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터...언제까지 옥수수밭으로 방치?

이범구 2025. 8. 1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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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에도 항일 무장투쟁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광복 80주년 기념 국가보훈부의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에 신흥강습소는 빠져 있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도 뚜렷한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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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 등 빛나는 전과...국군의 토대
2조 기부한 이회영 6형제는 현지서 굶어 죽어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해... 후손으로서 부끄럽다"
중국 지린성 추가가 마을에 있었던 신흥강습소는 정확한 위치조차 찾기 힘들다. 교사가 있었던 자리인 대고산 자락이 멀리 보인다.

광복 80주년에도 항일 무장투쟁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 표지판도, 심지어 근처로 이어지는 길도 없었다. 지난달 16일 중국 지린성 삼원보 추가가 마을.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시골길을 30여 분 달리고, 현지 가이드도 몇 번 길을 헷갈린 끝에 도착한 이곳은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양돈농가 냄새가 물씬 나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차에서 내려 진창길을 50여m 더 걸어가 마을 끝에서 마주친 것은 광활한 옥수수밭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대고산 아래 있었을 신흥무관학교 학사는 초목으로 덮였고, 애국 청년들이 독립의 열망을 품고 훈련을 했을 교정은 마을주민들이 수매하거나 돼지사료로 쓰기 위해 키우는 옥수수밭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길이 없어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반인이 이곳을 찾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신흥강습소 교사와 훈련장 추정도. KBS 역사스페셜 제공

신민회의 이회영, 이동녕 등이 무장독립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에 신흥강습소를 설립한 때는 114년 전인 1911년 6월. 당시 우당 이회영 선생 6형제가 서울 명동과 남양주 땅을 급히 처분해 마련한 돈 40만 원(제값을 받았다면 현재 공시지가로 2조 원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으로 이곳에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일제의 감시와 현지인의 반대로 무관학교가 아닌 강습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청산리 전투 등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향후 대한민국 국군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청천, 이범석 등 교관의 지도 아래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독립운동가만 김원봉 등 최대 3,500여 명에 달한다. 안타깝지만 이회영 6형제 중 이시영만 환국해 초대 부통령을 지냈고, 이회영은 뤼순감옥에서 옥사, 나머지 4형제는 굶고 병들어 현지에서 비참하게 순국했다.

이곳을 찾은 대학생 A씨는 "신흥무관학교는 독립운동사에서 그 어떤 곳에 뒤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소인데 조그만 팻말조차 없다는 게 놀랍고 부끄러웠다"면서 "그나마 이곳을 기억하고 찾아내 다행이라는 생각이지만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굴이 늦어져 영원히 유실된 것처럼 더 늦기 전에 표지판이라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회 관계자도 "신흥무관학교가 옥수수밭으로 변해 흔적도 없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힘을 모아 기념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정은 녹록지 않다. 광복 80주년 기념 국가보훈부의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에 신흥강습소는 빠져 있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도 뚜렷한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 때 시안 광복군2지대 표지석이 설치됐던 것처럼 국가 차원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방학진 기획실장은 "중국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장제쓰와 함께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대장정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면서 "중국 특성상 정부가 나서 상호외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지난해 추가가 방문 때 중국 공안에 여권을 압수당했는데 최근 모 대학 방문 때는 공안이 참관만 했다고 하니 이재명 정권 들어 기류 변화일 수 있다"면서 "기념사업회도 조만간 대장정 답사를 통해 항일운동에 한중이 협력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의 토대를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은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내어,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떴다(교가 3절 일부)'고 매일 노래했다.

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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