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봄, 단 열흘만 맛볼 수 있는 보물
울릉도의 봄은 잠시도 느긋할 틈이 없다. 짧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주민들은 새벽부터 산을 오른다. 향긋한 바람이 지나간다. 땅이 살아 움직인다. 울릉도 전역이 푸른 봄나물로 물든다. 그 중심엔 명이나물과 눈개승마가 있다.
“수확 기간은 단 2주”…울릉도 사람들이 새벽부터 산에 오르는 이유
명이나물은 ‘산마늘’이라는 이름보다 더 생생한 사연을 품고 있다. 과거 춘궁기, 먹을 것이 바닥났을 때 사람들의 생명을 이어줬다. 그래서 ‘명이나물’이라 불렸다. 향은 강렬하다. 맛은 은은하다. 생으로 먹으면 매콤하고, 장아찌로 담그면 사계절 내내 곁들일 수 있다. 김치, 쌈, 생채로도 쓰인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확 기간이 단 2주. 이 시간을 놓치면 명이나물은 노랗게 변하며 억세지고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3월 중순이면 울릉도 주민 모두가 밭으로 향한다. 하루 1~1.5톤씩 따낸다.
문제는 지형. 울릉도에 평지는 거의 없다. 밭은 해발 400m 고지에 있다. 산 중턱에 바짝 붙은 좁은 경사면. 무게 50kg 포대를 등에 지고 오르내리는 건 거의 고행이다. 그래서 모노레일이 없으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명이나물밭에서 독도가 보인다. 일하는 손길이 멈춘다. 수확의 땀이 푸른 바다 위로 식는다.
“두릅인 줄 알고 먹었다가 놀랐다”…소고기 맛 난다는 그 나물의 정체
또 다른 봄의 주인공, 눈개승마도 모습을 드러낸다. 눈을 뚫고 올라오는 첫 산나물이다. 뿌리째 얼음을 밀어내고 고개를 든다. 이름은 복잡하다. ‘눈’은 ‘누운’의 줄임말. ‘개’는 흔하거나 못한 것을 뜻하는 접두어. ‘승마’는 약재 이름이다. 이름값은 못하지만 정작 식감과 맛은 고기를 닮았다. 그래서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린다.
울릉도뿐만 아니라 강원도, 충남에서도 자란다. 다만 울릉도에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올라오는 나물이다. 장미과 다년생 초본식물로 병충해에 강하다. 음지와 낙엽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지금은 관상용보다 식용, 약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등장한다. 독을 풀고, 입안 헌 데와 인후통을 없애준다. 영양성분도 다양하다. 단백질, 당질, 식이섬유, 비타민 A, U, 칼슘, 사포닌, 살리실알데히드까지 들어 있다. 콜레스테롤 흡수를 막고 혈관을 맑게 해준다. 혈류 흐름도 원활하게 만든다. 면역력도 끌어올린다. 항암효과도 있다.
이 나물의 진짜 매력은 식감이다. 두릅과 비슷하지만 더 단단하고 고기처럼 쫄깃하다. 그래서 고기 좋아하는 사람도 눈개승마 앞에선 젓가락이 간다. 생으로 쌈을 싸 먹거나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무침, 전, 튀김, 비빔밥, 장아찌, 된장국까지 활용법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채취 기간이 너무 짧다. 4월 10일 전후로 열흘 남짓. 그 이후엔 생채로 먹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삶아 말린다. 묵나물로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요리한다. 물에 불리고 삶은 후 국간장, 멸치육수, 다진 마늘, 파, 참기름, 매실엑기스에 조물조물 무친다. 들깨가루를 더하면 고소한 풍미가 살아난다. 냉동보관도 가능하다.
과거 명절이나 잔칫날엔 눈개승마로 육개장을 끓였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이 나물이 고기였다. 1996년 내한공연 온 마이클 잭슨도 눈개승마 비빔밥을 먹고 반했다. 3일 내내 찾았다고 전해진다.
울릉도의 봄은 짧다. 명이나물과 눈개승마도 그렇다. 단 열흘뿐인 찬란한 순간. 그 안에 사람들의 손, 땀, 삶이 들어 있다. 누군가에겐 생계.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단순한 반찬일지 모르지만, 그 짧은 봄의 식탁은 묵직하다.
눈개승마 비빔밥 레시피
■ 요리 재료 (1인분 기준)
눈개승마 묵나물 80g, 밥 200g, 계란 1개, 애호박 30g, 당근 20g, 표고버섯 20g, 고사리 30g, 참기름 2작은술, 식용유 약간, 소금 약간, 통깨 약간
양념장: 고추장 30g, 매실청 5g, 참기름 3g, 다진 마늘 5g
■ 만드는 법
1. 눈개승마 묵나물은 미지근한 물에 1~2시간 불린다. 깨끗이 헹군 뒤 끓는 물에 5분간 데친다.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서 4~5cm 길이로 썬다.
2. 팬에 참기름 1작은술을 두르고 눈개승마, 고사리, 표고버섯을 각각 따로 소금 약간 넣고 중불에서 1~2분씩 볶는다.
3. 애호박과 당근은 채 썬다. 식용유 약간 두른 팬에 소금 약간 넣고 각각 30초간 볶는다.
4. 계란은 반숙으로 부친다. 계란 반숙은 팬에 식용유 약간을 두르고 중약불에서 노른자가 살짝 덜 익을 정도로 2분 30초 정도 부친다. 흰자는 익고 노른자는 흐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몽글하게 익히는 것이 적당하다. 뚜껑은 덮지 않는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뒤집지 않고 한 면만 익히면 된다.
5. 고추장, 매실청, 참기름, 다진 마늘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6. 그릇에 밥을 담고 볶은 나물과 채소를 올린다. 계란 프라이를 얹고 통깨를 뿌린다. 양념장은 기호에 맞게 곁들여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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