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가 살린 차" 티코에 도전했던 현대 최초의 경차 이야기

1995년, 경차 혜택이 신설되면서 티코가 독점하던 국내 경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현대차 최초의 경차, 국내에서 구긴 체면을 힌두교 신자들이 펴 주면서 현대차의 인도 진출에 지대한 공을 세운 현대 '아토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토스가 등장했던 1997년은 대우 국민차인 '티코'가 국내 경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같은 회사의 '다마스'와 '라보', '아시아 타우너'가 있기는 했지만, 이것들은 다목적 '경상용차'로 분류되는 차들이고, 지금도 다마스와 스파크를 놓고 고민하는 분들은 없죠.

아무튼 티코로 시작된 초기 경차 시장은 생각만큼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자동차를 사회적 계급의 표상처럼 여기는 문화가 그때 역시 심했고, 차 있는 집보다 없는 집이 많았을 때였음에도 겉보기에 부실해 보이고 비좁은 경차는 애초에 고려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후 매년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1995년에 정부가 경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경차에 특별 혜택을 제공하기로 결정하면서 티코의 판매량이 크게 오르게 됩니다. 한 가구에 두 대 이상 차량을 보유한 경우, 높은 세금을 매기는 중과세 정책에서 경차를 제외시키는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해 유지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죠.

덕분에 메인카보다는 세컨드카 등으로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고, 저렴한 이동 수단이 필요했던 학습지, 가전제품 점검 등 방문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크게 환영받으면서 이때의 수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티코가 서서히 시장에서 수명을 다해 가고, 비좁은 차체와 형편없는 편의장비, 티코 시리즈 등 우스갯거리로 전락해버린 이미지 덕분에 서서히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어요. 이때 현대차가 새로운 스타일의 경차 '아토스'를 내놓습니다.

아토스의 등장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대국민 공모로 지어진 차명인 '아토스'는 'A to Z', '알파벳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다 담았다는 뜻의 관용어에서 따왔어요. 실제로 알파벳 송으로 TV 광고를 만들어서 내기도 했고요. 이 이름 때문에 '아토즈'로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죠.

일단 외관부터 남달랐는데, 경차 선진국 일본의 여러 모델을 참고해 '톨보이' 스타일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작은 차체 안에서 실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지금의 기아 레이 같은 박스카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의 경차 규격에 딱 맞춰 만든 차체는 티코보다 모든 면에서 넉넉한 크기였습니다. 여기에 신선한 스타일, 동그랗고 귀여운 눈망울로 특히 여성 고객들로부터 주목받았죠. 어릴 때 빨간 아토스만 보면 이상하게 케첩 병이 떠오르곤 했어요.

다만 이 디자인이 호불호가 갈리면서 발목을 잡기도 했는데, 나름 잘 다듬어서 일본 모델보다는 극단적이지 않았음에도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톨보이 형태가 익숙하지 않았고 작은 바퀴에 껑충한 자체로 무게중심이 높아 보여 불안정한 느낌을 줬습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요.

이후 2년 뒤 아토스의 전고를 낮춘 모델, 기아 '비스토'가 훨씬 안정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판매량이 그쪽으로 넘어가기도 했죠.

다만 이 단점은 실내에서 고스란히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탁 트인 시야로 시원한 개방감, 높은 헤드룸을 확보하면서 경차지만 쾌적한 거주성을 제공했습니다. 레이를 타본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아실 거예요.

여기에 티코와 비교하면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된 실내 디자인, 4 스피커 오디오 및 CD 플레이어 등 티코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편의 장비를 탑재했습니다. 특히 공간 활용성만큼은 티코와 나중에 등장한 경쟁차 '마티즈'를 압도할 정도였죠. 운전석과 조수석 시트 하단에 서랍형 수납공간을 제공하는 등 깨알 같은 기능도 돋보였습니다. 적재 능력은 지금 세대 경차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죠.

여기에 우물 '정'자 프레임과 운전석 에어백을 적용해 티코로부터 비롯된 경차 안전성 논란에 대응한 것도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당시 경차 규격에 맞춘 4기통 800cc 가솔린과 LPG, 나중에 추가된 가솔린 터보 세 가지와 5단 수동 및 3단 자동변속기, 후기형은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렸습니다. 시내 주행과 일상 영역에서는 쾌적한 성능을 제공했죠.

다만 높은 전고로 경쟁 차에 비해 수십kg이나 무거웠고, 이는 공기 저항에도 불리했죠. 속력을 좀 더 높이려고 하면 가속이 굼떴고, 이로 인해 액셀을 더 깊게 밟게 되면서 연비도 나빠졌습니다. 현재 레이가 모닝과 비교해 불리한 점들을 선대 아토스 역시 고스란히 겪었던 것이죠.

