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271일, 자포리자 원전 포격 책임 공방…핵사고 우려 지속
기사내용 요약
러시아 "우크라 포격 우려…국제 사회가 영향력 행사해야"
우크라 "러 사보타주 막아달라…자포리자 원전 보호 필요"
IAEA 전문가 현장조사 진행 "즉각적인 안전 문제는 없어"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271일째인 21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칫 핵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포격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면서 비방전을 이어갔다.
이날 CNN,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 포격 책임을 우크라이나의 탓으로 돌리며 국제사회가 나서 포격 행위 중단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포리자 원전 포격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군이 포격을 중단하도록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의 알렉세이 리하체프 대표는 이날 "자포리자 원전은 핵 사고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자포리자 원전에서 발생할 작은 핵 사고를 받아들일 모양새"라고 전했다.
그는 "핵사고는 역사의 흐름을 영원히 뒤바꿀 사례가 될 것"이라며 "따라서 아무도 자포리자 원전의 보안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모든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도 이번 포격 책임이 러시아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68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의회연맹 연차 총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사보타주(고의적 파괴공작)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나토 회원국 모두는 자포리자 원전에서 어떤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원전 파괴행위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리 삭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은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 포격이 다가오는 겨울철 전력을 차단해 우크라이나인들을 동사시키려 하는 전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전기를 빼앗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얼어 죽게 하려는 학살 행위를 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전장에서 아무것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선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자포리자 원전 포격에 대해 통화를 하고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회담을 갖고 자포리자 원전 지역에 대한 비무장화 추진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전날 러시아가 점령중인 우크라이나 중부 자포리자 원전 일대에서는 포격으로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양측의 소행이라며 책임 공방을 벌였다.
IAEA는 양측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원전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자포리자 원전 포격에 대해 "잠재적인 심각한 핵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음에는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이같은 포격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시 총장은 "이번 포격은 원전의 핵심 안전 및 보안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며 "킬로미터(㎞)가 아니라 미터(m) 단위로 가까워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원전에 누가 포격을 가하든지 간에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IAEA에 따르면 전날 자포리자 원전 포격은 19일 오후 6시께 첫 포탄이 떨어진 뒤 한동안 잠잠하다가 20일 오전 9시15분께 포격이 재개됐다. 40분 이내에 12건 이상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IAEA 측은 전했다.
자포리자 원전에 상주 중인 IAEA 소속 전문가들은 일부 건물과 전력선 등이 포격에 파손됐다고 보고했다.
IAEA는 포격 이후 원전 주변의 방사능 수준은 정상을 유지했고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포격은 심각한 핵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가 침공 초기 장악한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강제 합병한 뒤 원전도 러시아 자산으로 일방 편입했다. 원전은 우크라이나 직원들이 남아 운영하고 있다.
IAEA는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안전성 우려가 지속되자 원전 주변을 안전·보호지대 설치 방안을 마련했다. 그로시 총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설득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IAEA 전문가들은 이날 원전 부지를 살펴보면서 이번 포격 영향을 조사한 결과 즉각적인 안전 문제는 없다고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핵무기 포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핵심 장비는 손상되지 않았으며 즉각적인 핵 안전이나 보안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의 6개 원자로는 모두 안정적이며, 저장 시설의 연료와 방사성 폐기물의 무결성을 확인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시설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IAEA는 인근 도시에 포격은 있었지만, 자포리자 원전 주변에서 포격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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