에 파김치를 맛있게 즐기던 심숙인씨, 짠 음식을 좋아해 직접 쌈장까지 만들어먹던 맵짜니형 등이 입소문을 탔다.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식습관의 출연자들이지만‘먹는 것에 진심이다’ ‘저게 우리 삶이다’ 하는 공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세분 모두 본방송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기를 끄신 분들입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이미 그자체로 훌륭한 컨텐츠였고, 그 중심에는 매력 넘치는 출연자들이 계셨던 거죠. 이분들의 공통적 특징이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고, 너그럽고 포용력이 좋아보인다고 할까요.

먹방이 아무리 떠도 생로병사는 명색이 건강프로다. 맛있게 음식을 즐기던 출연자들이 병원에 방문하고,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뒤 운동을 하거나 식단을 바꾸는 모습으로 마무리 된다. 먹방으로 대리만족도 하고, 건강 지식과 함께 나도 달라져야지 하는 의지도 다질 수 있는 거다.

취재하다가 알게된건데, 생로먹방 컨텐츠는 매일 오후 10시 땡 치면 올라왔다. 짜장면, 피자, 치킨, 삼겹살 먹방 장면이 담긴 영상이 야식이 땡기는 밤 시간에 올라온 거다. 굳이 왜 이 시간에 올린 걸까?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저녁 이후 시간에 유튜브 이용량이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청자분들도 그런 유혹은 견뎌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순수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건강을 경고하는 영상을 계속 보는 건데, 제작진 건강은 좀 좋아졌을까?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상당한 교양을 쌓았습니다. 다만 지행일치는 성인의 경지인지라, 평범한 저는 다양한 야식을 즐기며 죄책감만 쌓았습니다.

유튜브 커뮤니티로 왱구님들이 생로병사 제작진에 대한 질문을 남겨주셨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해 보이는 질문 몇개를 더 던져봤다. 우선 소주에 삼겹살 vs 맥주에 치킨.둘 중에 하나를 골라주신다면?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건강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오늘 저녁 메뉴 추천해 주신다면?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슴슴한 나물반찬이 땡기네요. 한번 드셔 보시든가요.

20년이 넘은 장수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 이렇게 오래 방송된 비결이 뭘까?

[박상욱 KBS PD (음성대역)]

결국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생로병사는 결국 사람의 생로병사고, 시청자들은 나와 가족, 주변인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방송을 보잖아요. 먹방은 생로병사의 비밀 컨텐츠의 극히 일부이니, 다양한 건강 의학정보를 다루는 생로병사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을 소재로 한 생로병사의 비밀. 먹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샀지만, 결국에는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프로그램 같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면서, 양질의 건강 정보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