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운명, ‘김건희 의혹’ 대응에 달렸다 [아침햇발]

손원제 기자 2024. 10. 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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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4일 일정으로 체코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프라하/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4.09.19. 한겨레 윤운식

손원제 | 논설위원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주고받은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그동안 용산 대통령실 내부 역학 관계와 집권세력 내 갈등의 이면은 소문과 추정의 영역에 속했다. 권부 내부자의 입을 통해 가식과 포장을 걷어낸 속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통령실에선 통화 당사자가 선임행정관에 불과하고,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와 모두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며 녹음 내용은 한 개인의 허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임행정관은 비서관 바로 아래 직위다. 선임행정관에서 승진해 왕비서관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윤 대통령 부부와 일면식도 없다는 것도 일방적 주장이다. 이미 김 전 선임행정관이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검찰이 “김문기를 모른다”고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몰아간 것처럼 하면, 대통령실 해명인들 안 걸릴 수가 없다. 허언인지 진언인지도 이제 가려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구체적 진술과 당시 배경 상황 등에 비춰보면, 일부 과장과 허세가 있을진 몰라도 대체로 실제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결국 수사를 통해 규명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당 내 친한동훈계 김종혁 최고위원이 “수사를 통해 누가 배후이고 어떤 공작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당도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역시 친한계에선 배후까지 다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한계가 의심하는 최종 배후가 김건희 여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한다. 김 전 선임행정관은 직접 김 여사의 지시를 받았다고 토설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김 여사를 위한 것임을 여러차례 시사했다.

그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7월10일 “여사가 한동훈이 때문에 지금 진짜로 죽으려고 하더라. 배은망덕”이라며 “이번에 그거 잘 기획해서 서울의소리에서 치면, 아주 여사가 좋아하겠는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가 지난 총선 당시 여론조사 당비를 이용해 두차례 자신의 대선 인지도 조사를 했다며, “횡령”이라고 지칭했다.

윤상현 의원 말에 따르면, 당시 그는 “나경원 당대표 후보 캠프의 핵심 총괄”이었다. 서울의소리는 7월12일 실제 이를 ‘한동훈 당비 횡령 유용 의혹’이란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그사이 7월11일에 열린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선 ‘용산 대리인’으로 통하던 원희룡 후보가 같은 사안으로 한 대표를 맹공했다. 동시다발로 한 후보에 대한 공세가 이뤄진 셈이다.

일부에선 김 전 선임행정관이 “나경원 후보를 위해 김 여사를 판 것”(윤상현 의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두 경쟁 캠프의 동시다발적 공세를 묶어 기획한 더 큰 흑막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이 일이 있기 직전 ‘한동훈 문자 읽씹’ 사태가 폭로된 것을 두고도 김 여사가 한동훈 떨어뜨리기에 직접 참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김 전 선임행정관도 기사화를 요청하는 대화 도중 “(한동훈) 그 ××, 다섯번씩이나 (문자를) 보냈으면 답변을 한두번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김 여사의 깊은 배신감에 대해 토로했다. 이 또한 김 여사의 분노가 이른바 ‘공격 사주’로 표출된 것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김 여사가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직접 이명수 기자에게 경쟁 후보를 흠집내달라고 사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 필요가 있겠다. 2021년 9월15일 통화에서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거야”라고 한 대목이다. 기획이라고 할지 공작이라고 부를지는 아직 애매하지만, 김 여사가 이 분야의 초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번 사태로 뚜렷해진 건, 지금 국정을 짓누르는 여권 투톱 간 갈등의 핵심은 ‘김-한 갈등’이라는 사실이다. ‘윤-한 갈등’의 뿌리가 김 여사 문제라는 점 자체야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갈등을 벌이고 실제 한 대표를 공격하기까지 한 행위 주체가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일 수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건 놀랍다.

대통령 배우자가 정당 경선에 개입하고, 그 실행 대가로 연봉 수억원짜리 자리를 보장해준 것이 아니냐는 게 지금 제기되는 의혹이다. 사실이라면 최순실씨를 뛰어넘는 ‘국정농단’이다. 우리는 비선 전횡을 단죄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을 지켜낸 바 있다. 이번에도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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