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성문, 김하성의 부상 소식
그야말로 난데없다. 송성문이 아프다. 또 김하성도 다쳤다. 의욕적인 출발선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새로운 계약을 맺은 뒤에 생긴 낭패다.
당장 WBC는 물 건너갔다. 시즌 개막에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 암울한 전망만 가득하다.
물론 다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운의 소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이탈은 불가피하다. 결과와 평판에 대한 책임은 본인 몫이다.
다치지 않는 것, 아프지 않는 것. 그것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이런 소식에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스즈키 이치로(52)다. 무려 28년이나 뛰었다. 그 오랜 기간 어떻게 버텼을까. 어떻게 건강을 유지했을까.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유니폼의 보푸라기도 모두 없애야
철학자 칸트가 그랬다. 늘 칼이 정확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산책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시간을 안다. “아, 지금이 오후 3시 30분이구나.”
이치로가 그렇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 자신과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은퇴 후에 한 말이다. 그 약속이란 ‘훈련’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다.
일단 출근 시간이 칼 같다. 홈구장 관리인은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춘다. “이치로 씨가 왔으니, 오후 1시 30분이겠군.” 경기 개시 5시간 전이다. 다른 선수들보다 1~2시간은 일찍 나온 셈이다.
일정한 루틴이 있다.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돌아간다.
① 라커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발마사지 기계를 켠다.
② 다음은 진동 폼 롤러(vibrating foam roller)다. 허벅지 뒤쪽(햄스트링)을 풀어준다.
③ 비로소 복장을 챙긴다. 우선 스파이크다. 말끔하게 닦아낸다. 어떤 때는 쇠 브러시도 쓴다. 징에 박힌 흙까지 깨끗이 털어낸다.
④ 유니폼을 꺼낸다. 작은 휴대용 가위로 도드라진 실밥 하나까지 모두 제거한다.
⑤ 정리가 끝나면 흐트러진 라커 앞을 깨끗이 청소한다.
⑥ 드디어 그라운드로 나간다. 막 출근한 동료들과 스트레칭을 한다.
⑦ 다들 끝내고 이동한다. 그래도 혼자 남아 15~20분간 몸을 더 푼다. ‘파워보다는 유연성’이라는 신념이 엿보인다.
⑧ 이제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배트를 꺼낸다. 휴미더라는 장치에 보관한 것이다. 본래 시가 담배 보관용이다. 습도를 제어하는 기능 때문이다.

출근길 차선과 속도도 일정하게
까탈스럽다. 복잡하고, 철저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출근 전에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이미 루틴은 시작된다.
기상과 함께 운동실로 간다. 마치 고급 헬스장 같은 분위기다. 온갖 첨단 기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딱 봐도 비싼 장비들이다. 그걸로 한바탕 땀을 빼야 직성이 풀린다.
시즌 때만이 아니다. 겨울에는 일본에 간다. 그럼 머물 호텔에 이렇게 요구한다. “창고라도 좋다. 공간을 하나 마련해 달라. 이 기구들을 옮겨 놓고 매일 운동해야 한다.”
일찍이 양키스 동료가 보증했다. SS 사바시아의 얘기다. “이치로가 쉬는 날은 1년에 딱 이틀이다. 시즌이 끝난 날, 그리고 크리스마스뿐이다.”
아침 운동을 마쳤다. 출근 전에 간단히 식사한다. 한때 “7년간 카레만 먹었다”라는 전설도 있었다. 약간의 과장이 있었다. 훗날 본인이 시인했다. 거의 일정했다는 의미였다.
음식이 바뀌는 것도 변수다. 컨디션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 그런 걱정 탓이다. 그게 한동안은 카레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주먹밥이나 국수였다.
페퍼로니 피자도 있다. 원정 때 메뉴다. 미국 어디서나 비교적 일정하다. 비슷한 맛과 영양을 준다는 이유였다.
