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6> 구한말 홍보용 태극기

황동이 부산박물관 교육홍보팀 학예연구사 2025. 6. 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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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국기 제정 140년, 우리민족 역사 품은 깃발

호국보훈의 달 6월, 거리 곳곳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국기(國旗)인 태극기는 국경일과 국가 행사, 그리고 조의를 표하는 날마다 게양된다. 그래서인지 낯선 외국에서 태극기를 마주할 때면,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구한말 홍보용 태극기(위)와 사보담 목사가 소장한 태극기.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박물관에는 구한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가 소장되어 있다. 이 중에는 조선을 알리는 홍보용으로 사용된 태극기도 있다. 당시 태극기는 물건이나 포스터, 성냥 라벨 등에 그려져 조선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1900년대 초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에서 선교사업을 벌인 미국 북장로교 소속 리처드 사이드보텀(Richard H. Sidebotham, 사보담) 목사가 소장했던 대형 태극기를 통해서도 초기 태극기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태극기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국기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태극기의 제정 계기는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에서 비롯된다.

당시 사용된 국기 형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같은 해 9월 고종의 명을 받은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건곤감리’ 4괘를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도안은 이듬해 1883년 고종의 왕명에 따라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 하지만 국기의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이후에도 여러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었다.

태극기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되었지만 그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흰 바탕은 밝음과 순수를, 가운데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는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자연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는 도교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태극기가 단순한 국기를 넘어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으며, 우리 민족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국가유산으로 등록된 태극기는 20점이 넘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를 통일하려 했지만 실행되지 못했고, 이후 정부 수립과 함께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해 오늘날의 ‘국기제작법’을 확정·공표했다. 이어 1950년 1월 ‘국기게양방법’을 제정하여 국기 게양의 기준을 마련했다.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의 태극기들은 우리 민족이 지켜온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태극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희망의 상징이다. 박물관을 방문해서 초기 태극기의 모습을 관람하고 그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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