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기차 여행이 비싸고 복잡한 이유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기차

유럽 전역에서 항공권 가격이 기차표 가격보다 저렴해지면서 지속 가능한 여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테스 롱필드는 올해 가족 여행을 준비하면서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꿨다.

롱필드는 “브르타뉴에 갈 계획이었는데, 기차 여행이 더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기차 여행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유로스타 표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비행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싼 것도 기꺼이 감당하려고 했어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고, 파리에서 브르타뉴로 가는 기차표는 나중에 구매할 계획이었죠. 여행할 생각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롱필드가 유로스타 표를 구입한 것은 여행 9개월 전이었는데, 그 시점에서는 프랑스 내에서 탈 기차표를 살 수 없었다. 보통 유럽에서는 6개월 이후의 열차표를 팔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롱필드가 사려던 열차표는 발매 개시와 함께 매진되었다. 결국 그는 유로스타 표까지 취소하고, 항공편을 예약해야 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롱필드는 “부끄러웠다. 결국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 부끄러웠다. 비용이 더 들거나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말로 기차로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단 롱필드만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조 제닌은 함부르크와 파리, 런던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기차를 탄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훨씬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는 항공 여행에 비해 기차 여행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차표 예약이 비행기표 예약 대비 가격도 비싸고 절차도 복잡한 경우가 많다

제닌은 “최근 암스테르담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 여행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부득이하게 표를 취소해야 했는데, 제가 예약한 표가 환불이 되지 않는 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표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산 표라서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당시 그는 환불이 불가능하고 가격도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차편을 다시 예약하거나, 더 빠르고 유연하며 환불이 가능한 항공편을 예약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4~5배나 저렴한 선택지를 보면,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현재 유럽 철도 여행 업계 분위기를 보면, 어쩌면 이런 질문이 다소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철도 여행은 유럽 전역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24년만 해도 유럽 전역의 야간 열차 노선은 비엔나-베니스, 파리-베를린 등을 오가는 오스트리아의 ‘나이트젯’을 필두로 확장과 성장을 거듭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 여행 브랜드 중 하나인 인터레일을 운영하는 ‘유레일’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유럽에서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 기차 여행 수요는 25% 늘었다고 밝혔다.

비싼 가격과 때로 감내해야 하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분명 기차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항공편보다 기차를 우선시하는 국가들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2시간 3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철도 대안이 있는 경우 단거리 항공편을 금지하고 있고, 스페인도 ‘2050 기후 행동 계획’의 일환으로 유사한 금지 조치를 검토중이다.

2024년만 봐도 유럽 전역에서 야간 열차 노선이 확장과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데 여행 방법과 수요가 늘었더라도, 유럽인들은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의지를 자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상당히 비싼 가격과 매우 복잡한 예약 절차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친환경 여행 전문 여행사 ‘리스판서블 트래블’의 CEO인 저스틴 프랜시스는 오랫동안 이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는 유럽에서 기차 여행이 저가 항공 시장을 만나 고전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했다.

프랜시스는 “왜 정부들은 화석 연료인 항공 연료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 비행기표를 더 저렴하게 만드느냐”며 “공정한 과세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별 차등이 있지만, 기차에 사용되는 디젤 연료에는 현재 유럽 전역에서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기차로 유럽 전역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기차 노선을 통합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예를 들어 여행자는 180일 전에도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유럽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여행사가 기차 노선과 여행 계획을 미리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물류 및 가격 측면에서 합리적인 패키지 상품을 팔 수 없다는 뜻이다.

프랜시스는 “마지막 이유는 EU 휴가 규정”이라며 “이에 따르면 여행사로 철도가 포함된 휴가를 예약했는데, 열차가 지연되거나 결항되면 여행사가 고객에게 환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항공편을 예약했다가 비행기가 연착 또는 취소되면, 환불은 항공사가 해줍니다.”

많은 여행사들은 지연 및 취소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행자는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기차 여행을 예약했다가, 이러저러한 난관을 만날 수도 있다. 기차표 예약을 직접 해야 할 수도 있고, 역 플랫폼에서 예정보다 더 오래 기차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다른 교통수단 대비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특히 여행사를 통해 기차 여행을 예약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체 요금 등 가격 할인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이를 방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올해 초 유럽 전역의 철도 여행을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이며 잘 연결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EU 행동 계획’이 출범했다. 철도망을 조율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한 걸음이었다. 하지만 세금과 가격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차 여행을 최고의 선택지로 만들겠다는 EU의 약속이 정말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는 관측이 많다.

그렇다면 여행자들이 유럽을 기차로 여행하고 싶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영국 여행사 ‘바이웨이’는 유럽 전역에서 100%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 상품을 운영하는 몇 안 되는 여행사다. 맞춤형 ‘저니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진행한다. 계획 때는 최적의 경로를 찾고, 그 과정에서 고객을 위해 다양한 통화, 언어, 시간표에 따른 물류 문제를 해결한다. 고객은 여행 중 경로가 변경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왓츠앱 번호로 연락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회사에서 고객 상담을 하는 제임스 힐은 “여행을 계획할 때 드는 시간과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면 유럽을 기차로 여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사 바이웨이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기차 여행을 하기에 매우 좋은 국가다

바이웨이에 따르면 이 회사의 고객들은 비행기로 여행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느린 여행과 구식 여행의 여유로움, 기차가 지나는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 등 다양한 경험을 즐긴다고 말했다. 힐은 “영원한 인기 여행지는 이탈리아”라고 전했다. “이탈리아에는 포도밭을 달리는 조그마한 지역 열차는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초현대식 고속 열차가 있습니다. 밤새 침대칸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 보면 다음 날 아침 페리를 타는 곳에 닿는 열차도 있습니다. 철도 여행을 하기에 완벽한 곳이죠.”

바이웨이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자주 묻는 질문’을 통해 가격 문제는 향후 해결이 절실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항공사는 유류세를 내지 않고 항공권은 부가가치세가 적게 부과되므로 요금을 저렴하게 책정하는 게 쉽다. 그래서 이들은 항공편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에 대한 추가 부담금과 항공세, 국내 단거리 비행 금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여행 플랫폼 ‘버스버드’ 또한 여러 여행사에서 예약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운송 마찰을 없애,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지상 교통(버스 및 기차)을 위한 익스피디아’로 비유되는 이 회사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각 지점 간 교통편을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버스버드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인 크리스틴 페더슨은 “지상 교통은 여행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디지털화해야 할 분야”라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말했다.“우리는 여행자 입장에서 비행기가 아닌 더 나은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창밖을 내다볼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고,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카페 차량에 들어가서 식사를 할 수도 있죠. 아주 색다른 경험입니다.”

물론 이러한 여행은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2시간 전에 체크인을 할 필요가 없고, 긴 보안 검색대 줄을 피할 수 있다. 또한 도시 중심부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도 갈 수 있다. 여행 도중에 시간을 크게 낭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프랜시스는 기차 여행이 항공 여행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들에게 ‘철도 여행이 해답’이라고 말하면서 상황을 낙관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기차 여행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