또 특이하게도 클러치가 필요 없는 반자동 '세미 오토 변속기'를 옵션으로 제공했는데, 전자 제어 장치의 완성도가 조악해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급발진에 가까운 사례들이 속출해 뉴스까지 타는 곤욕을 치렀죠. 결국 공개적으로 리콜 후 수동변속기로 다운그레이드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해 가뜩이나 좋지 않던 판매량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한편 경차임에도 4기통 엔진을 탑재한 점을 내세워 경쟁 차인 티코와 마티즈가 3기통 엔진을 탑재한 것을 은근히 돌려 까는 비교 광고를 내기도 했어요. 아반떼와 누비라도 이때쯤이었는데, 담당자들끼리 사이가 안 좋았나 봐요.

당연히 가만히 있을 대우가 아니었죠. 아토스는 저속 토크에 취약한 엔진 특성으로 언덕을 올라갈 때 크게 힘이 모자랐고, 이를 노린 대우차가 마티즈로 대관령을 오르는 퍼포먼스를 대대적으로 선보여 반격했습니다. 현대차도 이에 지지 않고 동호회를 섭외해 아토스로 대관령을 넘으면서 얼떨결에 두 차량 모두 힘이 증명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한참 뒤에는 후속 차종인 '마티즈 크리에이티브'가 반대로 4기통, 모닝이 3기통 엔진을 쓰더니 지금은 사이좋게 두 회사 모두 3기통 1.0L 엔진을 쓰고 있죠.

2000년 말에는 연식 변경을 통해 자잘한 장식을 추가하고 상품성을 높인 2001년형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여기에 출력에 대한 지적을 만회하고자 경차 최초로 터보를 장착한 모델을 함께 내놨는데 다행히 출력만큼은 확실히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연비가 떨어져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참고로 터보가 장착된 모델은 보닛에 공기 흡입구가 뚫려 있어서 길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죠.

아토스는 1997년 9월 출시 당시, 1만 4천 대가 넘는, 지금 기준으로도 높은 사전 계약을 달성했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오히려 저렴한 유지비와 경제성을 앞세운 경차의 가치를 다시금 돋보이게 했고, 저렴한 이동 수단을 찾는 소비자가 훨씬 많아지면서 경차를 패밀리카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졌죠.

출시 첫 해, 매달 5천 대 넘게 팔려나가면서 본격적인 경차 시장의 서막을 열었지만, 얼마 안 가 유럽형 시티카를 표방한 대우 '마티즈'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앞좌석 파워 윈도우, 후방 와이퍼까지 제거한 IMF 전용 염가형 트림 'GL'을 출시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쳤지만, 결국 마티즈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02년 12월, 단종됐죠. 형제 차인 기아 비스토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요.

국내 시장에서의 아쉬움은 인도에서 제대로 달래줬습니다. 사실 아토스 자체가 개도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차였고, 그중에서도 인도 시장에 제대로 먹혀들면서 인도 소형차 시장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소위 대박을 치게 됩니다.

에어컨, 파워윈도우 등 현지 소비자가 선호하는 옵션을 기본 장착해 판매한 것은 물론, 장점인 뛰어난 실내 거주성은 차량 보급률이 낮은 인도 특성상 여러 명이 타도 쾌적한 공간감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힌두교 신자들이 차를 탈 때 머리에 쓴 터번을 그대로 쓰고 있어도 거치적거리지 않는다는 게 의외의 세일즈 포인트로 작용해 좋은 반응을 얻게 됐죠.

인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인도 시장에서만 무려 132만 대,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 53만 대가 판매되는 등 상당한 효자 모델이었습니다. 매년 성장을 거듭해 앞으로 세계 3위 시장까지 점쳐지는 인도 시장에서 현대차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모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현대의 잊혀진 경차 '아토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비록 티코는 눌렀어도 마티즈에 치이면서 국내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지만, 인도 등 해외 신흥 시장에서는 크게 성공하며 계속해서 후속 경차를 개발할 명분을 현대차에 제공했는데요.

그 결과 콘셉트카에 머물렀던 기아 모닝의 양산이 결정되거나 국내에 출시되지 못했던 현대 'i10', 기아 레이 등 새로운 경차들이 등장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줬죠. 캐스퍼도 개도국 시장, 즉 인도 시장을 노리고 만들어진 만큼 엄연히 아토스의 피가 흐른다고 볼 수도 있겠죠.

여담으로 최근 핫한 캐스퍼는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연간 7만 대 규모로 생산될 예정이라고 하죠. 기아차가 '동희오토주식회사'에 모닝과 레이 생산을 외주 준 것과 동일한 방식이에요. 지자체와 제조사, 시중은행이 공동 투자해 공공 일자리를 만든다며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아직 공개된 건 많이 없지만, 최근 출시되는 현대차의 상품성으로 볼 때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캐스퍼가 다시 불을 지핀 국내 경차 시장의 앞날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옆 나라 일본처럼 더 다양하고 색다른 형태의 경차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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