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감독’이 진작 느꼈던 그 감독이 될 상… ‘초보 감독’ 이범호는 마지막까지 웃을까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이범호 KIA 감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입단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프로 현역 생활을 했다. 웬만한 역대급 선수들보다도 훨씬 더 긴 기간이다. 그 가운데 여러 감독들을 만났고, 지금도 그 감독들의 장점을 잘 버무려 선수들을 지도하려고 노력한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다면 역시 김기태 전 KIA 감독일지 모른다. 김 전 감독과 이 감독의 스타일에서 비슷한 향기가 있다. 김 전 감독은 대표적인 ‘형님 리더십’이었다.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고, 끌고 가는 카리스마의 지도자였다. 그래서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경기 운영이 경직된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리더십으로 2017년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전·현직 KIA 선수들은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았다고 인정한다.
올해 갑작스럽게 KIA 감독직에 오른 이 감독도 그런 리더십을 기본에 깔고 있다. 데이터도 많이 보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등 젊은 패기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선수들과 잘 융화되는 유형의 감독이다. 이 감독은 “김기태 감독 있을 때 최상의 멤버였다고 생각하고 내가 추구하는 야구관도 김기태 감독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를 위한 야구를 예전부터 말씀해왔던 것이기도 하고, 나도 그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비슷하게 받아들이면서 왔던 것 같다”고 인정한다.
이 감독은 김 전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감독과 선수로서 호흡을 맞췄고, 김 전 감독도 당시 베테랑으로 팀 내 리더 중 하나였던 이 감독의 리더십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김 전 감독은 “차기 감독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때 당시부터 그랬다”고 당시를 회상하면서 “선수들을 다독거려주고 팀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했다. 몸도 많이 안 좋았지만 웬만하면 해줬다. 젊은 친구들이 그걸 보고 배웠기 때문에 같이 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이 감독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고집이 너무 세다는 평가도 받았다. 한 번 세운 지론과 소신이 있으면 그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야구가 안 될 때는 김 전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경직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직에서 롯데에 대추격을 허용했을 때, 광주에서 두산에 한 경기 30점을 내줬을 때는 허탈한 표정이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감독도 결과로 말하는 자리다. 이 감독은 부임 첫 해 정규시즌 우승을 해냈다.
KIA의 전력이 시즌 전부터 우승권 레이스의 다크호스로 뽑힐 정도로 좋기는 했다. 오랜 기간 좋은 전력들을 잘 모아뒀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즌 운영이 편했던 게 아니다. 숱한 부상자들로 고전했다. 특히 장기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했던 선발진은 부상자에 말 그대로 초토화 직전까지 갔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적시에 대체 자원들을 잘 투입했고, 부진했던 선수들은 이 감독의 믿음 속에 살아나며 정규시즌 우승에 각자 나름의 힘을 보탰다. 정신 없이 시즌이 지나갔지만 이 감독은 끝까지 1위를 지켰다. 나름대로 세웠던 계산은 적중했다. 초보 감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였다.
하지만 아직 가장 큰 무대가 남아있다. 한국시리즈다. 정규시즌 우승 자체만으로도 큰 업적이라 인정받아야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의 비중이 크다. 정규시즌 1위를 했던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질 경우 ‘업셋’의 오명만 뒤집어쓴다. 하필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팀이다. 지금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시리즈가 다가올수록 구단에는 큰 압박감이 쏟아질 것이다. 그 가장 전면에 이 감독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144경기 성과는 팀 전력이 좌우한다. 한 경기 실수해도 그 다음 2~3경기를 이기면 된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는 다르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위, 그리고 충분한 휴식 속에서 시리즈를 진행할 수 있어 유리한 점은 있지만 역대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 팀들이 제각기 피 말리는 시기가 있었다. 감독이 하는 한 번의 결정이 패착으로 다가오면, 단기전에서는 만회할 시간이 별로 없다. 성적으로 모든 비난을 잠재운 이범호 감독이 끝까지 자신의 스타일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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