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님, 차는 흰색!" 택시기사의 명연기, 보이스피싱범 잡았다

문지연 기자 2022. 9. 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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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의 한 택시 차고지에 주차된 택시들. /연합뉴스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승객으로 태운 택시기사가 돋보이는 기지로 경찰의 체포를 도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 A씨는 지난 7월 1일 오후 4시10분쯤 경기도 안성시청 앞 대로에서 20대 여성 B씨를 태웠다. 장거리 승객이었던 B씨는 평택으로 향하던 중 원곡 119안전센터에 잠깐 들러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안전센터는 어쩐 일로 가시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돌아온 B씨 대답에서 수상함을 느꼈다.

당시 B씨는 자신이 한 디자인 회사에 근무 중이며 안전센터 부근에서 투자자를 만나 돈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는 회사 법인통장에 입금하면 간단할 텐데, 직접 거래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전센터에 도착 후 B씨가 하차하자마자 112에 전화를 걸어 “택시 승객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인 것 같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차 안에서 지켜본 B씨의 행동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했다. 어디선가 검은색 승용차가 나타났고 거기서 내린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받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현금다발이 든 쇼핑백이었다. B씨는 다시 택시로 돌아와 이번에는 목적지를 하남시로 변경했다. A씨는 “평택에 가자던 사람이 돈을 받아든 뒤 갑자기 하남에 가자고 해서 100% 범죄임을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A씨의 남다른 기지는 이다음부터 발휘됐다. 그는 운행 중 경찰의 전화가 걸려 오자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과의 통화인 듯 연기를 펼쳤다. 택시 차종과 색상, 번호 등을 묻는 말에 “아우님, 차 사려면 ○○○로 사. 하얀색이 제일 좋아”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의 모든 대화를 경찰이 듣고 파악할 수 있게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운전을 이어갔다.

검거를 위한 접선 장소를 자연스럽게 알리기도 했다. A씨는 장거리 운행을 핑계 삼아 B씨에게 “안성휴게소에 들르겠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이를 들은 경찰은 곧장 휴게소로 출동했다. 결국 B씨는 오후 5시10분쯤 휴게소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B씨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금리 대환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인 뒤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현금을 가로채는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조직 현금 수거책 B씨를 사기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이달 중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덕분에 되찾은 피해금액 4600만원은 피해자에게 무사히 돌아갔다.

이후 경찰은 A씨를 ‘피싱 지킴이’로 선정하고 표창장과 신고 보상금을 수여했다. A씨는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아도 내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온다면 누구든 나처럼 하지 않겠느냐”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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