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불에 날아간 혈세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화재 사건의 진실
점·선으로 본 대구경북혈액원 사건
2022년 7월 혈액원서 화재 발생
낡은 시설 때문에 화재 발생 주장
담뱃불 원인이란 소문 돌았지만
대한적십자사 감사 진행 안 해
복지부, 시설 개선비 13여억 지원
혈액원 화재 원인 뒤늦게 밝혀져
담배 핀 직원 ‘실화 혐의’ 벌금형
대한적십자사 해명도 반성도 안 해
혈세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위선
# 순간은 점點이다. 점 같은 순간만 봐선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전체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수많은 순간을 연결해 선線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앞뒤 맥락과 본질이 보인다.
# 지난 1월 17일 수많은 미디어가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2022년 7월,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의 원인을 다룬 기사였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이 버린 담배꽁초에서 불이 붙어서 혈액공급실이 타버렸다. 직원은 실화失火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 실화는 '실수로 불을 냈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모든 미디어의 초점은 직원의 실수에 맞춰졌고, 이 사건은 이내 묻혀버렸다. 그렇다면 2022년 대구경북혈액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실수로 치부할 만큼 간단한 사건이었을까.
# 그렇지 않다. 이 사건엔 늑장 감사, 혈세 낭비 등 대한적십자사의 병폐가 모조리 숨어 있다. 점 같은 순간에 매몰돼 전체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사건의 진실 세번째 이야기,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점과 선, 그리고 본질' 편이다.
# 조용히 묻힌 사건
야간 근무 중 담배꽁초를 버렸다가 낸 불로 혈액공급실 등을 태운 30대 혈액원 직원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4단독 김대현 판사는 실화 혐의로 기소된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 직원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 2024년 1월 17일 ○○일보
담뱃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채 담배꽁초를 버려 대구경북혈액원 건물 일부를 불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직원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제4형사단독(판사 김대현)은 실화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 2024년 1월 17일 ○○통신사
올 1월 17일, 숱한 미디어가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송출했다. 골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이 야간근무 중 버린 담배꽁초에서 불이 붙어서 혈액공급실이 타버렸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은 실화失火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실화는 '실수로 불을 냈다'는 의미다. 판결문의 용어 탓인지 모든 미디어의 방점은 직원의 실수에 찍혔고,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그렇다면 이 화재는 그렇게 사소한 사건이었을까.
# 점과 선으로 본 사실
관점을 잠깐 점點으로 돌려보자. 점은 점이다. 크든 작든 점이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한다. 형태를 갖추거나 의미를 담고 싶다면 점은 선線이 돼야 한다. 점은 0차원이고, 선은 1차원이다.
이런 면에서 실화失火는 점이다. 실화의 본질과 앞뒤 맥락을 이해하려면, 점을 엮어서 선을 만들어야 한다. 자! 이쯤에서 '선'을 들여다보자.
[점➊] 2022년 7월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사건
· 직원 A씨가 던진 담배꽁초가 원인이란 소문
[점➋] 2022년 9월 경찰, 직원 A씨 소환조사
[점➌] 10월 대한적십자사, 국정감사
· 직원 담뱃불 실화 가능성 언급 안 해
· 대구경북혈액원 노후화 문제만 강조
· 혈액원 시설 개선 예산 필요성 강조
[점➍] 2022년 9월 직원 A씨 기소의견으로 송치
[점➎] 2022년 11월 대한적십자사 뒤늦게 감사 착수
[점➏] 2023년 9월 관련 직원 솜방망이 처분
[점➐] 2023년 12월 혈액원 인프라 개선 예산 확정
[점➑] 2024년 1월 A씨 1심 벌금 1000만원 선고
숱한 미디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한 '대구경북혈액원 담뱃불 실화 사건' 앞엔 이처럼 무수히 많은 점이 찍혀 있다. 어떤가. 이래도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건이 '단순하게' 보이는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무수히 많은 점
■ 점➊= 2022년 7월 10일 새벽 1시.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다. 혈액원 A동 1층 혈액공급팀 사무실 주변이었다. 불은 30분 만에 꺼졌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무엇보다 3억원 상당의 재산상 피해가 났다.
냉동실에 보관 중이던 1만1583유닛(unit·1회 헌혈용 포장 단위)의 혈액은 폐기 또는 부적격 처분을 받았다. 국민의 '피 같은 피'가 화마火魔에 날아간 셈이었다. 문제는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거였다.
당시 대구경북혈액원 안팎에선 '당직 직원 A씨의 담배꽁초에서 발화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소문의 진위를 추적하긴커녕 내부감사에도 착수하지 않았다. 불 앞에서 불구경만 늘어지게 한 셈이다.
■ 점➋=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22년 10월, 이 화재 사고는 국정감사 테이블에 올랐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자리에서도 '담뱃불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도리어 '시설 노후' 문제만 부각했다. 혈액원 시설이 낡은 탓에 화재가 났는데, 예산이 부족해 스프링클러조차 설치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임직원의 발언을 복기해 보자. "안정적 혈액공급체계 유지를 위해 중장기 투자 재원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신희영 당시 회장).""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만 160억원이 필요하다(대한적십자사 임원)."
■점➌➍➎➏=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진실은 하나다. 국감 종료 후인 2022년 11월, 검찰이 혈액원 직원 A씨를 담뱃불에 따른 실화 혐의로 기소했다. 그제야 담뱃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른 척'하던 대한적십자사는 부랴부랴 내부감사에 착수했다. 누가 보더라도 늑장감사였고, 그 결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 점➐➑=더 심각한 건 지금부터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대한적십자사에 '혈액원 스프링클러 구축'을 명목으로 13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복지부가 혈액원의 노후 관리를 위해 보조금을 책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적십자사로선 담뱃불을 뒷구멍에 감춘 채 나랏돈을 따낸 셈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심각한 모럴해저드
우리는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사건에 숨은 진실을 두차례에 걸쳐 단독보도했다. 2023년 2월 9일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직원 담뱃불 때문(더스쿠프 통권 532호)"이란 기사를 통해 대구경북혈액원의 화재 원인이 노후가 아닌 담뱃불이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지난 2월 13일엔 "화재 원인 담뱃불 숨기고 나랏돈 타낸 대한적십자사 민낯(더스쿠프 통권 583호)"이란 타이틀로 대한적십자사의 위선을 해부했다. 그럼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연히 반성도, 성찰도 없다. 그 주변에선 되레 "사건의 진실이 알려진 건 제보자 탓"이란 불평불만이 새어 나온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재난재해 구호, 해외재난복구 지원, 여기에 혈액사업까지 도맡고 있다. 올해 예산은 1조1477억원에 이르는데, 헌혈(3440억원), 적십자회비(897억원), 정부 보조금(479억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언뜻 봐도 대한적십자사의 운영비는 국민의 피 같은 돈이다. '단순 실수'로 둔갑한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사건이 이대로 묻혀선 안 되는 이유다. 모두 혈세 낭비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 참고: 584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2월 3일 발간한 경제매거진 더스쿠프 스페셜 파트1 '대한적십자사: 화재 원인 숨기고 나랏돈 더 타냈다'의 총론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면 파트1 기사를 읽으시면 좋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