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 란치아(Lancia Automobiles)는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양산차 최초의 모노코크 차체구조 도입', '양산차 최초의 V형 4기통 및 6기통 엔진', '양산차 최초의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 '양산차 최초의 5단 변속기', '양산차 최초의 트윈차저 엔진', '양산차 최초의 팝업식 리어 스포일러'… 오늘날 거의 모든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의 기원이 바로 이 브랜드에서 비롯되었다. 1906년, 피아트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였던 빈첸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토리노에 설립한 이 회사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혁신으로 자동차 역사를 이끌어왔다.

란치아의 가장 대표적인 기술적 유산은 1922년 공개된 람다(Lambda)였다. 이 차는 세계 최초로 모노코크 차체 구조를 적용한 양산차로, 차체와 섀시를 통합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낯설고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여전히 마차 제작 전통이 남아 있던 시대, 차체는 코치빌더가 따로 만들던 관행을 깨고, 제조사가 차체와 섀시를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을 제시한 것이다. 이 구조는 오늘날 승용차 제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은 상용차와 일부 SUV에만 남았다. 란치아는 이처럼 '상식을 깨는 발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이었다.

모터스포츠, 특히 랠리 무대는 란치아의 두 번째 무대였다. 1960년대 후반 등장한 풀비아(Fulvia)는 란치아에 첫 국제 랠리 우승을 안겨주며 신화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 1973년 발표된 스트라토스(Stratos)는 우주선 같은 외관과 페라리 V6 엔진으로 1974~1976년 세계 랠리 선수권(WRC) 3연패를 기록했다. 1980년대 초에는 랠리 037이 아우디 콰트로의 사륜구동 독주를 끊고, WRC 역사상 마지막으로 후륜구동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러나 란치아의 절정은 델타 HF 인테그랄레였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6년 연속 WRC 제조사 타이틀을 거머쥐며, 지금도 깨지지 않은 통산 10회의 기록을 남겼다. 랠리 무대에서 란치아는 명실상부한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기술과 모터스포츠의 영광이 곧 시장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앞선 기술, 복잡한 구조, 그리고 고비용 생산 체계는 상업적 약점으로 이어졌다. 1969년 피아트 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한때 고급 세단과 해치백으로 라인업을 확장했지만, 1990년대 이후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결국 2010년대에는 라인업이 급격히 축소되었고, 2017년 이후로는 소형 해치백 Ypsilon만 남아 '이탈리아 내수 전용 브랜드'로 사실상 명맥만 이어가게 된다. 한때 랠리와 혁신의 상징이던 브랜드가 경차 전용 브랜드처럼 전락한 현실은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1년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PSA의 합병으로 탄생한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란치아를 단순히 박물관 속 브랜드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란치아를 전기차 시대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부활시키려는 전략을 택했다. 2024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버전을 갖춘 4세대 Ypsilon이 공개되었고, 판매 범위도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스페인·벨기에·네덜란드로 확대됐다. 2026년에는 중형 전동화 세단 Gamma, 2028년에는 전설의 해치백 Delta가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또한 고성능 라인업인 HF도 부활하여, Ypsilon HF와 Ypsilon Rally4 HF로 다시 랠리 무대에 도전장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날 란치아의 현재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신형 Ypsilon은 출시 초반 기대만큼의 판매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과거의 영광이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치아는 단순한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모노코크 차체에서 시작된 혁신, 랠리 무대에서의 전설적인 기록,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하는 대담한 비전은 여전히 살아있다.

란치아의 부활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과거의 영광은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여정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언젠가 다시, 도로와 랠리 무대 위에서 'LANCIA'라는 이름이 힘차게 울려 퍼질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 자동차 팬들의 가슴 속에서는 또다시 이탈리아의 광기와 혁신이 불꽃처럼 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