출근은 본인이 직접 운전한다. 집에서 세이프코필드(당시 홈구장)까지 약 30분 거리다. 늘 같은 길로 간다. 다른 경로로 가지 않는다. 심지어 속도와 차선도 정해졌다. 변수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몸을 배트 무게에 맞춰야 한다
운동 외에 일상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금기 사항을 정해 놨다. 이런 것들이다.
① TV는 가급적 안 본다. 필요할 때는 선글라스를 쓴다. 시력 보호를 위해서다.
② 푹신한 소파는 사절이다. 허리에 부담을 줄지 모른다. 라커룸에도 딱딱한 철제 의자를 놨다.
③ 스파이크를 신으면 계단도 피한다. 장애인용 슬로프를 이용한다.
④ 원정 때는 베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숙면과 함께 목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뜻이다.
⑤ 평생 일정한 배트를 썼다. 무게나 사이즈를 바꾸지 않았다. 상상도 어려운 일이다. 계절(여름), 타격감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내 몸과 컨디션을 배트에 맞춰야 한다.” 그런 지론이다.
우리는 흔히 준비라고 부른다. 경기 전에 몸을 풀고,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하나가 더 있다. 그 몸풀기와 훈련을 위해서도 또 다른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그걸 ‘준비의 준비’라고 부른다. 모든 일상이 온통 하나로 집약된다.
거칠게 말하면 강박이다. 병적인 집착이다. 그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다. 주변에서도 좋은 말만 하지는 않는다. ‘너무한다’, ‘사람답지 않다’ 같은 얘기들이다.
그럴 때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내가 지금 얼마를 받고 있는지 생각한다. 그 연봉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그리고 내 플레이를 보는 팬들의 눈길을 생각한다.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WBC 한국전 패배의 후유증
그도 쓰러진 적이 있다. 2009년 봄이었다. 개막을 앞둔 시범경기 때다.
늘 하던 대로 우익수로 출전했다. 그런데 조금 수상하다. 걸음걸이가 약간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트레이너 “어디가 안 좋아?”
이치로 “경기 전부터 약간 어지러웠는데, 계속 그러네.”
일단 경기에서 빠졌다.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가 심상치 않다. 출혈성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나이가 36세였다.
의사가 정색한다. “이거 간단한 병이 아니다. 잘못하면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사망률 10%가 넘는 질환이다. 당분간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
팀도 방침을 정했다. 일단 부상자 명단(당시 명칭은 DLㆍDisabled List)에 올리기로 했다. 15일짜리로 소급해서 적용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본인은 펄쩍 뛴다. “무슨 소리냐. 그런 위험은 내가 감당한다. DL은 절대 안 된다. 곧 괜찮아질 거다.”
감독이 설득에 실패한다. 단장과 사장까지 나서야 했다. 사정사정 끝에 고집을 꺾었다. 15일짜리 딱 한 번으로 끝낸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 병을 얻은 이유가 있다. 직전에 열린 WBC 때문이다. 우승은 일본이 했다. 하지만 한국에게 너무나 애를 많이 먹었다. 두 번이나 패했다. 천신만고 끝에 트로피를 안았다,
그 과정에 그를 향한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준결승까지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38타수 8안타, 타율이 0.211에 그쳤다. 한 일본 매체는 그를 ‘전범’이라고 불렀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훈련까지 준비해야 직성 풀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부상 경력’이다. 일본에서 9년, 미국에서 19년을 뛰었다. 합하면 28년이다.
올스타, 골드글러브, MVP, 타격왕, 안타제조기…. 수식했던 단어들은 많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건강이고, 꾸준함, 성실함이다. 경기는 당연하다. 훈련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는 철저함이다.
40세까지 매년 150경기를 넘겼다. 딱 한 번 못 채웠다. 15일짜리 DL에 올랐던 2009년이다. 사실 그 시즌에서도 146게임을 뛰었다.
전경기(162) 개근이 3번이나 된다. 161게임도 3번이다. 나머지도 157~159번은 출장했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뒤에 한 말이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여기는 점은 남겨진 기록 때문이 아니다. 그냥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 위해서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서할 수 없었다. 늘 팬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