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불과 100여 년 전까지 불치병이었다?

- 당뇨 치료의 핵심 인슐린, 20세기 초 들어서야 발견되다
- 발견자 프레드릭 벤팅, “인슐린은 전 세계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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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insulin)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인슐린이 발견된 것은 이제 100년을 조금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920년이 넘어서야 실험이 시작됐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치료 성공 사례는 1922년이었다. 즉, 실제로 ‘인슐린’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제 겨우 100년을 조금 넘은 셈이다. 이후 1923년 10월,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레드릭 벤팅과 존 맥클라우드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슐린이 발견됨으로 인해, 치명적인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당뇨의 정복이 시작됐다. 아울러, 인슐린은 당뇨 치료를 위한 역할 외에도 지방 대사 조절, 단백질 합성 촉진 등 다양한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상 체내 대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호르몬으로 꼽힌다.

이토록 중요한 기능을 하는 인슐린은 과연 어떻게 발견된 것일까? 연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이자 미생물학자인 김응빈 교수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 ‘응 생물학’을 통해 인슐린 발견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김응빈 교수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전한다.

췌장의 새로운 역할 발견

인슐린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가장 먼저 인슐린 분비를 담당하는 췌장의 ‘베타 세포’ 이야기부터 해야한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인 18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파울 랑게르한스’라는 이름의 의대생이 ‘췌장’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췌장의 조직 구조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조직 한쪽에서 소화 효소를 분비하지 않는 세포들이 ‘섬처럼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시 파울 랑게르한스는 이를 가리켜 ‘췌장 섬’이라 불렀다.

이전까지 췌장은 주로 소화를 돕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분비 기능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때 파울 랑게르한스에 의해 소화 효소를 분비하지 않는 세포들의 집합(췌장 섬)이 발견되면서, 췌장이 소화 외에 내분비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이후 췌장 섬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랑게르한스 섬(Langerhans islets)’이라 이름 붙여졌다.

출처 :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 생물학'

당뇨, 20세기 초반까지 불치병

지금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 정도로 여겨지고 있지만, 당뇨는 본래 치명적인 불치병이었다. 세포가 포도당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므로 체내 축적된 지방과 단백질을 분해하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며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고 야위어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혈당이 높은 상태에서 포도당이 체내 분해를 거듭하며 산화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이로 인해 장기와 조직이 손상되거나 퇴행을 겪는다. 같은 원리로 혈관계, 신경계 등의 손상을 겪으며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20세기 초반, 그러니까 1900년대에 들어설 때까지 당뇨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다. 선천적으로 혈당 조절이 전혀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떨어지는 제1형 당뇨, 후천적으로 혈당 조절 능력이 약화되는 제2형 당뇨 모두 마찬가지였다.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당뇨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추측일 뿐,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당뇨에 걸리면 몸 곳곳에 손상이 발생하며 합병증을 유발하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인슐린의 발견과 임상시험

1920년의 어느 날, 캐나다의 의사 프레드릭 벤팅은 토론토 대학의 생리학 교수인 존 맥클라우드를 찾아갔다. 벤팅은 맥클라우드의 실험실에서 의대생이었던 찰스 베스트와 함께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벤팅은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당뇨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개의 췌장관을 며칠 동안 묶음으로써, 췌장의 외분비 기능을 억제하고 내분비 기능을 연구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췌장 내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물질을 추출한 다음, 이 물질을 당뇨에 걸린 개에게 주사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그 결과, 개의 혈당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벤팅과 베스트는 이 물질의 이름을 ‘인슐린’이라 지었다. 섬이라는 뜻의 라틴어 ‘insula’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1922년 또 한 번의 실험이 진행됐고, 그 결과는 임상의학 학술지에 발표됐다.

이후 벤팅과 베스트는 생화학자인 제임스 콜립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인슐린을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콜립은 인슐린을 일정한 농도로 정제해, 혈당 조절에 효과적인 형태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덕분에 인슐린을 임상시험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인슐린의 생리적 작용 및 그 효과에 대한 연구에 참여해 당뇨 치료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 생물학'

불치병이었던 당뇨, 정복 가능성 열리다

정제된 인슐린은 같은 해 14세의 당뇨 환자 레오나르도 톰슨에게 주사됐다. 당시 톰슨은 당뇨가 상당히 진행되어, 지방과 근육 조직이 거의 다 분해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정도로 매우 중증이었다.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부모는 인슐린 치료에 동의했다. 인슐린 발견 후 치료 목적으로 시행된 최초의 사례였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톰슨의 부모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료에 동의했다.

인슐린 주사의 효과를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톰슨은 인슐린을 주사받은 뒤 하루가 지나고 혈당이 정상 수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922년 1월,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당뇨의 치료 가능성이 입증되던 순간이다.

“인슐린은 전 세계의 것입니다”

1923년 1월, 프레드릭 벤팅과 찰스 베스트, 제임스 콜립은 인슐린 제조법에 관해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 발견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기를 원했고, 이에 토론토 대학에 1달러만 받고 넘기기로 한다.

이때 벤팅은 “인슐린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것입니다.(Insulin does not belong to me, it belongs to the world.)”라는 말을 남겨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현재 캐나다 100달러 지폐의 뒷면에 초기 인슐린 병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1923년 10월, 벤팅은 처음 실험실을 제공해주었던 존 맥클라우드를 찾아가 인슐린 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이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벤팅은 실제 연구를 같이 했던 베스트와 콜립이 함께 수상자로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함으로써 다시 한 번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결국 벤팅 자신의 상금은 베스트와 나누고, 맥클라우드의 상금은 콜립과 나눔으로써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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